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곶해(串蟹)'에서 비롯되었다. 게의 등딱지 좌우에 날카로운 두 개의 꼬챙이가 있다. '곶'은 꼬챙이의 옛말. 곶해가 꽃게로 바뀐 것이다
*조선시대 숙종 때 실학자 이익이 ‘성호사설星湖僿說’에서 꽃게의 어원을 풀이한 것을 보자. “유모라는 것은 바다에 사는 커다란 게인데 색은 붉고 껍데기에 각이 진 가시가 있다. 세속에서 부르는 이름은 곶해串蟹다. 결국 곶게인데, 등딱지에 두 개의 꼬챙이串처럼 생긴 뿔이 있다. 그래서 곶게로 불리다가 꽃게가 됐다.”
이유원의 「임하필기林下筆記」에 나오는 일화가 흥미롭다. 꽃게탕에 푹 빠진 정조 임금의 이야기가 담겨 있어서다.
정조가 총애하던 신하 정민시의 처갓집은 꽃게탕의 맛이 좋기로 유명했다. 하루는 정조가 정민시를 불러 꽃게탕을 맛보자고 청했다. 임금의 요청이라며 사위의 부탁을 받은 장모가 꽃게탕을 끓였는데 이를 본 장인 이창중이 꽃게탕을 땅에 엎어버렸다. ‘신하가 사사롭게 음식을 만들어 임금께 바치면 안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정조는 꽃게탕을 엎어버린 이창중을 벌하지 않고 중용했다. 대인배의 인품을 보인 것이다.
꽃게탕에 얽힌 정조의 일화가 또 있다. 조선시대 궁중 음식을 다룬 옛 조리서 *「이조궁정요리통고」李朝宮廷料理通攷에는 ‘게감정’이라는 요리가 나온다. 게살을 따로 발라 내 양념한 뒤 게 껍질에 소를 채워 전처럼 부친다. 그 다음 고추장을 푼 국물에 넣고 끓인다. 당시 궁중 음식 가운데 유일하게 빨갛고 매운 음식이었다고 한다. 스트레스가 심했던 정조는 게감정의 얼큰한 맛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즐겼다. 궁중의 꽃게탕이 정조의 두통을 낫게 한 셈이다.
출처: 더스쿠프
저자이자 조선 왕실 궁중 음식의 기능보유자였던 한희순(韓熙順, 1889~1971)은 조선의 마지막 주방 상궁이었다.1901년에 13세의 나이로 덕수궁에 입궁하여 1907년에는 경복궁의 수라 상궁이었고, 1919년에 고종 황제가 승하한뒤 1965년까지는 창덕궁 낙선재에서 마지막 황후인 순정효황후(純貞孝皇后, 1894~1966)를 모셨다. 공동 저자인 황혜성(黃慧性, 1920~2006)은 30여 년 동안 한희순에게 궁중 음식 기능을 전수받았다.
조선 왕실의 궁중 음식 조리법은 대부분 상궁들의 기억을 통해서만 전수되었다. 이 책은 궁중 음식의 실체를 최초로 체계화하고 기록으로 남긴 중요한 문헌이다. 특히 조선 왕실의 궁중 음식이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는 계기가 되었다.
출처: 민족문화대백과사전
꽃게 잘 고르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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