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유튜브에 올라온 동영상.
(분할화면: 혼자 선착장에 남은 매달린 남자가 유튜브 동영상을 본다. 시커먼 어둠속에 있는데 폭죽이 터진다. 파리 시민들이 놀라 황급히 피한다. 울다시피 소리치는 목소리. 혼이 나간 표정으로 식당바닥에서 일어서는 사람. 셔터가 반쯤 내려진 건물에 몸을 우겨넣거나 벽에 몸을 붙인 채 가슴을 쓸어내리는 사람. 추모 꽃다발과 촛불위로 넘어지는 사람들.)
60. 교도소 독방
(타로는 독방 침대에 걸터앉아 있고, 교도소 복도를 간수가 지나가고 있다.)
타로: 사람들은 아직도 폭죽소리에 놀라나?
간수: 조용히 하고 잠이나 자.
타로: 너무 졸린데 잠이 안와. 그게 문제야.
간수: (지나치려다 말고) 그런 짓을 저지르고도 잠을 잘 생각을 하긴 하는 모양이군.
타로: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차량통행이 전면 차단된 샹젤리제 일대를 걷고 싶다는 생각을 해.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간수: 양심도 없군.
타로: 안전한 곳도 없지. 불안과 공포가 일상이 되는 거야. 우리처럼.
간수: 너는 아무것도 아니야.
타로: (웃으며) 고마운 말이긴 하지만 사람들은 날 기억할거야. 네가 그렇듯이.
간수: 나는 기억력이 좋지 않아. 너는 그저 테러리스트 일 뿐이야.
타로: 나쁜 기억은 오래가. 시끄러운 음악을 틀어놓고, 희고 붉은 조명을 켜봤자-
간수: 그래서 네가 얻는 게 뭐지?
타로: 팔레스타인에는 1000년 넘은 모스크도 기독교 교회가 있어. 이슬람에서는 쿠프르(알라를 믿지 않음)가 된 자를 이슬람과 무슬림의 적이라고 가르치지만, 사실, 진짜 적은 거울을 깨뜨린 자들이야.
간수: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알아듣지 못하겠어.
타로: 거울이 깨끗하면 알라가 찾아오고 거울이 깨지면 알라가 오지 않아.
간수: (타로와 동시에) 본인이 정당하다고 말하고 싶은 거야? 아무 죄도 없는 사람들을, 그것도, 네 어린 아이들을 희생양 삼아서...그런 네게 알라가 찾아 올 것 같아? 내가 어째서 너같이 비겁한 인간하고 말을 섞고 있는지 모르겠다.
타로: (동시에) 난 거울을 깼으니까. 잠이 오지 않는 거야. 가끔 나는 이런 생각을 해. 알라가 내게 오지 않아도 상관없다. 나란 사람은-
간수: 본인 스스로 자기 자신을 이슬람과 무슬림의 적이라고 말하고 있는 건가? 뭐, 그렇다면, 다행이긴 한데…….
(간수, 말을 더 하려다 말고 돌아선다. 타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61. 타로의 집
(타로가 검은 비닐 봉투를 등 뒤에 숨긴 채 문을 열고 들어온다. 둘째, 셋째, 넷째가 소파에 붙어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는 여자교황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묻는다.)
여자교황: 어딜 갔다 오기에 하루 종일 연락도 안 받고... 오늘이 무슨 날인 줄은 알아?
타로: (애들을 보며) 오늘이 무슨 날이지?
넷째: 몰라. 아빠.
둘째: (과자를 아작아작 씹어 먹으며) 오늘 엄마, 아빠 결혼기념일이잖아. 아빠는 그것도 몰라?
셋째: (타로가 등 뒤에 숨긴 검은 비닐 봉투를 보며) 그건 뭐야?
타로: (당황하며) 아, 아무것도 아니야. 음, 잊은 건 아니고, 차에 깜박 놓고 왔어. 그러니까, 음, 가지고 올 게.
여자교황: (한숨을 길게 내쉬며) 당신 혹시 무슨 일을 꾸미고 다니는 건 아니지?
타로: (못들은 척) 재밌니? 너네는 하루 종일 아스테릭스만 보는 구나. 켈트족은 전투 종족이란다. 크고 강하고 힘이 세지.
넷째: 파노라믹스의 약물이 있어야 해. 날개 한 쌍이 달린 골족 모자도 써야하고.
타로: 그래?
여자교황: (목소리를 높인다.) 무슨 일을 꾸미는 거 아니냐고 내가 물었잖아. 왜 묻는 말에 대답안하고 딴 짓이야?
(타로 역시나 모른척한다.)
여자교황: 나 좀 봐. 자비. (타로, 차에 두고 온 선물을 가지고 온다며 나간다. 엄마 눈치를 살피는 아이들을 보며) 엄마, 화난 거 아니니까. 내 눈치 안 봐도 돼.
둘째: (셋째에게 속삭이며) 그만보고 들어가자.
셋째: 그래.
(둘째, 셋째 다락방으로 올라간다. 넷째만 남아 텔레비전을 끝까지 보고 있다.)
셋째: 말라크! 딜럭스 호텔 안 할래?
넷째: 싫어. 둘이서 해.
둘째: (웃으며) 지금 안 할 거면 나중에 같이 놀자고 해도 안 껴줄 거야.
(넷째 잠시 뜸을 들이다 텔레비전을 끄고 다락방으로 뛰어 올라간다. 타로, 선인장 꽃을 들고 들어온다.)
여자교황: 안장준비 의식을 거친 꽃 같아.
타로: 응?
여자교황: 도대체 어디서 뭘 하고 다니는 거야?
타로: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 다짜고짜 왜 그러는 거야? 설명도 없이 이게 무슨.
여자교황: 당신이 올린 영상 봤어. 두건을 쓰고 있으면 내가 모를 줄 알았나보지? 제발 그러지 좀 마.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힘들게 일궈낸 것들을 한순간에 다 잃을 생각인거야?
타로: 아무 일도 안 해. 할 생각도 없고. 그건 그냥 아무생각 없이 올린 거야. 관심을 끌고 동정을 유발하고 구독자수를 늘릴 생각으로. 돈이 좀 될까, 싶어서.
여자교황: 그걸 말이라고 해?
타로: 당신이 걱정하는 그런 일들은 벌어지지 않아. 나는 돈을 좀 벌어볼 생각이었어.
여자교황: 맹세할 수 있어?
타로: 알라신의 위대한 이름을 걸고 맹세할게. 진심이야.
(여자교황 기분이 조금 풀린다.)
여자교황: 선인장이 꽃을 다 피웠네. 노랗고 붉은... 당신이 내게 청원했을 때는 꽃이 피지 않았었는데.
타로: 그땐 그랬었나.
62.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라말라, 유대인 정착촌 ‘벧엘’ (회상, 밤)
(‘벧엘’에서 라말라로 나가는 길목에 세워진 관문 DCO 검문소를 통과하는 승합차. 사방이 컴컴하다. 불빛과 연기가 점점 가까워져간다. 차창을 살짝 내리는 여자교황.)
타로: 최루탄 냄새 나니까, 차창 문 좀 올려.
여자교황: 차타면 고통스러워. 토할 것 같고. 그나저나 언제쯤 조용해질는지. 여기저기 돌을 던지는 애들만 득실거린다구.
타로: 신경쓰지마. 언제는 안 그랬나?
여자교황: 저러다 죽을 수도 있다고.
타로: 하지만 가만히 있어도 먹고 살 길이 없어서 죽어. 어느 밤 갑자기 유대인들이 마을에 불을 질러 죽을 수도 있고. 죽는 건 똑같아.
여자교황: (차창 문을 올리며) 그렇지 않아.
타로: 가만히 있으면 이스라엘은 우리가 사는 곳 마지막까지 전부 다 차지하려 들 거야.
여자교황: 넌 네 아이가 돌을 던진다고 하면 말리지 않을 거니? 죽을 수도 있는데?
타로: 우리도 돌을 던졌었지만 살아 있잖아.
여자교황: 모두가 우리처럼 운이 좋은 건 아니야. 너는 우리 아이한테도 운을 실험할거니?
타로: 아이?
여자교황: 나...아기 가졌어.
타로: (놀라며) 뭐? 뭘...가졌다고?
여자교황: 나는 네가 우리 아이가 돌을 던지려 들 때 말렸으면 좋겠어. 그게 부모잖아.
타로: (뒤에서 차가 빵빵거리지만 출발할 생각을 않는다.) 정말이야? 네가 내 아이를 가졌다고? 내가 아버지가 됐다니! 오, 세상에. 우리가 부모가 된다니.
여자교황: 좋아?
타로: 당연하잖아. 우리에게도 가족이 생기는 건데.
여자교황: 내게 약속해. 우리 아이는 우리처럼 고아로 만들지 않겠다고. 아이가 후드와 스카프로 얼굴을 가린 채 돌팔매를 휘휘 돌리게 하지 않을 거라고.
타로: 약속할게. 나는 우리아이가 그냥 죽게 내버려 두지 않을 거야.
여자교황: 알라신에게 맹세할 수 있어?
(뒤에서 계속 빵빵거린다.)
타로: (액셀을 밟으며)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볼 일 다보면 브라보에서 쇼핑 좀 할까?
여자교황: 푹 쉬고 싶어. 오늘은 우리에게 너무 힘든 일만 있었잖아.
(여자 교황 뒤돌아본다. 크리스마스 트리로 번쩍이는 유대인 정착촌 벧엘이 멀어져간다.)
타로: 남자 아이야? 여자 아이야?
여자교황: 남자면 좋겠지?
타로: 남자아이면 좋겠지만 여자아이어도 상관없어.
여자교황: 정말?
타로: 그래- 돌을 던지는 일에 많은 힘이 필요한 건 아니니까. (여자교황, 표정이 굳는다. 눈치를 살피다가) 농담이야. 농담.
여자교황: 농담이라도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 자비.
타로: 돌을 던질 필요 없는 곳으로 갈 거야. 가능하다면 그렇게 할 거야. 여기서는 말리기 힘들 테니까.
63. 파리 북부 교외 생느니의 한 아파트 – 베란다
(베란다에는 선인장을 심은 화분 여러 개가 있다. 연인, 빨래를 널다말고 말라비틀어진 선인장을 보고 있다.)
연인: 갖다버려 좀.
매달린 남자: 빨래 널기 힘들면 그냥 둬. 내가 할 테니까.
연인: 어휴.
매달린 남자: 그거 하나 하면서 한숨 좀 쉬지 마.
연인: (베란다 천장에 달린 빨래 건조대에 빨래를 휙 던지며) 내가 말을 말아야지.
매달린 남자: 물이나 좀 줘.
연인: 그런 건 좀 알아서 마셔.
매달린 남자: 나 말고 선인장 말이야.
연인: 자기 요새 왜 그래? 손 하나 까딱하지 않으려고 하고.
매달린 남자: 피곤해 죽겠네. 정말.
연인: 그게 지금 나한테 할 소리야?
(매달린 남자, 대답하지 않고 텔레비전 채널을 돌린다.)
매달린 남자: 우리 이사 갈까?
연인: 응? 뜬금없이 그게 무슨 소리야?
매달린 남자: 지루하잖아. 사는 게.
연인: 음.
매달린 남자: 죽으면 좀 재밌어지려나.
연인: 왜 그래? 요새.
매달린 남자: 농담이야. 농담하는 거야.
연인: 농담으로라도 그런 소리하지 마. (베란다 문을 닫으며) 어디로 가고 싶은데?
매달린 남자: 천국.
연인: 이봐.
(웃음소리가 TV에서 흘러나온다.)
매달린 남자: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연인: 진심이야? 거기가 어디라고 돌아가? 돌팔매질이라도 하게?
매달린 남자: 집을 짓고 싶어.
연인: 당신은 좀 자는 게 좋겠어. 어제도 하루 종일 일했잖아.
매달린 남자: 집을 지을 수 있는 땅이 남아 있으려나 모르겠지만. 아니 땅이 남아있지 않다면 적당한 집을 하나 사면되는 거니까.
(웃음소리, 박수소리가 TV에서 울려나온다.)
연인: (피곤한 듯 얼굴을 손으로 쓸어내린다.) TV좀 꺼.
(매달린 남자, TV 볼륨을 줄인다.)
매달린 남자: 네 생각은 어때?
연인: 거기서 나오고 싶은 사람은 많아도 다시 들어가고 싶은 사람은 드물어.
매달린 남자: 그래?
연인: 몰라 머리 아파. 모르겠어. 난-
매달린 남자: 그냥 해본 말이야. 신경 쓰지 마.
연인: 이제 당신하고 있으면 안전한 기분이 들지 않아.
매달린 남자: 그럼 떨어져 지낼래?
연인: (앉는다) 내가 그럴 수 없는 거 당신도 잘 알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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