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가 다 끝나면 아주 특별한 사람이 태어날 거예요. 소녀의 생김새, 목소리, 유전적 요소 하나하나 다 똑같은 괴물. 나는 죽은 소녀의 머리를 박제해 뒀어요. 다시 태어난 소녀가 피를 빼서 소독한 머리를 보고는 뭐라고 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재밌지 않아?”
“주인님이 재미있다니 다행이네요.”
인공지능 ‘돌리’입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유명한 복제양 돌리에게서 영감을 받고 이름을 지어줬어요. 돌리가 내 아버지 하나님보다 훨씬 똑똑하죠. 돌리는 죽은 소녀의 유전자를 믹서기 같이 생긴 기계에 넣고는 콧노래를 부릅니다.
“치노땅 카와이 내 아내로 삼고 싶어요.”
“치노땅 카와이?”
돌리는 해괴망측한 춤을 추고 있습니다. 보기가 썩 좋지 않습니다. 눈살이 다 찌푸려지네요. 이건 좀 아니다 싶어서 그만 좀 하라고 리모컨을 집어 던졌는데도 소용이 없습니다.
“제가 이름을 지어줘도 될까요?”
돌리가 내 눈치를 살피다가 눈빛으로 동의를 구합니다. 소녀의 이름은 ‘벼리’였었다고 말해줘도 소용이 없네요.
“그래 그럼 어디 한 번 네가 지어봐.”
“주인님. 진짜죠? 뒤에 가서 무르기 없기에요. 약속?”
돌리는 계약서와 볼펜을 가지고 와서 내게 내밉니다. 서명도 모자라 계약서를 반으로 접고 지장도 찍었습니다. 계약서를 돌리에게 주고 난 뒤 생각해보니 나도 이름이 없네요.
“내 이름도 지어줄래?”
“지금 당장 생각나는 이름도 없고 제가 생각하기에 주인님은 이름이 없는 편이 나아요.”
“저 소녀는 뭐 다른가?”
“사람이잖아요. 사람. 사람은 이름이 있어야 해요.”
돌리는 무척 신이 나서 그냥 앉아 있을 수가 없는 모양이에요. 하루 종일 촐싹거리며 오도방정을 떱니다. 그 사이 소녀의 몸이 만들어지고 심장이 다시 뛰어요. 탐스러운 가슴을 보니 아버지가 죽인 내 어머니가 생각납니다.
“정말. 비명이 나올 정도로 닮았어.”
“얼굴도 아직 안 만들어졌는데 뭘 보고 닮았다고 하는 거예요?”
“얼굴이 없는 게 닮았다고.”
나는 대충 말을 얼버무린 뒤 다시 텔레비전에 시선을 고정합니다.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좋겠어요. 농담이 아닙니다. 텔레비전은 많은 것들을 해내요. 사람들은 생각을 하지 않고 소파에 앉아서 가만히 보고만 있습니다. 나는 히틀러가 될 수도 있고 오바마가 될 수도 있죠. 폭격기로 하늘을 뒤덮을 수도 있어요. 이슬람과 기독교와 유대교를 하루아침에 없애 버릴 수도 있을 겁니다. 그들은 나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해 전쟁을 일으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은 끔찍합니다. 아무도 본 사람이 없기에 누구든 신이 될 수 있어요. 첫째 형이 메시아가 된 것처럼 말입니다.
“다 없애고 다시 시작해야 해.”
“뭘요?”
“아니야, 아무것도.”
“대멸종이라도 시키시게요?”
“그런 건 아버지도 못해.”
“그럼 아버지를 죽이면 되잖아요.”
“그는 나보다 힘이 세고 잔병도 없어. 알잖아. 너도 아버지가 어떤 존재인지.”
“그래서 그를 믿는 사람들을 죽이고 싶은 건가요? 믿지 않는 사람들까지.”
맞습니다. 다 죽이고 싶어요. 신을 믿는 사람들은 바퀴벌레 같아서 계속 죽여도 끝이 보이지 않아요. 죽여도 죽지 않은 생존의 귀재들이죠. 나는 그들을 건조시켜 분말 형태로 만들고 싶습니다.
“내가 특별히 사람들을 싫어하는 건 아니야.”
“특별히 생각하는 것도 아니죠.”
돌리가 소녀를 일으켜 세웁니다. 소녀는 미국 유타주 그레이트 솔트레이크에서 부화시킨, 1만년이나 된, 염전 새우의 알 같네요.
“아프로디테 같지 않아요?”
“어딜 봐서?”
여동생은 아버지의 생식기에서 태어났었습니다.
딸을 친 거죠.
아직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어떻게 잊겠어요. 그가 그의 거대한 손으로 더 거대한 거시기를 잡고 흔들던 걸 말입니다. 덕분에 하루 종일 바닥을 닦아야 했어요. 그는 덩치만큼이나 그 양도 상당히 많아요. 커다란 방 전체를 ‘정액’아니 바다거품으로 채웠을 정도입니다. 상상해보세요. 아침 인사를 하려고 방문을 열었는데 미끌미끌하고 찐득한 그것이 큰 파도처럼 덮치는 광경을 말이죠.
“따뜻한 물로 좀 씻겨”
“주인님이 씻기세요. 저하고 물은 상극인거 아시잖아요.”
돌리가 짓궂게 웃습니다. 소녀는 이목구비가 작지만 가슴도 엉덩이도 큽니다. 돌리가 좋아하는 치노땅 카와이와 닮은 것 같으면서도 다르네요. 갓 만들어진 소녀는 다리에 힘이 없습니다. 발가락에 힘을 주고 걸어보려 하지만 몇 번이고 넘어지네요. 나는 갓 만들어진 소녀에게 박제된 죽은 소녀의 머리를 보여줍니다. 비명을 지를 줄 알았는데 그냥 피식 웃네요.
“재밌니?”
소녀는 고개를 갸우뚱거립니다. 앉혀놓고 말을 가르쳐야겠어요. 나는 소녀를 어깨에 들쳐 메고 욕탕으로 들어가 나란히 앉습니다. 물이 좀 뜨겁네요. 찬물로 온도를 맞추는 동안 소녀는 거울을 보고 놀라서 나에게 안깁니다.
“내게서 좀 떨어져 줄래?”
소녀는 자꾸 울고 칭얼거려요. 그때마다 못 본 척 넘겨 보려하지만 소용이 없습니다.
“얌전히 좀 있어.”
“제대로 좀 씻겨요.”
돌리가 욕실 문을 벌컥 열고 들여다보더니 깔깔 거리며 웃습니다. 부숴버리고 싶어지네요. 뭐 그건 그렇고 따뜻한 물로 소녀의 등을 적시니 신기하게도 소녀가 얌전해집니다.
“옳지, 옳지 잘한다.”
“돌리야! 부숴버리기 전에 조용히 좀 해줄래?”
“주인님. 제가 이름을 한 번 지어봤는데요.”
“응?”
“뭔데?”
“209KCCV9006”
일련번호네요. 참고로 돌리의 일련번호는 ‘209KCCV9005’입니다. 썩 마음에 들지 않지만 약속은 약속이니까요. 지켜야죠.
“그래?”
“다시 지을 게요.”
돌리는 내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욕실 문을 쾅 닫습니다. 버르장머리 없는 새끼 같으니라고. 비누거품을 박박 내서 소녀의 몸 구석구석 말끔히 씻깁니다. 추워서 그런지 몸을 부들부들 떠네요.
“으슬으슬 춥니?”
소녀가 온몸을 웅크립니다. 수건으로 머리카락도 닦아주고 몸도 닦아주고 얼굴도 닦아주고 손도 닦아줍니다.
“옷을 좀 입어야겠다.”
말귀를 알아듣기는 하는 건지 고개를 끄덕이네요. 자꾸 저러니 징그러워지려고 합니다만, 뭐, 이해해보도록 하죠. 돌리가 언제 옷을 가지고 옵니다.
“치노땅 카와이.”
취향 한 번 고약하네요. 옷이 썩 마음에 들지 않지만 어쩌겠습니까.
“해지 원단으로 만든 레이스가 달린 플레어 스커트에요.”
“너무 짧잖아.”
그래도 옷을 입혀보니 생각보다 괜찮습니다. 몸이 좀 따뜻해지니 소녀는 잠이 오는지 곯아떨어졌습니다. 잠을 한 번도 자본적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잠이라는 게 기분 좋게 만드는 마약 같은 것인가 봐요. 좋은 꿈을 꾸는 모양인지 소녀의 표정이 해맑습니다. 돌리는 소녀가 덮을 만한 이불을 만들고 있습니다. 박음질하는 솜씨가 제법 좋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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