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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빅라이프(2화)-유인원-

프로젝트빅라이프

by 프로젝트빅라이프 2018. 10. 24. 0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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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유인원

: 척삭동물

: 포유류

: 영장류

: 사람

: 침팬지

보전상태: 양호

 

 

[잔나비] (거울 앞에 서서) 거울 속에 들어간 너는 누구? 거울 앞에 서있는 나는 누구? (사이) 거울 속에 네가 나고 거울 밖에 내가 너고 우리는 거울과 뗄 레야 뗄 수 없는 관계. 그러나 너는 왼손잡이, 나는 오른손잡이. 그래서 우리는 각자의 손으로 쓰는 연습을 한다. 나는 왼손 너는 오른손……. (사이) 숲속에 침팬지들이 서로 먼저 거울을 보겠다고 싸우다가, 거울 속에 침팬지들이 서로 먼저 숲을 보겠다고 싸우다가, 거울 속을거울 밖을마주보는 평화로운 장면. (사이) 새끼 침팬지가 거울을 탕탕 두드려도 고개를 숙인 채 꼼짝도 하지 않는 침팬지들, 우끼 우끼끼기 우끼우끼 우끼끼. 죽은 엄마 배위에서 잠드는 새끼는 매일매일 거울 속에서 윙윙 우끼끼기 윙윙 우끼끼기 파리를 쫒는다. (거울 뒷면을 슬쩍 보며) 어디서 파리가 날아왔을까. 어디에서 꺼멓게 썩은 피가 흘러들어왔을까. 우끼 우끼끼기 우끼우끼 우끼끼. 죽은 엄마 젖꼭지 꼭 깨물고 어디로 가볼까. 하늘은 파랗다가 까매지고 구름은 조용하다가 시끄럽다. 우끼 우끼끼기 우끼우끼 우끼끼 천둥번개가 친다. 우끼 우끼끼기 우끼우끼 우끼끼 비가 내린다. 우끼 우끼끼기 우끼우끼 우끼끼 숲에 나뭇가지가 바람에 흔들린다, 숲에 강이 불어난다. 숲에 나뭇가지를 모으던 새들이 물에 잠긴다. 거울 속에 물고기가 가득찬 시기에 새끼 침팬지는 어미 침팬지 몸을 붙들고 어디론가 떠내려가면서……(아주 긴 침묵 뒤, 털 고르기를 하듯 제 몸을 만지며) 우끼 우끼끼기 우끼우끼 우끼끼.

 

무대 고요하다. 잔나비, 나무줄기 속에 흰개미를 잡아먹듯 거울 속에 기다란 손가락을 들이밀었다가 뺀다. 손가락을 쪽쪽 빨다가 돌을 던지고 나뭇가지를 휘두르는 시늉을 한다. 그렇게 무대를 정신없이 뛰어다니다 거울 앞에 멈춰 선다. 그리고 뒤돌아서서 암놈이 수놈을 유혹하듯……고혹적인 표정으로 객석을 바라본다.

 

 

[잔나비] 까만 얼굴에 붉은 혀를 가진 사람들아. 한 손에는 칼 다른 한 손에는 창을 쥔 사람들아. 어제와 내일. 공적인 시간 사적인 시간. 신앙을 위한 시간 월급을 위한 시간. (사이) 사리불아, 관자재보살이 심오한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 존재의 다섯 가지 무더기가 모두 실체 없음을 꿰뚫어 분석하여 보고 모든 괴로움을 견뎠다, 가는 이여 가는 이여 열반으로 가는 이여 열반으로 잘 가는 이여……(사이) 침팬지는 고기를 좋아해. 전쟁도 한다. 침팬지는 고기를 좋아해. 적의 시체를 먹는다. 침팬지는 고기를 좋아해. 마을의 아기를 납치해 잡아먹는다. 침팬지는 고기를 좋아해. 죽은 엄마를 잊지 못한 새끼 침팬지도, 콧물을 흘리는 동생 침팬지를 나뭇잎으로 닦아주는 형님 침팬지도, 버려진 고아를 데려다 키우는 부부침팬지도……고기가 없으면 소리를 지르고 나무를 흔들어. (사이) 고기를 주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숲속은 시끄럽다. 숲속은 여름에도 가을마냥 빨갛게 물들어. 여기저기 약한 것들은 산채로 죽는다. (, 사이) 침팬지는 고기를 먹어야 사랑하며 살 수 있다.

 

무대 시끄럽다. 등장인물들 모두 나와 등을 보이고 엉덩이를 내민다. 서로 상대방의 엉덩이를 가볍게 두들기거나 쓰다듬거나 밀어낸다. 짝짓기를 하는 시늉을 내다 서로 한데 어울려 털 고르기를 하다 퇴장한다. 윈스턴 혼자 바닥에 쓰러져있다.

 

[잔나비] 일생일대의 축복이요, 기적이요, 은혜입니다. 이보다 더 큰 은혜가 없습니다. 이보다 더 큰 기적이 없습니다. (포크는 머리 부분이 볼록하게 왼손, 나이프는 날카로운 면이 아래를 향하도록 오른 손으로 쥔 채)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그때, 윈스턴 정신을 차린다.

 

[잔나비] 우리는 절망이 깊으면 깊을수록 부르짖고 또 부르짖습니다.

[윈스턴] (악몽에서 깬 표정으로, 반대쪽으로 도망친다)

[잔나비] (뒤 따라가다가 멈춰 서서, 나이프를 치켜들며) 산채로 먹어라. 너의 힘이요. 너의 노래시며 너의 구원이시로다. (나이프를 내리고 포크를 치켜들며) 그녀는 너무 어려요. (포크를 내리고 나이프를 치켜들며) 내가 그녀를 높이리로다. (나이프를 내리고 포크를 치켜들며) 그녀는 너무 말랐어요. (포크를 내리고 나이프를 치켜들며) 내가 그녀를 살찌우리다. (나이프를 내리려다 말고 포크를 치켜든다) 그녀는 너무 사랑스러워요. 그러니 감사하고 찬양드림이 합당하지 않는가! 그래서 너무나 감사하고 감격하고 눈물이 납니다. (포크는 바닥에 내팽개치고 나이프만 손에 쥔 채) 거룩, 거룩, 거룩해요.

[윈스턴] (몸을 부들부들 떨며) 거룩, 거룩, 거룩하다.

[잔나비] (윽박지르며) 그곳에 사는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다.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시니 너도 그를 높이리로다. 아멘.

[윈스턴] (반대쪽으로 도망치며) 거룩, 거룩, 거룩하다.

[잔나비] ……

[윈스턴] 저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소녀에요.

[잔나비] ……

[윈스턴] 저는 세상에서 가장 작고 가벼운 소녀에요.

[잔나비] ……

[윈스턴] 저는 세상에서 가장 작고 가볍고 맛이 없는 소녀에요.

[잔나비] ……

[윈스턴] 저는 세상에서 가장 작고 가볍고 맛이 없고……재수 없는 소녀에요.

[잔나비] 우끼 우끼끼기 우끼우끼 우끼끼?

[윈스턴] 재수 옴 붙었죠.

[잔나비] 우끼 우끼끼기 우끼우끼 우끼끼?

[윈스턴] 좁쌀보다도 작은 이놈들은 살이 연한 사타구니나 손가락 사이에 숨어 살아요. 비눗물로 깨끗이 씻어도 뜨거운 햇볕에 말려도 소용없죠. 게다가 그것들은 너무 가려워서 손가락으로 박박 긁지 않고는 못 배겨요. 가렵고 시원하고 가렵고 뜨끔하고 가렵고 불편하고 아픈 것이……양계장에 병든 암탉들이 꼬꼬댁 꼬꼬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알을 낳는 것 마냥 자고 일어나면 온몸에 동그란 물집이 잡히게 한다니까요.

[잔나비] 우끼 우끼끼기 우끼우끼 우끼끼?

[윈스턴] 저를 잡아먹으면 삼년간 재수가 없어요.

[잔나비] 우끼 우끼끼기 우끼우끼 우끼끼?

[윈스턴] 저를 잡아먹으면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져요.

[잔나비] 우끼 우끼끼기 우끼우끼 우끼끼?

[윈스턴] 호박잎에 괸 물에 빠져 죽을 팔자라더니……(아주 긴 침묵 뒤) 죽기 전에 나뭇잎이 무성한 나뭇가지에 꽃처럼 앉아 온종일 햇볕을 쐬고 싶어라. 죽기 전에 바람에 살포시 올라오는 꽃향기도 맡고 싶어라. 죽기 전에 꽃술방울에 부리를 꽂고 온몸을 뒤흔들고 싶어라. 죽기 전에 한 가지라도 해봤으면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을 텐데. ! 죽어서도 못 잊을 꽃밭에서 가족들 친구들과 함께 지저귀고 싶어라. (사이, 목청을 가다듬다가) 우끼 우끼끼기 우끼우끼 우끼끼.

[잔나비] ?

 

무대 어둡다. 잔나비는 달아나고 없다. 조명 벽 뒤를 비춘다. 불빛 가까이에서 한 손 또는 두 손을 움직인다. 손으로 만든 갖가지 모양의 동물그림자 하나, 하나 지나간다. 새만 오래 남아 무대를 돌다 멈춘다. 무대 전체 밝아진다. 잔나비 책상위에 왼 팔을 올리고 칼을 쥔 오른 손을 번쩍 치켜 올렸다가 내려친다. 칼은 번번이 비껴간다.

 

[잔나비] (아이를 어르고 달래듯이) 금방 끝나. 잠깐만 참아. 움직이면 다쳐. 눈을 감고 열을 세 봐. 그러면 다 괜찮아져 있을 거야. 하나, , , , 다섯, 여섯! (칼을 내려친다, 왼팔을 뺀다) 에고, 화났어? 내가 나도 모르게 긴장을 한 모양이야. 정말이야, 거짓말 아니라니까. 약속 도장 싸인 복사 코팅. (짧은, 사이) 하나, , , ,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아홉 반, 아홉 반에 반, 아홉 반에 반의 반……(짜증을 내며) 내가 너 때문에 화딱지가 나서 돌아가시겠다. (길게 한 숨을 내뱉는다) 무서웠어? 그렇다고 그렇게 울 것까지야……. 죽기 전에 먹을 테니까 그렇게 서럽게 울 필요 없어. (짧은, 사이)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게 있다고? 그게 뭔지 모르겠지만 절대 안 돼. (칼로 내려치려다 말고) ? ? 내가 좋아할 거라고? 말도 안 돼. 네가 좋아하는 걸 내가 좋아할 리가 없잖아. 그래? 안 그래? ? ?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네가 하고 싶은 것과 같다고? (짧은 침묵 뒤 밧줄을 가지고 와 왼팔을 책상에 묶는 다) 열을 세고 내려 칠 테니까, 실눈 뜨지 말고 얌전히 있어. (아주 짧은, 사이) ? ? 하나도 안 들려. 목소리 좀 크게 해봐. (아주 짧은, 사이) 에고 놀라라, 그렇다고 그렇게 버럭 소리를 내지를 건 또 뭐래. (아주 긴 침묵, 잔나비 무대를 둘러본다, 조용하다) 그래, 알았어. 알았으니까, 뭐라고 말 좀 해봐. (아주 긴 침묵, 잔나비 책상에 묶인 팔을 푼다, 장난감을 사달라고 떼쓰는 아이처럼 말한다) 내가 좋아할 거라며, 말 좀 해라. 너 진짜 그러기야?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소원이 뭔지 말해달라니까. ? ? 나도 좋아할 거라며, ? ? 말 좀 해달라고, ? (소리를 지르고 바닥에 드러누워 발버둥을 치다, 순간, 표정이 밝아진다)

 

왼손으로 겨드랑이를 긁는다. 하나도 가렵지 않다. 왼손으로 발바닥을 긁는다. 하나도 가렵지 않다. 왼손으로 사타구니를 긁는다. 표정 오묘하다. 하나도 가렵지 않다. 왼손으로 오른손을 긁는다. 표정 미묘하다. 하나도 가렵지 않다. 왼손을 등 뒤로 돌려서 등 위쪽을 만진다. 뒷목과 등 위쪽 사이에 닿으려 애쓴다. 미소를 짓다, 슬픈 표정을 짓다, 불쾌하다, 말다 한다.

 

사이

 

무대 순간 어두워진다. 조명 벽 아래를 긴 시간 동안 비춘다. 각각의 손 그림자, 바람에 쓸려가는 낙엽처럼 바닥을 구르다, 바닥위로 살짝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오기를 반복하다, 만난다. 나비처럼 살랑살랑 주변을 돌다 훨훨 날아간다. 무대 조명 모두 꺼진다. 아주 길고 지루한 어둠 계속 된다.

 

사이

 

무대 순간 눈부시게 밝아진다. 잔나비, 아주 긴 시간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있다. 고개를 슬며시 쳐든다. 구름다리 변형자세, 토끼자세, 소 얼굴 자세 빠르게 이어지다 벽을 마주본다. 물구나무를 서려고 애쓰지만 잘 되지 않는다.

 

사이

 

무대 순간 어둡다가 순간 밝아지기를 반복하다 모두 꺼진다. 아주 느리게 야광 장갑을 낀 두 손 무대 안으로 날아들어 온다. 두 손, 잔나비의 두 발목을 잡는다. 잔나비, 물구나무를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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