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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용어] 가면 쓴 인격 '페르소나(Persona)'

시네마천국

by 프로젝트빅라이프 2020. 5. 23.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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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소나(Persona)란 고대 그리스 가면극에서 배우들이 썼다가 벗었다가 하는 가면을 말한다.

영화에서 페르소나는 감독이 영화 속에서 자신의 의도를 드러내기 위해, 반복적으로 등장시키는 특정 배우를 의미하기도 한다. *작가주의 영화 감독들은 자신의 영화 세계를 대변할 수 있는 대역으로서 특정한 배우와 오랫동안 작업하는데, 이때 배우는 감독의 페르소나(가면)가 된다.

*작가주의: 프랑수아 트뤼포가 <카예 뒤 시네마>에서 <프랑스 영화의 한 경향>이라는 글을 발표하면서 등장. 트뤼포는 당시에 단지 장인수준에 머물렀던 프랑스 일부 감독들, 르누아르, 브레송, 막스 오풀스, 장 콕도 등과 같은 감독들에게 작가라는 호칭을 붙이기 시작했다.
헐리우드에서 B급영화를 찍던 감독들을 '재발견'하게 되면서 그들을 작가라고 부르게 된다.


외적인격(persona)과 내적인격(anima/aimus)



-칼 구스타브 융

 인간은 집단 속에 있으면서 집단과 어떤 형태로든지 관계를 맺고 사는 사회적 동물이다. 그러나 인간은 사회적 동물인 동시에 정신적인 존재이다. 한 사람이 사회적인 삶을 위해서 자기에게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면서 얻어진 자아의 또 다른 측면을 가리켜서 융은 페르소나라고 불렀다. 본래 페르소나란 극중에서 특정한 역할을 하기 위해 배우가 썼던 가면을 의미한다. 페르소나의 반대편에는 하나의 대극쌍을 이루는 아니마/아니무스가 있다. 융은 이들의 활동하는 양상에 따라서 페르소나를 외적인 인격, 아니마/아니무스를 내적인 인격이라고 불렀다.

   페르소나는 한 사람의 자아가 사회와 만나서 관계를 형성하는 복합적인 전체를 가리킨다. 페르소나는 그에게 주어진 임무에 충실히 적응 하고자는 것이며, 개인적인 행동으로 보이지만 집단적인 정신의 한 단면이다. 융은 페르소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페르소나란 한 개인이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서 사용하고 있는 체계 또는 그가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태도를 가리킨다. 예를 들어서 모든 직업은 모두 그의 독특한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다. 이 페르소나는 사람들이 그 자신과 이 페르소나를 동일시 할 때만 위험한 것이 된다. 즉 교수들이 그 자신의 교과서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있다든지 테너 가수들이 자신의 목소리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있는 경우, 그때는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우리는 이렇게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즉, 페르소나란 실제로는 어떤 사람 그 자체는 아닌데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은 물론 그 자신까지 그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1

   페르소나는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희생시킨 바탕 위에서 형성되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자아를 페르소나와 너무 동일시할 때 그의 진정한 자아는 희생되고 만다. 그러므로 우리가 페르소나라는 가면 뒤에 숨어서 이 세상과 접촉할 때, 우리는 “개인적인 삶”은 찾아볼 수 없게 되며, 우리는 삶의 진정한 모습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2 그러나 융은 페르소나를 없애야 할 것으로 보기보다는 구별해야 할 것으로 이해하였다. 왜냐하면, 페르소나는 사람이 사회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많은 경우에 우리에게 편리한 기능을 해주기 때문이다. 페르소나가 있음으로 해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건전한 인간관계를 맺고 살 수 있으며, 페르소나가 원활히 기능할 때 우리들의 정신 건강도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3

 

   융은 사람들이 자신의 자아와 페르소나, 아니마/아니무스를 분화시키고, 그 자아들을 인식하여 어느 것 하나와 자신을 완전히 동일시하지 않고 그 모든 것을 올바르게 발달시켜 나가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우리는 이렇게 함으로써 외적인 삶에서의 요청과 내적인 삶에서의 요청에 균형을 맞춰 나갈 수 있는 것이다.

  

   페르소나를 정신의 외면이라고 한다면, 정신의 내면에는 아니마/아니무스가 있다. 아니마/아니무스는 페르소나를 보상하는 정신적인 요소인 것이다. 페르소나가 한 사람의 외적인 상황과 관계를 맺고 있는 정신요소라면 아니마/아니무스는 그의 내면세계와 맺고 있는 내적인 태도와 연관된 정신요소이다.  아니마는 남성의 마음속에 있는 모든 여성적인 심리경향이 의인화된 것이다. 융에 의하면 아니마/아니무스는 인류가 조상 대대로 이성에 관해서 경험한 모든 것의 침전물이다. 따라서 아니마/아니무스는 우선적으로 집단적 무의식의 원형으로서, 다른 한편으로는 부모와의 경험을 토대로 형성된다.

   남성의 아니마는 일반적으로 그의 모친에 의해 형성된다. 모친에게 받은 영향이 부정적인 사람들은 아니마가 종종 불안하고 우울한 기부이나 불확실하고 불안정하며 화를 잘 내는 성격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러나 모친에 대한 경험이 적극적인 남성은 아니마의 전형적인 방식이나, 또는 다른 방식으로 영향을 받아 결국 여자같이 되거나 여자의 희생물이 되어서 인생의 어려운 문제들에 직면할 때 능력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4 아니마는 종종 남성의 논리적인 정신을 드러내어 남성의 마음을 참다운 내적 가치와 조화시켜 내적 심층으로 인도한다.

   여성에게 있어서의 남성의 의인화, 즉 아니무스 또한 아니마가 그러하듯 이 선과 악의 양면성을 동시에 지닌다. 아니무스는 부친의 양향을 받아 형성된다. 무의식의 형태에 있어 아니무스는 자연 발생적이며 우연한 의견의 합성물이며 여성의 정서적인 생활에 영향을 주는 잠재된 남성의 이미지이다.

부정적으로 형성된 아니무스는 잔인성, 무모성, 침묵, 완고성, 사악한 사념 등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긍정적으로 형성된 것은 편견 없는 판단, 이성, 논리, 용기, 진실성 등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사람들이 아니마/아니무스에 너무 깊숙이 사로잡히게 되면 그 전까지의 외부 환경에 잘 적응하던 페르소나를 잃게 되고, 삶의 위기에 빠지게 된다.

   아니마/아니무스는 진정한 관심과 이해를 가지고 대했을 때 자기를 위해 유익한 봉사를 하게 된다. 만일 남성이 그의 아니마를 분화하여 여성적 이미지의 부드러움과 순함, 더불어 감성적인 면을 회복하고, 여성이 아니무스를 분화하여 그의 이성적이고 추상적이며 분석적인 면을 증진한다면 그들의 인격성숙에 큰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1. <융의 생애와 사상>   C.G. Jung,   Aniella Jaffe   이기춘, 김성민 (역)   : 현대사상사

2. <융의 심리학과 종교 >  김성민 : 동명사 p.116

3. <융의 심리학>  Jolande Jacobi 이태동(역)  : 성문각 p.50

4. <존재와 상징>   C.G Jung : 동천사 p. 179-181

출처: http://blog.naver.com/erun_sky/5004562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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