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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본명:오드리 캐슬린 러스턴(Audrey Kathleen Ruston), 로마의 휴일

시네마천국

by 프로젝트빅라이프 2019. 1. 6. 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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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본명:오드리 캐슬린 러스턴(Audrey Kathleen Ruston), 1929년 5월 4일 ~ 1993년 1월 20일)은 벨기에 출신 영국의 배우이자 자선가이다. 할리우드의 황금시대에서 영화와 패션의 아이콘으로 활동했다. 미국 영화 연구소로부터 여배우 중 스크린 전설 3위로 선정되었고, 베스트 드레서 부문 명예의 전당 여배우로 선정되었다.






[로마의 휴일]은 오드리 헵번의 할리우드 데뷔작이자 출세작이다. 특히 숏커트 헤어스타일로 당시 엄청난 유행을 만들기도 했다. 이 영화는 개봉될 당시 영국 왕실의 마거릿 공주와 타운젠드 대령의 비련이 화제가 되어 상승작용을 했다. 오드리 헵번은 [로마의 휴일]로 오스카상을 받았다. 유럽의 한 왕국의 앤 공주(오드리 헵번)가 답답한 왕실을 벗어나 로마에 서 천금 같은 휴일을 보낸다. 그 와중에 만난 신문기자 조와의 애틋한 사랑이 주된 줄거리이다.
개봉일: 1953년 8월 20일 (이탈리아)
감독: 윌리엄 와일러
수상: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아카데미 원작상, 더보기
각본: 돌턴 트럼보, 이안 맥클린 헌터, John Dighton
원작자: 돌턴 트럼보, 이안 맥클린 헌터




오드리 헵번에 관한 10가지 진실

1. '20세기 최고의 미녀'라는 찬사와 달리 그녀 자신은 외모에 불만이 많았다고 전한다. "나는 피부도 좋지 않아 화장을 하지 않으면 볼품이 없고, 얼굴이 각졌고 콧등도 매끄럽지 않고…"라고 했다고. 이 같은 사실은 EBS에서 방송된 다큐멘터리 '세기의 여성들 오드리 햅번 편'에서 그녀의 절친이 밝힌 것이다.




2. 10대 시절 대부분을 네덜란드에서 보낸 오드리 헵번은 2찬 세계대전 당시 아른헴이란 곳에 실제 자원하여 부상병 치료에 나선 경험으로 평생 전쟁 영화 만큼은 출연을 사양했다고 한다. 다만, 영화 '전쟁과 평화'에 출연하긴 하지만 전투 장면에서는 출연하지 않았다고 한다.



3. 1953년에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영화 '로마의 휴일'(Roman Holiday)의 여주인공인 앤 공주 역에 아카데미 여우주연상까지 받을 정도로 연기력에서도 인정을 받았다. 하지만 그녀의 활동욕은 브로드웨이까지 진출해 연극 <운디네>에 출연, 연극의 아카데미상이라 할 수 있는 토니상의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4. 영화 '로마의 휴일'에는 캐스팅에 비화가 있다. 프랑크 카프라 감독이 캐리 그랜트와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캐스팅 할 예정이였으나, 조지 스티븐슨에게 프로젝트가 넘어갔고, 스티븐스도 거절해 윌리엄 와일러가 맡게 됐으며, 그는 진 시몬즈에게 앤 공주 역을 맡기고 싶었지만 캐스팅이 불발되고 예산을 축소해 당시 신인 여배우인 오드리 헵번을 캐스팅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5. 1961년, 블레이크 에드워즈 감독의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Breakfast at Tiffany's)에서 주인공을 맡으며 시대의 아이콘으로 다시 한번 자리매김한다. 특히 이른 아침에 까만 선글라스와 블랙 드레스 차림의 여주인공 홀리 콜라이틀리(Holly Golightly)가 상류층의 남자들을 만나며 신분상승을 꿈꾸며 택시에서 내려 뉴욕 5번가에 위치한 티파니 보석상 쇼윈도우 앞에서 커피를 들고 도넛을 먹는 모습은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으로 기억된다.



6.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는 훗날 명곡의 반열에 오른 주제곡 '문 리버'를 직접 어쿠스틱 기타를 튕기면서 부르기도 했지만 뮤지컬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에서는 크랭크 인이 될때까지 뮤지컬 넘버들을 익힐만한 충분한 시간을 얻지 못했고 감독 또한 오드리 헵번의 노래실력을 신뢰하지 못했기 때문에 '왕과 나','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서 더빙을 한 마니 닉슨이 대신 불렀다고 한다.



7. 영화 '아멜리에'로 유명한 프랑스 배우 오드리 토투도 부모님이 오드리 헵번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라고 한다. 오드리 헵번은 에미(Emmy Awards), 그래미(Grammy Awards), 오스카(Oscar), 토니(Tony)상 등 미국 연예계의 그랜드슬램(EGOT)을 달성한 12명의 배우 가운데 한 명이다. 다만, 오드리 헵번의 경우 음악적인 예술성으로 그래미를 수상한 것이 아니고 '오드리 헵번의 동화'와 같은 오디오북으로 수상했다.




8. 그녀는 골초로 유명한데, 흡연으로 인한 결장암으로 1993년에 세상을 달리했다.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보여 준 긴 담배 파이프는 '헵번 파이프'라고 불리면서 유명해졌다.



9. 1954년작 '사브리나'에서 오드리 헵번이 입었던 옷과 스타일은 사브리나 팬츠, 사브리나 플랫이라고 불리며 유명해졌다. 이 영화는 특정 브랜드가 스타에게 최초로 의상 협찬을 시작한 영화가 됐다고 한다. 이때 협찬한 브랜드는 지방시(Givenchy)로, 지방시는 광고 효과로 인해 매출이 크게 늘었고 이후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블랙 드레스 등 협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10. 18. 영화 '티파니의 아침을'은 오드리 햅번의 대표작으로 '로마의 휴일'과 함께 손꼽히는 영화이다. 영화 '로마의 휴일'이 로맨틱 코미디에 가까운 반면에 이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은 정통 로맨스물로 그녀 특유의 세련된 패션 감각과 청순하면서도 귀여운 매력이 살아났는데, 영화 속 사운드트랙은 1962년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작곡상·편곡상·주제가상 등 음악부문 3관왕을 차지했다. 이 영화의 원작자인 커포티는 오드리 헵번이 아니라 마릴린 먼로의 캐스팅을 원한 나머지 오드리 헵번의 캐스팅 소식에 분노하기도 했다고 한다. 영화 속의 홀리는 직업적인 콜걸임이 분명함에도 노골적이고 직설적인 성적 묘사가 생략되어 청순한 매력이 돋보이는 오드리 헵번 스타일 캐릭터로 재탄생했다.

출처: 위키트리









“나이가 들면 손이 두 개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한 손은 자신을 돕는 손이고 다른 한 손은 다른 사람을 돕는 손입니다.” (고 오드리 헵번 유니세프 친선대사)

오드리 헵번이 전세계인에게 추앙받는 이유는 배우로서의 성공만이 아니라 평화를 사랑하는 인도주의자로의 모습 때문이다. 1954년부터 유니세프를 통해 기부에 참여해왔고 1981년부터는 홍보대사를 맡아 아프리카, 남미, 아시아 등 도움이 필요한 지역을 직접 찾아 봉사에 참여했다. 말년까지 유니세프의 홍보대사로 봉사활동을 지속해오다 1992년 소말리아에서 대장암을 발견해 귀국한 뒤 1993년 1월 20일 사망했다. 향년 6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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