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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끗, 도 못 만드는 페미니즘

사건사고

by 프로젝트빅라이프 2018. 12. 4. 0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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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에서 한 끗의 차이는 ‘유행’이 아니다. 드라마 라이프 온 마스는 ‘한 끗’의 창작이 아니라 동일한 소재로 쓰는 “한 결”로 봐야 함이 마땅하다.




돌고 도는 유행 그 이상도 아닌 이 드라마를 ‘한국 페미니즘’의 한 끗, 이라고 말하고 있다면 낯간지럽지 않나. 제인에어를 쓴 샬럿 브론테나 델마와 루이스의 리들리 스콧 감독 조차 자신들의 작품이 ‘한 끗’의 차이를 만들어 냈다고 확신하지 못했다.




도대체 왜 한국에서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시류를 따라가면서 진전을 이야기 할까? 여성감독, 여성배우, 여성작가가 중요한 영화라면 그건 영화가 아니라 정치를 하고 있다는 소리다. 영화를 성별로 나눠 놓고 보다 보니 관습적인 이야기에 불과한 드라마 <라온마>를 바라보는 시선에 객관성이 결여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여성 주인공을 사회의 피해자로 그리고 피해자로 그려진 여성이 자신을 무시하는 사회와 부딪히거니 극복하는 방법은 지극히 전형적이다. 게다가 드라마 <라온마>는 고군분투하는 여성경찰이라는 한국적 인물군상을 더 하고 있을 뿐이다. 한 끗 차이는 성별 역할의 비중이 아니다.



누가 소외되고 있느냐, 가 창작의 근본적인 질문이 아니다. ‘성’을 기준으로 두고 평등을 이야기하는 일은 인종주의자의 피부색 구분과 크게 다르지 않다.




페미니즘에 반대하거나 혹은 동조하지 않거나 비협조적이다고 하여 여성을 명예남성이라고 하거나, 누가 말하느냐? 말하는 자의 성별은 어떻게 되나? 묻는 건 새로운 세상의 것이 아닌 구시대에 폐기된 유물이며 더욱이 이 시대에는 필요치 않다. 영화, 공연, 문학 등에서 페미니즘 비평이 구체적이지 못한 이유는 공존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없는 사상은 사건을 구체화 할 현실이 존재하지 않기에 ‘차이’가 아닌 ‘차별’만을 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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