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지는 않을 거야.”
“네?”
“어쩌면 오늘 그냥 집에 가라고 할지도 모르는 거고. 아버지는 워낙에 변덕이 심하거든.”
긴 머리 소녀가 대머리가 됐네요. 나는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쓸어 담고 소녀는 거울을 보고 울어요. 머리 빨리 기르는 법이라도 알려줘야 할까봅니다.
“괜찮아. 머리야 금방 기르니까.”
“오늘 죽일 거잖아요.”
소녀가 손톱으로 손을 꾹 누르며 말했어요. 저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만 계속 반복하면서 소녀와 함께 아버지가 있는 방으로 갔습니다. 그의 방에는 변변찮은 가구하나 없습니다. 나는 식탁에 수저받침과 냅킨을 놓고 냄비에 밥을 짓습니다. 아버지가 아니라 소녀가 먹을 밥입니다.
“뭐 먹고 싶은 거라도 있어?”
소녀는 고개를 계속 푹 숙이고 있어요. 조금이라도 더 오래살고 싶으면 아버지 앞에서 저러지 말라고 했는데 그새 까먹은 모양입니다. 뭐 이제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긴 하죠.
“먹을 건가요?”
“응?”
“아!”
아버지가 나이프를 접시위에 내려놓습니다.
소녀는 아버지가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개새끼죠. 사실. 그는 소녀를 너무 먹고 싶어 합니다. 입에 수박을 물린 듯 군침을 질질 흘리고 있어요. 식탁에 또 구멍이 났네요. 소녀는 괴로워합니다. 그에게서는 아침소변 냄새가 나요. 가까이서 냄새를 맡지 않아도 올라오죠.
“냄새가 좀 심하지? 양치를 해도 이러네.”
“네 좀 심하네요.”
“조금만 참으렴.”
아버지가 기분 나쁜 감정을 애써 억누르며 말합니다. 물론 소녀의 눈치를 봐서 그런 건 아니에요. 그는 먹을 것을 앞에다 두고 욕을 하지 않아요. 저는 그가 식사를 즐겁게 할 수 있도록 소녀에게 정해진 일종의 규칙을 말해 줍니다.
“질문 하지 마. 의문을 갖지 마. 그가 하라는 대로 만 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죽어서도 천국에 못가. 천국에 가고 싶어 했잖니?”
저는 소녀를 위해 정성껏 음식을 차립니다. 모두 귀하고 맛이 좋은 음식들이죠. 소녀는 최대한 천천히 밥을 먹습니다. 내 아버지 하나님은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른 모양입니다. 그런 말 있잖아요. 먹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른다고. 물론 부모가 자식이 밥을 먹을 때 하는 말과는 의미가 다릅니다. 사람들이 가축을 살찌우고 때가 되면 도축장으로 가 목을 그어 도살하고 아무렇지 않게 그냥 살아가는 것처럼, 내 아버지 하나님도 그래요. 그는 소녀를 살찌우고 때가 되면 놋쇠황소에 소녀를 넣고 먹기 좋게 익히라고 할 거에요. 그는 내가 뼈를 바를 필요도 없이 잘근잘근 소녀를 씹어 먹을 겁니다. 배가 고픈 것도 아닌데 말이죠.
“입맛에 맞지 않니?”
하나님께 영광과 회개와 감사기도를 하는 소녀를 보고는 그가 묻습니다. 소녀는 그가 하나님이라는 생각은 추호도 못하는 모양이에요. 저는 소녀에게 그의 눈을 똑바로 보고 일용할 양식을 줘서 고맙다고 말하라고 시킵니다. 그렇게 안하면 소녀가 식사를 끝마칠 수 없거든요.
“오늘도 일용할 양식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제가 시키는 대로 잘하네요. 때마침 형이 집에 왔어요. 형의 이름은 예수입니다. 일주일 내내 십자가에 못 박혀 있다가 이제야 온 거죠. 막내는 소녀 옆에 바싹 붙어 앉았습니다. 소녀가 조금 놀란 눈치네요.
“괜찮아. 괜찮아. 조금씩 천천히 먹어.”
소녀는 말이 없습니다. 형은 때때로 소녀의 허벅지 아래로 손을 넣습니다.
형은 사람을 좋아합니다. 사람이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죠. 아니 여자를 좋아한다고 해야 할 까요. 사람들은 그를 성자라고 부릅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하나님 아버지는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일으켜 세웠죠. 그가 처음부터 어린소녀를 좋아했던 건 아니에요. 그를 욕하지 마세요. 그가 요즘 좀 힘들거든요. 가볍게 즐기는 건 건강한 한 끼를 먹는 것과 같습니다. 그는 사람이었던 적이 있어서 사람을 닮았어요.
나쁜 사람.
악은 그것의 본성에 따라 나쁜 것이 아니다, 라고 아퀴나스가 말했잖아요. 형은 성자였었던 적이 있었고 그것이 그의 고유성입니다. 그가 뭘 하든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인 건 변하지 않아요.
“그만해요.”
소녀가 파랗게 질린 얼굴로 소리칩니다.
“아가야, 이렇게 할 수 밖에 없는 날 용서해줘.”
그는 소녀의 간 몽우리 진 가슴을 주물럭거린 뒤 풀어줬어요. 형은 늘 저래요. 아버지가 먹을 것들을 손으로 만지고 느끼고 관찰하죠. 그리고는 한 번도 상처주지 않은 것처럼 태연하게 근엄한 표정으로 조각상 같은 외모를 자랑합니다. 나는 스스로 후광을 만든 형이 좀 우습지만 단 한 번도 웃은 적이 없어요. 인간이 아니면 그래도 돼요.
“이름이 뭐니?”
형의 눈빛은 기름이 다 들어가서 느끼해요. 아버지는 그런 형을 대견하게 바라봅니다. 모두 아버지가 형에게 가르쳐 준 것들이죠. 소녀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됩니다. 두렵고 끔찍하겠죠.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인 건 형들이 요새 좀 바빠서 집에 오는 일이 드물다는 겁니다. 소녀는 형들을 다 보지 못하고 내 아버지 하나님 위장 속에 좋은 음식이 되겠죠.
“제발 집에 좀 보내줘요.”
“......”
아 그러지 말라고 했는데 소녀가 밥을 먹다 말고 대성통곡을 합니다. 벼리야. 벼리야. 내 아버지 하나님이 소녀의 이름을 다정하게 불렀습니다. 아! 저렇게 부를 때가 가장 위험한데요.
“그만 좀 해요. 체하겠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온 몸에 독이 퍼져서 고기가 질겨지는 거 아시잖아요. 마지막인데 행복하게 해줘야죠.”
소녀가 토끼 눈을 뜨고 저를 바라봅니다. 고마운 모양이네요.
기절했어요. 제 정신을 차려야 할 텐데 걱정이 됩니다. 아버지가 이상해요. 아니, 아버지가 웃습니다. 형은 점잔을 떨면서 포도주를 마셔요. 저는 소녀의 입을 막고 코에 바람을 불어넣어 인공호흡을 합니다.
“괜찮아?”
“괜찮아요.”
소녀가 눈을 뜨네요.
“지금 죽으면 안 돼. 죽으려거든 조금 있다가 죽으렴. 아직 내 요리가 끝나지 않았거든.”
나는 소녀를 바닥에 내팽개치고 프라이팬에 굽던 양고기를 뒤집습니다. 조금 탔어요. 맛이 있으려나, 모르겠습니다. 저는 아버지나 형처럼 식사를 하지 않아요. 맛은 느끼지만 먹으면 배가 아파요. 양고기는 소고기보다 엷고 돼지고기보다 진한 선홍색입니다. 근섬유가 가늘고 조직이 약하기 때문에 소화가 잘 되고 특유의 향이 있죠.
소녀는 어떨까요?
아버지는 오늘 좀 이상하네요. 배가 빵빵합니다. 그럴 리가 없는 데 말이죠.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인의 나라를 세웠을 때도 이렇지는 않았는데요. 세계전쟁이 일어났을 때도 내 아버지 하나님의 배는 등에 붙어 있었습니다.
“배부르세요?”
“아니 전혀. 저년을 놋쇠 황소에다가 집어넣어 버려.”
작은 형이 바퀴 달린 놋쇠 황소를 밀고 방으로 들어옵니다. 놋쇠 황소는 칠면조를 굽는 오븐 같아요. 저 안에 들어가 사람이 비명을 지르면 황소 입에서 웅장한 소리가 납니다. 제 어머니도 저 놋쇠 황소 안에서 죽었어요. 완전히 까맣게 변해버렸죠. 제 어머니는 아버지의 딸이자 아내였습니다. 인간들은 내 아버지 하나님을 닮았어요.
사악하고 교활합니다.
물론, 저도 아버지를 닮았죠. 아버지는 딱히 인간을 만 악의 근원이라고 가르치거나 하지는 않았어요. 딱히 인간에 대한 불신이나 증오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는 그냥 심심 할 뿐이에요. 사람들의 말을 빌려 말하자면 심신장애로 사물의 변별력이 없고 의사를 전혀 결정하지 못하는 상태로 태어난 거죠.
한 마디로 말하면 그냥 미친놈이죠. 미친놈을 믿는 사람들은 더 미친놈들이라고 해도 될까요. 소녀는 놋쇠 황소 안에서 비명을 지르고 놋쇠 황소는 나팔소리를 높일 겁니다. 아 생각만 해도 감성에 젖을 것 같아요. 음악은 끔찍한 고통마저 지극한 행복으로 바꿉니다. 기적 같은 일이죠. 소녀 말고 우리에게요.
불에 잘 달궈진 쇠 냄새를 맡은 소녀의 얼굴이 공포에 질립니다. 내 아버지 하나님은 소녀가 죽는 순간 마음에 공포뿐이기를 바랍니다. 소녀는 정신이 없습니다.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고 싶지도 않은 모양이에요. 나는 소녀의 손을 잡아끌면서 이야기합니다.
“저 안에서 얼마나 오래 살 수 있겠어?”
“네?”
소녀는 손이 정말 작네요. 가까이서 보니 더 어려보입니다. 어쩌면 좀 더 빨리 익을지도 모르겠어요. 소녀가 제 소매를 잡습니다. 나는 소녀의 팔을 뿌리치구요. 어쩌겠니? 그가 원하는 걸.
“1루에서 발을 떼지 않으면 2루까지 도달 할 수 없어.”
이런저런 사람들이 자주하는 말을 주워들어서 해봤는데 소녀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눈치에요. 그래서 저는 다시 한 번 소녀에게 말합니다.
“괜찮아. 하나도 아프지 않아.”
“들어가 보셨어요?”
소녀는 계속 알딸딸한 모양입니다. 하나마나 한 질문을 다 하네요.
“내가 저 안에 들어가 봤을 리 없잖아.”
“그런데 어떻게 하나도 아프지 않다고 할 수가 있죠?”
“원래 한 번도 겪어보지 않아야 하나도 아프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거란다.”
“만져 보기라도 해요.”
“응?”
사실 화상이라는 게 뭐 대단히 아픈 게 아닙니다. 한 여름 땡볕에 서 있다가 살이 빨갛게 익는 것에 지나지 않아요. 손을 갖다 댔는데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저한테는 말이죠. 눈을 꽉 감은 채 벌개 진 얼굴로 땀을 뻘뻘 흘리고 있던 작은 형이 놋쇠 황소에 달린 문을 열고 소녀의 등을 떠밉니다. 소녀는 발버둥치고 놋쇠 소 밑에 쌓아 놓은 장작불은 소녀의 긴 치맛자락에 옮겨 붙어 타닥타닥 소리를 내요.
“개새끼! 내가 반드시 이 안에서 살아남아서 네 놈을 갈기갈기 찢어 버릴 거야.”
소녀가 내 아버지 하나님에게 저주를 퍼붓습니다. 놋쇠 소 몸에 있는 문을 열고 들어가면 절대로 나올 수 없어요. 아!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하네요. 소녀는 모래시계 속 모래가 다 떨어질 때까지 비명 한 번 지르지 않고 있습니다. 나는 책상위의 모래시계를 다시 뒤집어요.
5. 카니발리즘 (0) | 2018.12.07 |
---|---|
4. 카니발리즘 (0) | 2018.12.07 |
3. 카니발리즘 (0) | 2018.12.07 |
1. 팔라리스의 놋쇠 황소 (0) | 2018.12.07 |
-프롤로그 - (1) | 2018.10.30 |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