41. 타로의 집 (밤)
(가는 국수로 달게 요리한 세비앙, 망고장아찌, 양고기 꼬치, 등으로 차려진 식탁. 양고기 카레를 길 다란 빵 ‘난’으로 바닥까지 닭아 먹고 있는 남자황제가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오는 카르멜을 쳐다본다.)
타로: 몇 시인데 지금 들어와? (잠시 노려보다가) 눈치 보지 말고 앉아. (카르멜,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온 뒤 남자황제와 여자황제에게 정중히 인사를 하고 앉는다. 타로 잠시 말없이 식사를 하다가) 머리는 왜 그 모양이지? 학교 과제하러 간 거 맞아? 넌 운이 좋은 줄 알아. 우리가 이곳으로 오지 않았더라면 넌 매일 같이 창문 밖을 살피면서 항상 긴장을 하고...매일 아침, 잠에서 깨서 옆자리에 네 동생들이 있는지부터 확인했을 거야. (둘째, 셋째, 넷째, 있는 듯 없는 듯 소리도 내지 않고 계속 식사를 한다.) 그런데 넌 그런 거 아니잖니. 네 나이 때 네 엄마와 나는...
여자교황: (빈 그릇에 음식을 채워 넣으며) 입에 맞아요?
여자황제: 정말 맛있어요. 어쩜 이렇게 요리를 잘하시는지.
타로: 음...으...음. 나는 말이야. 아니다. 고향에서 온 손님들 앞에 두고 할 소리는 아니지.
남자황제: (웃으며) 고향이라. 나는 잘 모르겠어. 그곳에 우리 집이 있었던가?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우리 집에는 형제들이 꽤 많았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내 옆에 아무도 없거든. (태연한 척 국수를 먹으며) 아버지는 저들과 싸워야한다고 말했어.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고. 그런데 말이야. 우리는 바주카포를 들고 다양한 블록들을 파괴해나가면서 목적지에 빨리 도달해야만 하는 임무를 열심히 플레이하고 있는 게 아니잖아. (양고기 꼬치를 일부러 소리 나게 먹으며) 목적지에 도착 했는데 나 밖에 없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어. 아니, 좀 많이 운이 좋아서 내 옆에 누군가 있다고 치자. 그런데 그게 마지막 임무는 아닌 거잖아. 다음에는 내가 죽을 수도 있는 거고. 아니면 모두 한꺼번에 사라질 수도 있는 거고. (웃으며) 아프지. 고향 생각하면. 그런데 계속 아파야 하나?
42. 알렉산드르 3세 다리 해군 격납고로 만든 술집,
(빠른 비트의 음악과 소음. 크고 작은 싸움이 일어나고 있는 술집에서 혼자 조용히 술을 마시고 있는 매달린 남자.)
심판: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그런데 좀 많이 시끄럽군. 장소를 좀 옮길까?
매달린 남자: 그, 그, 그래? 하긴 여기가 혼자 있기에는 좋지만 둘이 있기는 좀 그렇지.
심판: 그 반대 아니야? (자리에 앉으며) 음, 뭐,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이라도 있나?
매달린 남자: 그거 알아? 내가 널 부러워하고 있다는 거.
심판: 네가?
매달린 남자: 그래.
심판: 취했군.
사내: (끼어들며) 어라, 이게 누구야?
심판: 누구?
매달린 남자: (술을 마시며 심판에게) 좀 시끄럽긴 하군.
사내: (시끄러워서 잘 안 들린다.) 응? 지금 뭐라고 했어?
심판: 내가 아는 데가 있는데 거기로 가지. 너도 좋아할 거야.
(밖으로 나가는 두 사람. 사내가 두 사람 뒤를 쫒는다.)
심판: 그동안 뭐하고 지냈어?
매달린 남자: 내가 뭘 하고 지냈는지 알게 되면 넌 날 혐오하게 될 거야. (사내에게) 지난번에 일은 사과할게.
사내: 아니, 난 그냥 뭐 이웃끼리 인사라도 좀 할까, 했지. (돌아가며) 뭐, 알면 됐어.
심판: 내가 널? 내가 널 싫어할 리가 없잖아. 네가 무슨 일을 했든 하고 있든 간에-.
사내: 그래.
심판: 오랜만에 만났잖아. 우울한 이야기는 잠시 미뤄두고 오랜만에 고향 음식 좀 먹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기분이 좀 풀릴 거야.
43. 바타클랑 극장 (밤)
(기타리스트 연주에 맞춰 무대 앞에서 맥주를 마시며 춤을 추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때 총성이 울려 퍼진다. 음향 효과 인 줄 알고 환호하던 사람들, 남성이 머리에 총을 맞고 고꾸라지자 상황을 뒤늦게 깨닫는다. 자동소총을 쥔 테러범들이 극장 안으로 들어온다.)
44. 식당
(매달린 남자와 심판,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다. 사이렌 소리가 들린다. 술을 마시고 있는 심판을 못마땅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매달린 남자의 시선이 창밖으로 향한다.)
심판: (술잔을 잡고) 취하지만 않으면 괜찮아. 세상에는 술 한 잔 마시지 않고도 취한 사람들이 참 많거든. 산자들이여 너희가 취했다면 무엇을 말하는지 제대로 알 때까지는 예배하는 자의 곁에 가지 말라. 코란 4장 43절.
매달린 남자: (심판에게 미소를 지어보이며) 그래. 맞아. 그랬지. 넌 술이 좀 셌었지.
심판: (술잔을 비우며) 너도 좀 마셔. 술을 마시지 않으면 주량을 알 수 없어.
(매달린 남자의 불쾌한 표정, 애써 모르는 체하는 심판.)
매달린 남자: 나는 취한지 오래됐어.
심판: 멀쩡한데?
(식장 사장 텔레비전을 켠다. 식당 손님들, 일순간 조용해진다. 바타클랑 내로 무장한 사람들이 들어갔으며,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 두 세 명이 군중에게 무차별적으로 총격을 가하고 있다는 기자 줄리앙 피어스의 목소리가 들린다.)
심판: (담배에 불을 붙이며 매달린 남자에게) 저런 짓을 저지르는 놈들이야 말로 술에 취한 거야. 너도 내 말에 동의하지?
매달린 남자: (텔레비전을 보다 말고 기침을 한다.) 그래, 저래가지고는 안 되는 일이지.
(손님들은 계속 텔레비전 뉴스를 보고 심판은 계속 매달린 남자를 쳐다본다.)
심판: 그래가지고는 안 된다니 무슨 말이야?
매달린 남자: 나는 이만하고 집에 가봐야겠어. 머리가 좀 아파.
심판: 그래. (일어나며) 나도 가봐야겠어.
매달린 남자: 나는 여전히 이스라엘이 둘러친 장벽에 갇혀 있는 것 같아. 너는 그렇지 않니? 너도 나와 같은 경험을 했잖아.
심판: 여기는 프랑스야. 그 누구도 우리를 가두지 않아. (뉴스를 보며) 저런 일들이 계속해서 벌어진다면.
매달린 남자: 너는 화가 나지도 않아?
(입에 문 담배를 매달린 남자에게 주고, 뉴스를 보고 있는 사람들을 본다.)
심판: (매달린 남자에게) 화를 왜 엄한 사람들한테 내. 저 사람들을 좀 봐봐. 우리와 뭐가 달라? 남의 눈에 눈물 나게 하는 사람들이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말을 해서는 안 돼. 테이블 끝에 앉은 저 노인은 (손으로 가리킨다.) 팔레스타인들을 위해서 매일 모금을 하고 엊그제는 이스라엘 규탄 성명을 냈었어.
매달린 남자: (인상을 찌푸리며) 너는 전형적인 프랑스인으로 보이는군. 대단히 이성적이고 객관적이고.
심판: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말고. 무엇이 팔레스타인에 남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지 생각해봐.
매달린 남자: 애도나 해. 남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말고.
(화면이 둘로 갈라진다. 오른쪽엔 죽은 아이를 안고 있는 팔레스타인, 왼쪽에는 갑작스런 상황 때문인지 반쯤 정신이 나가 소리 내면서 계속 웃고 있는 프랑스인의 모습이 겹쳐지고 병치된다. 잠시 후 시공을 초월해 팔레스타인과 프랑스인의 대화가 오간다.)
프랑스인 : 아들이 죽었네. 어떻게 할 생각이야?
팔레스타인: 모르겠어.
프랑스인: 그래. 지금은 아는 게 이상하지.
팔레스타인: 너도 상황이 좋지 않아 보이는데. 웃지만 말고 주변을 좀 둘러봐.
프랑스인: 웃고 있다고? 내가? 이해할 수 없군.
팔레스타인: 복면을 쓴 저 사람이 너한테 총을 겨누고 있잖아. 정신 좀 차려.
마르세유판타로의죽음 46장, 47장, 48장, 49장-레퓌블리크광장- (0) | 2018.10.27 |
---|---|
마르세유판타로의죽음 45장-타로의 집 거실, 밤- (0) | 2018.10.27 |
마르세유판타로의죽음 40장-교도소 독방 (0) | 2018.10.27 |
마르세유판타로의죽음 37장, 38장, 39장세오-벨기에 고속도로 휴게소, 타로의 집 , 밖- (0) | 2018.10.27 |
마르세유판타로의죽음 36장-타로의 집 저녁- (0) | 2018.10.26 |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