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빅 라이프
*구글차세대로봇아틀라스
등장인물
클림트 (로봇)
제프리 (슈퍼컴퓨터)
플뢰게 (인간)
잔나비 (유인원)
스마트 (도롱뇽)
윈스턴 (벌새)
버로스 (넓적다리불가사리)
고르곤 (야광충)
포커틀 (문어)
벌새들 (박각시나방)
무대
잠수함에서나 볼 법한 철제 벽과 해치 모양의 문이 설치 된 여덟 개의 방. 방문에는 왼쪽 긴 것, 오른 쪽 짧은 것 두 개로 구분 되어 있는 바코드가 찍혀있다. 첫 행은 독자대상기호이며 두 번째 행은 발행형태기호이며 세 번째 행에서 다섯 번째 행까지는 내용분류기호이다. 종마다 다른 특색의 분장을 했으나 기본 골격은 모두 인간이다.
*클림트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아 정면을 바라본다. 옆에는 영사기가 놓여있고 불빛이 들어오면 배경음악(Ennio Morricone-Cinema Paradiso)이 깔린다. 클림트 등 뒤에 등장인물들, 시네마천국 영화 속 신부가 삭제한 영화 속 키스 씬, 베드 씬 등을 흉내 낸다. 클림트, 무표정한 얼굴로 일관되게 바라보다 애정행각의 농도가 짙어질 무렵 영사기를 꺼버린다.
*각 장의 무대는 동물들의 특색에 맞게 꾸며진다.
들어가는 말
[클림트] ‘왜’라는 단어는 종잡을 수가 없어. 왜 심장이 뛰는 것을 멈추면 신체의 나머지 부분도 서서히 정지하는가? 왜 사람들은 서로 간에 암살을 모의했을까? 왜 인간은 허파를 가지고 있을까? 왜 인간은 영원히 살고 싶어 했을까? 왜 인간은 나를 만들고 쓸모없어졌을까?
암전, 톱니바퀴들 홈에 맞물려 돌아가다 툭툭 끊어지는 소리. 피스톤이 기울어지면서 실린더 벽을 타격하는 소리, 마치, 뼈를 맞추는 소리 같다.
01 인간
문: 척삭동물
강: 포유류
목: 영장류
과: 사람
속: 사람
보전상태: 관심필요
[플뢰게]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1828년 러시아 남부 툴라 근교의 영지 야스야나 폴랴나에서 태어나 여기에서 죽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1821년 모스크바 빈민병원의 군의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여기에서 죽다. 파트릭 모디아노, 1945년 프랑스 파리 근교의 불로뉴비양쿠르에서 태어나 여기에서 죽다. 사뮈엘베케트, 1906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태어나 여기에서 죽다. 미구엘 세르반테스, 1547년 에스파냐 마드리드 대학가 아르카라데 에나레스에서 태어나 여기에서 죽다. 헨릭 입센, 1828년 노르웨이 남부 항구도시 시엔의 부유한 상인 집안에서 태어나 여기에서 죽다. 빌게이츠, 1955년 미국 시애틀 변호사 아버지와 교사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여기에서 죽다. 1955년 태어나자마자 양부모 폴과 클라라에게 입양된 스티브잡스 여기에서 죽다. (사이) 빈센트 반 고흐, 꼼꼼한 필촉과 타는 듯한 색채로 비참한 주제가 되다. (잠시 침묵) 리하르트 게스르틀이 남긴 의문…내성적인 성격과 세기말적 불안, 절망, 허무…(거울을 들여다보며) 입은 웃고 있지만 눈에는 왜 슬픔이 가득한지…(사이) 나는 의기소침해진 내 모습을 보고 있으면 화가나. 울고 싶은 사람에게 거울은 기피와 터부의 대상…나는 보다 깊이 보다 더 많이 웃어야하지. (사이) 꿈과 도취. (여장을 하고 거울을 보며) 나의 공주 아드리아네…나는 그리스의 디오니소스였소. 이번에 내가 승리하는 디오니소스로 가리다. (사이) 나는 나에게 삶의 의지를 가르칠 수 있는 마지막 바다, 마지막 번개, 마지막 광기, 마지막으로 남겨진 쾌락. (사이) 그러나 그것도 불완전한 얼굴. 그래서 내 몸은……(스타킹을 바짝 올리며) 아니, 내 옷은…… , 내 남성성을 비극적으로 인식하는…달리 말하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모든 의지.
아주 긴 침묵.
[잔나비] (거울 속에서) 백보 밖에서 과녁의 정곡을 바라보는 궁사같이. (짧은, 사이) 캄캄한 동굴에서 램프를 켜고 망간이나 목탄으로 가장 가깝거나 조금 가깝거나 가장 멀거나 조금 멀거나 한 사슴과 돼지, 이리와 곰, 그리고 상상속의 동물들을 그리는 화가와도 같이. (짧은, 사이) 내닫는 말위에서 몸을 돌리는 기마무사와도 같은 모습으로. (긴, 사이) 오랫동안 한 곳을 응시하다가…역동적으로. (숨을 길게 들이마셨다가 내뱉으며) 허리를 꼿꼿하게 세웠다가…그 반대쪽으로. (활시위를 당기는 시늉을 하며) 넝쿨이 타고 올라간 시멘트벽과 완전히 무너져 버린 벽돌집과 회색공단 굴뚝을 세어보다가 그 주변에서 놀고 있는 하나같이 순수하고 밝은 아이들을 향해…혹은 그 반대쪽에서 죽은 아이 부모의 시체를 물어뜯어 먹는 굶주린 들개들을 향해…역동적으로. (긴, 사이) 혹은, 그 반대쪽으로.
플뢰게와 잔나비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펼친다. 장난치는 것 같기도 하고 싸우는 것 같기도 하다. 쫓고 쫓기고 찾고 숨고를 한 동안 반복한다.
[플뢰게] 어미돼지가 새끼 돼지 열세 마리를 낳았는데 젖꼭지 하나가 모자란 거야. 젖꼭지를 차지한 열두 마리 돼지는 살아남고 젖꼭지를 물지 못한 막내 돼지는 작고 연약하다는 이유만으로, 어미돼지 젖꼭지가 열 두 개 밖에 없다는 이유만으로……, 꿀꿀꿀, 춥고, 배고프고, 외롭고, 무섭고.
[잔나비] 꿀꿀꿀, 춥게, 배고프게, 외롭게, 무섭게, 죽어갔다.
[플뢰게] 젖꼭지가 열두 개나 있는 돼지도 그러한데……, 젖꼭지가 두 개 밖에 없는 사람은 얼마나 춥고 배고프고 외롭고 무섭게 할까.
[잔나비] (후배 위를 하듯 엉덩이를 쭉 내밀고 엎드리면서) 아! 너무나도 아름다운 수소의 뿔. 수소의 발굽.
[플뢰게] (치마를 내리고) 아! 너무나도 정교했던 라비린토스.
[잔나비] 아! 수소에게는 너무나도 모자랐던 왕의 여자, 파시파이.
[플뢰게] 아! 불쌍한 미노타우로스.
[잔나비] 아! 불쌍한 미노타우로스의 아들, 딸들.
[플뢰게] ……
[잔나비] (거울 속으로 걸어 들어가며) 아무도 들어갈 수도 나올 수도 없는 복잡한 성.
[플뢰게] (거울을 들여다보며) 청년 7명, 처녀 7명.
[잔나비] (거울 속에서) 미궁 속에 갇혀있는 다이달로스들.
[플뢰게] (거울을 매만지며) 떠난 자들은 높고 높은 하늘에서 별이 되고, 남은 자들은 아주 깊고 어두운 곳에서 완전히 뜯겨져 나간 날개를 붙였다, 떼었다.
[잔나비] (거울 속에서 천장을 올려다보며) 어깨에 밀랍으로 붙인 날개를 활짝 펴고 날개 짓 없이 비상하고 싶어라.
[플뢰게] (천장을 올려다보며) 다음으로 옮겨 갈 수 없는 막다른 길.
[잔나비] (거울 속에 사다리를 놓는다, 한 발 올라선다) 저 위에는 뭐가 있을까?
[플뢰게] (방에 사다리를 놓는다, 사다리 끝까지 올라가 매달리듯 쇠바퀴를 움켜잡는다) 하늘은 정말 파란 색일까?
[잔나비] 구름 낀 하늘에는 천둥번개도 치고 소나기도 내렸다던데 정말일까?
[플뢰게] 비가 오면 사람들은 우산을 쓰고 바닥만 보고 걸었데.
[잔나비] 우산이 없는 사람들은 총총 걸음으로 비에 젖고.
[플뢰게] 비에 흠뻑 젖은 신발에서는 천둥번개 소리가 났다는데.
[잔나비] 비에 흠뻑 젖은 머리카락에서는 후두둑후두둑 소리가 났다는데.
[플뢰게] (짧은 침묵) 부뚜막에 올려놓은 신발을 신고 사뿐사뿐 걷고 싶어라.
[잔나비] 볕 아래 바삭하게 말라가는 하얀 이불 홑청들을 보는 기분은 어떠할까?
[플뢰게] 비갠 날 무지개는 어떤 모습 일까?
[잔나비] (눈을 감으며) 홀린 듯 정신을 놓고 싶어라.
[플뢰게] (눈을 감으며) 장대로 별을 따는 사람처럼 살고 싶어라.
[잔나비] 여인의 손등 위에 자기 손을 포개 얹는 남자처럼.
[플뢰게] 비오는 골목길 가로등 아래……(무대 조명 두 사람만 비춘다) 헤어지기가 아쉬워 두 손을 마주잡고 있는 연인처럼.
[잔나비] 눈길 한 번 발길 한 번 닿았으면.
[플뢰게] 닿아볼 길이나 있었으면.
[잔나비]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데.
[플뢰게] (주변을 둘러보며) 이곳에는 하늘이 없어서 솟아날 구멍도 없네.
[잔나비] (주변을 둘러보다, 천장을 올려다보며)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 건지.
긴, 침묵
[플뢰게] (천장을 올려다보며) 나는 왜 살고 있을까?
[잔나비] (관객석을 보며) 나는 왜 죽지 못해 살고 있을까?
[플뢰게] (사다리에서 내려와 관객석을 보며) 죽고 싶은 데 용기가 없는 걸까?
[잔나비] 용기가 없어서 죽지 못하는 걸까?
[플뢰게] 우리 안에 갇힌 돼지가 땅을 밟는 하루.
[잔나비] 멱을 떼이는 마지막 날 땅바닥에 뿌려질 볶은 콩은 어떤 맛일까?
[플뢰게] 입을 오물조물 곱씹어보자.
[잔나비] 침은 꿀꺽 배는 꼬르륵.
[플뢰게] 입안에 하얀 구멍이 났다 안 났다.
[잔나비] 혓바늘이 돋았다 터졌다 돋았다 터졌다.
[플뢰게] (긴 침묵, 사다리에서 내려와 거울을 보면서) 내 몸에 참 많은 구멍들.
[잔나비] 내 몸을 가득 채운 모든 것들.
[플뢰게] 횅한 마음이 밀려들어온다.
[잔나비] 횅한 마음이 밀려들어와 나가지를 않네.
[플뢰게] 체한 것 마냥……가슴이 답답하고 숨을 쉬어도 쉬는 것 같지가 않아.
[잔나비] 창문이라도 있었으면.
[플뢰게] 생각이라도 밖에 둘 텐데.
[잔나비] 잘 보이다 잘 보이지 않는 풍경.
[플뢰게]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빌딩 숲 너머 수평선.
[잔나비] 달은 뜨고 해는 지고.
[플뢰게] (방안을 빙 둘러보며) 그러나 나는 여기서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
[잔나비] (거울 속을 빙 둘러보며) 그러나 나는 여기서도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
[플뢰게] 나는 어디서 왔는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로 갈 것인가?
[잔나비]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플뢰게] 가고 싶다.
[잔나비] 놀러 가고 싶다.
[플뢰게] 골목마다 칠이 벗겨진 파란 대문 집 초인종을 누르고 도망가고 싶어라. 그 집에서는 누가 살고 누가 문을 열고 나올까. 여자일까, 남자일까. 젊은 사람일까, 늙은 사람일까.
[잔나비] 띵동띵동 문을 열어다오.
[플뢰게] 띵동띵동 얼굴 좀 보자.
[잔나비] 그러나 문을 열면 아무도 없고.
[플뢰게] 그러나 문이 열리면 도망가고.
[잔나비] 골목에 골목.
[플뢰게] 대문에 대문.
[잔나비] 아무도 나오지 않는다.
[플뢰게] 누구도 살지 않아.
[잔나비] 다들 어디로 갔을까.
[플뢰게] 모두 어디로 놀러가서 돌아오지 않나.
[잔나비] (천장을 올려다보며) 어디로 가세요?
[플뢰게] (넥타이를 목에 묶고 꽉 조이며) 어디로 가볼까.
[잔나비] (숨을 몰아서 쉬었다가 가끔씩 쉬고를 반복하다가)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다면 그냥 있는 것도…….
[플뢰게] (숨을 몰아서 쉬었다가 가끔씩 쉬고를 반복하다가)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막막하다. (사이) 누군가를 만나면 어떤 표정을 지어야할지. 어떤 말로 인사를 건네야할까. 어떤 말로 나를 설명해야하나.
[잔나비] 안녕하세요. 헬로우, 곤니찌와, 닌하오, 봉주흐, 올라, 구-텐-탁-, 씬 짜오, 즈드랏스부이쪠, 부온 죠르노, 싸왔디-크랍, 아빠 까바르? 마르하반, 새-응 배-노…….
[플뢰게] (손을 내밀며) 만나서 반갑습니다. 손이 참 예쁘시네요.
[잔나비] (손을 내밀며) 만나서 반갑습니다. 손이 참 차가우시네요. 제가 손잡아 드릴까요?
[플뢰게] (괜히 부끄럽다) 다음에 또 보면…….
[잔나비] 식사는 하셨어요?
[플뢰게] 아직.
[잔나비] 같이 먹을까요?
[플뢰게] (괜히 부끄럽다) 좋아요.
[잔나비] 먹고 싶은 거 있으세요?
[플뢰게] 아무거나 다 좋아요.
[잔나비] 아무거나 다 좋은 사람이 어디 있어요.
[플뢰게] 아무거나 다 좋을 때는 있는 법이죠.
[잔나비] (괜히 부끄럽다) 하긴, 오늘은 날도 선선하고 너무 좋네요.
짧은, 침묵.
[플뢰게] 걸을까요?
[잔나비] 그래요.
[플뢰게] (무대를 빙 돌며) 산책하기 좋은 곳이에요.
[잔나비] (거울 속을 빙빙 돌다 멈춰 서서) 누가 머릿속에서 쇠 종을 울리는 것 마냥 웽웽 윙윙 여기저기 이곳저곳 울렁울렁……
[플뢰게] (꿈을 꾸듯이) 조금만 더 올라가면 뛰뛰빵빵 시계소리, 째깍째깍 전화기소리, 따르릉따르릉 시계소리, 쿵쿵 쾅쾅쾅 우당탕탕 콰당탕! 시냇물소리, 졸졸졸 천둥소리……들리는……그곳에 사람들은……
[잔나비] (말을 자르며) 째깍째깍 시계소리, 따르릉따르릉 전화기소리, 쿵쿵 쾅쾅쾅 우당탕탕 콰당탕! 번개소리. 졸졸졸 시냇물소리겠죠.
[플뢰게] 그러니까, 그곳에 살던 것들은……모두, 어디로 갔을까. 모두, 어디에 숨었나.
[잔나비] 밤이 깊도록 마을 고샅에서 나오지 않는 까까머리들…단발머리들…(긴, 사이) 이곳저곳 둘러봐도 다음 술래가 될 사람은 사라진지 오래. (짧은, 사이) 그러나 이곳에 혼자 남은 사람은 한 번도 듣지 못한 소리를 제 멋대로 상상한다. 바람에 몸을 부대끼는 나뭇잎은 쨍그랑쨍그랑…첨벙첨벙…사각사각…사락사락…깔깔, 껄껄, 킥킥, 키득키득…꿀꺽꿀꺽, 콜록콜록…(발을 구르며) 타박타박 삑삑, 터벅터벅 삑삑, 또각또각 삑삑, 타박타박 삑삑, 터벅터벅 뚜벅뚜벅 또각또각 철퍽철퍽……(무대 뒤로 걸어 나간다)
삑삑, 삑삑, 삑삑, 삑삑, 운동화 소리 들리다 만다. 조명, 나뭇잎이 물결에 비쳐 일렁이는 모양새로 플뢰게를 비추다 옅어진다.
프로젝트빅라이프(3화)-넓적다리불가사리, 문어 (0) | 2018.10.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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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빅라이프(2화)-유인원- (0) | 2018.10.24 |
프로젝트빅라이프 -해설- (1) | 2018.10.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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