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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영 '당신 얼굴 앞에서' 인터뷰 (홍상수 이야기)

시네마천국

by 프로젝트빅라이프 2021. 7. 22.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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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감독의 26번째 장편 영화로 제74회 칸영화제 칸 프리미어 부문에 공식 초청되었다

신작 '당신 얼굴 앞에서'가 74회 칸국제영화제 프리미어 부문에 초청됐다. 그간 많은 영화제에서 수상했지만, 칸 영화제 초청은 처음이다. 소감을 먼저 듣고 싶다.

오래전 일이지만, 내 생에 두 번, 초대받지 않은 칸에 방문한 적이 있다. 그 무렵 장난삼아 수상 소감을 써놓기도 했다. 프리미어 섹션은 비경쟁이라 수상 소감을 발표할 일도 없지만, 내 영화가 칸에 초청받아서 꿈을 이룬 기분이다.

홍상수 감독의 작품에 출연한 계기가 궁금하다.

매우 간결했다. 홍상수 감독에게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영화 만드는 홍상수입니다” 그 메시지를 받고, 나도 메시지를 보냈다. “나는 준비가 됐다. 만나자.” 그렇게 영화를 찍기 시작했다. 홍상수 감독에게 ‘왜 나를 캐스팅했는지’ 이유를 묻지 않았다. 사실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를 만나고 싶었다. 친구가 되고 싶고, 술 한 잔을 나누고 싶었다. 아쉽게도 홍상수 감독이 술을 끊어서 함께 술을 마시진 못했지만, 그의 영화와 영화를 만드는 현장에 완벽히 매료되었다.

홍상수 감독과 만남은 이번 영화 현장이 처음인가?

1970년대 중반 아버지 이만희 감독이 작고한 뒤, 홍상수 감독의 어머니 전옥숙 님을 만난 적이 있다. 그 분은 이만희 감독의 '휴일'(1968)을 제작한 분이다. 그 뒤 2015년 전옥순 님의 빈소에서 홍상수 감독을 처음 만났다. 사실 2015년까지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본 적이 없다.(웃음) TV에서 흘깃 본 그의 영화는 너무 일상적이고, 현실적이고, 불친절했다. 성의 없게 보일 지경이었다. ‘영화의 판타지’를 현실로 믿고 사는 내게 오히려 홍상수 영화의 리얼리티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렇게 비현실적인 홍상수 감독의 영화 주연을 맡았다니, 그 자체로 영화적인데?

내가 약간 홍상수 감독을 질투했던 것 같다.(웃음) 홍상수 감독에게 연락을 받고, 그의 영화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정말 깜짝 놀랐다. 남들이 다 아는 천재를, 나 혼자 뒤늦게 만났구나 싶었다. 그의 모든 영화를 찾아보고, 감격했다. 그렇게 감격한 상태로 현장에서 연기하고, 다시 밤을 새워 그의 영화를 보고 감동하는 날의 연속이었다.

홍상수 감독의 촬영 현장은 굉장히 독특하다. 당일에 대본을 받고, 그 자리에서 바로 연기하는 방식이다. 이런 촬영 방식이 낯설진 않았나?

전혀! 홍상수 감독의 영화 현장에서, 나는 비로소 배우로서 분류될 방을 찾은 느낌을 받았다. 첫 촬영 날의 기억이 정말 생생하다. 적어도 나는 40년 배우로 살면서 거짓으로 연기한 적은 없다고 믿었다. 그런데 홍상수 감독의 촬영 현장에서 ‘지난 날의 내 연기가 모두 가짜였던 게 아닌가?’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매 순간 새로움을 발견하는 과정이었다. 정말 열정적으로 영화 현장에 빠져들었다. 지금껏 연기하면서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자유로움을 느꼈다.

40년 연기 경력의 베테랑 배우가 느낀 ‘생애 최초의 자유로움’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홍상수 감독은 현장에서 매일 A4 1장의 대본을 준다. 그리고 촬영을 마치면 대본을 다시 가져간다.(웃음) 내가 안톤 체홉을 좋아하는데, 홍상수 감독의 시나리오를 보고 체홉이 떠올랐다. 일반적인 영화 시나리오는 구체적이다. 지문도 친절하고, 얼굴 표정까지 대략 그린 콘티도 있다. 그러면 배우는 거기에 갇힌다. 그 지문대로, 콘티대로 연기해야 할 것 같은 함정에 빠진다. 그런데 홍상수 감독의 시나리오에는 ‘함정’이 없었다. 촬영 당일 시나리오를 받고, 그 자리에서 연기하면 끝이다. 내일 해야 할 연기를 미리 걱정할 필요도 없다. 그러니 스트레스 받을 일이 전혀 없다. 메이크업도 하지 말고 현장에 오라고 해서, 눈 뜨면 세수만 하고 무조건 현장에 갔다. 그 날의 상황에 맞게 연기하면 된다. 그 작업이 정말 재미있었다. 믿을 수 없게 자유로웠다.

'당신 얼굴 앞에서'라는 영화의 제목이 굉장히 의미심장하다. 홍상수 감독은 ‘이혜영의 어떤 얼굴’을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글쎄, 촬영 때는 제목도 없었다.(웃음) 감독이 왜 그렇게 제목을 지었는지는 모르겠다. 칸 영화제에 초청받고 나서 홍상수 감독이 영화를 보여줬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내가 지금껏 어떤 스크린에서도 보여준 적 없는 연기를 하고 있었다.

이 영화에 함께 출연한 권해효 배우도 “이혜영 배우의 정말 놀라운 존재감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과찬이다. 오히려 권해효와 그의 아내이자 배우인 조윤희 그리고 서영화, 김새벽 등 홍상수 감독과 함께 오래 작업해 온 명배우들의 품격과 지성에 감탄했다. 함께 촬영하는 내내 ‘이런 배우들과 함께 영화를 찍는다’는 자부심에 차 있었다. 어느 순간엔, 내 자신이 삼류에서 일류로 거듭난 느낌마저 들었다. 특히 권해효 씨는 내가 지금까지 만났던 상대역 중에 최고였다.

배우 이혜영은 1980년대부터 한국 영화계의 이정표를 세워왔다. 너무 겸손한 발언이 아닐까?

나는 내가 ‘애매하다’고 생각해왔다. 아름답다고 하기엔 못 생겼고, 연기를 잘한다고 하기엔 다소 연극적이다. 정체성(Identity)이 확고한 것 같지만, 종종 엉뚱한 짓을 한다. 데뷔 초에는 “분류가 어려운 배우”라는 말도 들었다. 키도 크고 인상이 강해서 어울리는 남자 배우가 없어서 멜로 연기는 못할 것이라는 말도 들었다. 배우의 가치가 ‘발휘’되기 위해서는 그 역할을 ‘발휘할’ 기회가 필요하다. 홍상수 감독과 작업이 그 기회였고, 그 기회가 절실했던 내게 이 작품은 행운이다.

2021년에 '당신 얼굴 앞에서' 외에도 '앵커'와 '해피 뉴 이어'까지 신작이 여러 편 개봉한다. 이제 다시 본격적인 ‘이혜영의 영화 시대’를 기대해도 될까?

항상 내가 속아 넘어가는 말이 있다. “이 작품, 이 캐릭터는 당신 말고는 할 배우가 없다. 당신이 유일하다!”(웃음) 내가 새로운 작품을 선택하는 건 배우 이혜영이 제대로 담길 인물을 찾는 과정이거나, 이미 찾은 뒤에 또 방랑길을 떠나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1981년 뮤지컬과 영화로 데뷔한 이후 40년 간 배우로 활동하면서, 언제나 강렬한 캐릭터와 연기를 선보였다. 그리고 2021년부터 다시 한 번 배우로서 비상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더 클 것 같다.

어린 시절부터 고독했고, 외로웠다. 12살이 될 때까지 웃어 본 기억이 없는 것 같다. 그러다 영화를 만났고, 영화를 보는 게 행복했다. 프레드 아스테어와 진저 로저스를 보면서 배우의 꿈을 꿨고, 그 꿈을 이뤘다. 나는 여전히 꿈을 좇으며 산다. 그리고 여전히 꿈을 믿는 누군가의 꿈이 되고 싶다.



공식 상영 직후 해외 매체들은 "이번 시나리오와 연출은 홍상수 감독의 영화 중 가장 감동적이다. 서울이라는 도시에 보내는 러브레터며, 한 여자의 몸과 마음의 기쁨 넘치는 현존에 대한 뛰어난 인물 탐구다"(Sight & Sound), "아마도 이 영화는 그의 작품 중 가장 정직하고 감동적인, 마음 아프면서도 동시에 밝은 영화일 것이다. 서툴지만 그러나 순수하고 아름다운, 상옥이 언젠가 기타로 연주할 것 같은 멜로디처럼"(MICROPSIA) 등의 평가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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