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의 외주화’를 방지하는 이른바 ‘김용균법’(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 이하 산안법)은 자유한국당이 재계의 반발논리를 들어 논의에 제동을 건바 있다. 자유한국당이 법안 자체에 부정적인 태도를 내비친 '김용균법'이란 대체 무엇일까?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가 23일 오전 충남 태안군 보건의료원에 차려진 빈소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마친 뒤 빈소 입구에 세워진 아들 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태안/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예고된 죽음, 대책은 없었다
지난 12월10일 오후 8시40분쯤 김씨는 홀로 밤샘 근무에 들어갔다. 김씨는 이날도 컨베이어 벨트 안으로 들어가 점검을 시작했다. 컨베이어 벨트에 떨어진 석탄을 치우고 탄가루를 씻어 내린 물을 빼는 배수관도 확인했다.
오후 10시35분쯤 김씨는 환승타워로 진입했다. 6분 후에는 회사 관계자와 잠시 통화했다. 하지만 이후 김씨는 아무런 연락도 되지 않았다. 김씨의 휴대전화는 신호는 갔지만 연결이 안 됐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이다.
한국서부발전 측은 다음 날 새벽 1시가 넘어 수색을 시작했다. 하지만 사고지점의 구조가 복잡해 김씨를 찾는 데 애를 먹었다. 3시24분쯤 김씨는 컨베이어 벨트 밑에 끼여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김씨가 전화 통화가 되지 않은 10일 밤 11시 이전에 사고를 당한 것으로 추정했다. 꿈 많던 청년 김용균씨는 이렇게 위험한 작업 환경 속에서 죽어갔던 것이다.
공개된 김씨의 휴대전화에는 고된 하루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작업 보고를 위해 점검한 설비들을 일일이 사진이나 영상으로 촬영해 기록해 둔 것이다. 사고 당일 근무하면서 촬영했던 12장의 사진도 들어 있었다. 사진이 마지막으로 촬영된 시간은 10일 밤 9시36분이다.
김씨의 유품은 고장 난 손전등, 검은색 탄가루에 얼룩덜룩해진 수첩, 김씨의 이름표가 붙은 작업복, 그리고 컵라면 세 개와 과자 한 봉지가 전부였다. 유품 중 하나인 손전등은 회사에서 지급한 것과는 다른 것으로, 김씨가 사비를 들여 산 것이다.
동료들에 따르면, 김씨는 주간근무 때는 점심을 식당에서 배달시켜 대기실에서 먹었지만, 야간근무 때는 식당에서 배달조차 어려웠다. 회사에서는 야식비나 야식을 제공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김씨와 동료들은 주로 컵라면이나 빵으로 저녁을 때우는 일이 많았다.
김씨는 사고 당일에는 컵라면조차 먹지 못한 채 일하다 숨을 거뒀다. 태안화력발전소 사고를 조사하는 경찰은 “이동 동선과 시간대를 따져보면 그는 잠시도 쉬지 않고 일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누가 김씨를 죽음의 낭떠러지로 내몰았던 것일까. 이에 노동계에서는 위험한 일을 하청업체에 맡기는 ‘외주화’에 원인이 있다고 성토한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생긴 발전소 안전사고 346건 중 337건(97%)에서 하청 노동자가 다치거나 사망했다. 사망자 40명 중 37명(92%)이 하청업체 직원이었다. 원래 발전소의 경우 정규직은 2인1조로 일하는 시스템이었다. 하지만 외주화되면서 비용절감을 이유로 안전수칙은 지켜지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2인1조 근무만 지켜졌어도 김용균씨의 사망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발전소의 부실한 안전검사도 문제로 지적됐다. 김씨가 숨진 석탄 컨베이어 벨트는, 불과 두 달 전 안전검사에서 합격 판정을 받았다. 안전검사 항목은 컨베이어 벨트 안전장치 정상 작동 여부, 노동자에게 위험을 미칠 수 있는 부분의 덮개 등 안전장치 유무, 통로의 안전성, 비상정지장치의 적절한 배치와 정상 작동 여부 등이었다. 이 항목들은 전부 합격 판정을 받았다. 안전하다는 컨베이어 벨트가 사람의 목숨을 빼앗아갔던 것이다.
불법 파견 정황도 드러났다. 현행 ‘파견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원청이 하청 노동자에게 직접 업무 지시를 내릴 경우 ‘불법 파견’으로 규정하고 있다. ‘고 김용균 시민대책위원회’가 공개한 카톡을 보면 원청인 한국서부발전 관리자가 하청인 한국발전기술 노동자에게 직접 업무를 지시하는 내용이 담겼다.
시민대책위는 “동료의 휴대전화에 남아 있는 이런 대화 내용으로 볼 때 원청이 하청 노동자를 지휘 감독한 것으로 볼 수 있고 하청 노동자들은 불법 파견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한국서부발전에 대해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 적용을 검토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도 특별감독에 나섰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숨진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가운데)씨가 26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회의장 앞에서 국회를 향해 ‘김용균법’(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의 조속한 처리를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출처] - 국민일보
김용균법이란?
정부가 발의한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은 원청이 안전·보건조치를 해야 하는 장소를 22개 위험장소에서 원청 사업장 전체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를 위반하면 하청 사용자와 같은 5년 이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위험의 외주화를 막기 위해 도입하려는 유해작업 도급금지는 상대적으로 여야 공감대가 떨어진다. 정부는 전부개정안에서 현행법에서 고용노동부 장관 인가를 받도록 한 도금작업을 포함한 유해작업 도급을 아예 금지했다. 노동부 장관 허가를 받아야 하는 물질을 제조·사용하는 작업도 마찬가지다.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노동부 장관이 내린 작업중지명령을 해제하는 방식도 쟁점이다. 정부는 사업주가 작업중지 해제를 요청하면 별도 심의위원회를 열어 해제 여부를 검토하자는 입장이다.
영업비밀을 이유로 물질안전보건자료(MSDS)에 물질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것을 제한하는 것에 대해서도 여야가 공감을 이뤘다. 정부는 전부개정안에서 노동부 장관 사전승인을 받아야 비공개할 수 있도록 했다. 물질안전보건자료 영업비밀 적용 비율은 2009년 45.5%에서 2014년 67.4%로 급증했다.
여야는 또 관련법 위반으로 산재사망이 발생했을 때 사용자 처벌을 강화한다는 원칙에도 의견을 접근했다. 다만 처벌수위에 대해서는 이견이 적지 않다. 정부는 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한 현행법을 10년 이하 징역으로 상향했다. 노동계는 여기에 더해 징역 하한선 도입을 촉구하고 있다
여야 교섭단체 3당의 정책위원회 의장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간사들로 구성된 ‘6인 협의체’가 산업재해를 획기적으로 줄이려고 정부가 28년 만에 마련한 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안을 27일 환노위에서 의결하기로 합의했다.
환노위 고용노동소위 위원장인 임이자 자유한국당 의원은 이날 오후 6인 회동이 끝난 뒤 브리핑에서 이렇게 밝힌 뒤 “(8가지 쟁점 중 최종 합의에 이르지 못했던) 2개의 쟁점에 대해 합의를 봤다”며 “도급인의 책임과 관련해서 도급인의 사업장과, 도급인이 지배·관리하는 장소로 대통령령에서 정한 장소를 대상으로 하기로 했다. 양벌 규정의 경우 (정부안대로) 최대 10억원으로 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임 위원장은 “도급인의 형사처벌과 관련해 현재는 ‘1년 이하 1천만원 이하’인데, 정부안은 ‘5년 이하 5천만원 이하’였지만 이걸 ‘3년 이하 3천만원 이하’로 하기로 합의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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