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생태원 연구팀이 조선왕조실록을 분석했더니 호랑이가 나타났다는 기록이 350건, 표범은 51건이나 발견됐다.
‘창덕궁 후원에 범이 들어왔다는 말을 듣고 북악에 가서 표범을 잡고 돌아왔다.’(1465년 9월 14일, 세조 11년)
‘창덕궁의 소나무 숲에서 호랑이가 사람을 물었다. 포도대장에게 수색해 잡도록 했다.’(1603년 2월 13일, 선조 36년)
‘창덕궁 안에서 호랑이가 새끼를 쳤는데 한두 마리가 아니니, 이를 꼭 잡으라는 명령을 내렸다.’(1607년 7월 18일, 선조 40년)
“만주 호랑이”에서 바클레이는 진도섬에 호랑이 4마리가 서식하는 것을 확인한 후 그 중 성숙한 암/수 호랑이 각 1마리 씩을 포획하였다고 기록하였다.(첨부 사진 1) 나머지 2마리를 좇아 10일간 섬을 헤매었지만 흔적을 찾지 못해 육지로 도망친 것으로 생각하였으나, 3주일 뒤 다시 진도섬에서 호랑이 두 마리의 흔적을 발견했다는 내용도 추가하고 있다. 이는 100년 전만 하더라도 한반도 전역에 호랑이가 서식하였고, 기후와 서식 여건이 양호한 일부 지역은 서식 밀도가 매우 높아 섬에까지 호랑이가 진출하였으며, 섬에서의 서식 밀도도 높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호랑이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사라진 결정적인 이유는 해수구제 정책 때문이었다. 엔도 기미오가 밝혔듯, 1920년까지만 해도 엽총을 가진 조선인 포수는 일본인 포수의 10분의 1에 지나지 않았고, “한반도의 새와 짐승을 걱정할 만한 상태로 만든 장본인은 바로 일본인”이었다.
바클레이의 기록은 한반도에서 왜 호랑이가 사라졌는지를 증언하는 중요한 자료 가운데 하나이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한반도에서 호랑이 사냥이 널리 자유롭게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유한 서양인들은 특히 호랑이의 기념 트로피(Trophy)를 얻기 위해 한반도를 즐겨 찾았다고 한다.
http://www.economicsmagazine.kr/news/articleView.html?idxno=10430
한국의 마지막 호랑이는 1922년 경주 대덕산에서 잡혔다. 1980년 당시 84세이던 김유근 할아버지가 1922년 지게를 지고 사람들과 함께 대덕산으로 나무하러 갔을 때 갑자기 호랑이가 뒤를 덮쳤다고 한다. 다행히 지게가 있어 깊은 상처를 입은 건 아니지만 사람들에 의해 들것에 실려 내려왔다. 이 소식을 들은 미야자케 순사가 주민 수백 명을 동원해서 사살하고, 일본 황족에게 그 가죽을 헌상했다. 그게 남한의 호랑이에 대한 마지막 기록이다.
http://san.chosun.com/m/svc/article.html?contid=201001200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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