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마르세유판타로의죽음 29장, 30장, 31장, 32장 -침대, 거실, 부엌, 빵가게-

프로젝트빅라이프/마르세유판타로의죽음

by 프로젝트빅라이프 2018. 10. 26. 15:46

본문






 

29. 침대

 

(타로가 땀을 뻘뻘 흘리며 침대에 누워있다. 검은 연기가 침대 밑에서 스멀스멀 올라온다. 검은 연기가 방안에 가득차면 침대가 덜컹거리고 비명 소리가 들린다. 여자교황은 아무 소리도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곤히 누워 자고 있고, 타로 혼자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주변을 둘러본다. 검은 연기가 자욱하다. 창문을 연다. 그러나 연기는 여전히 자욱하다. 사이렌 공습소리, 건물이 부서지는 소리, 탱크 엔진 소리, 폭발 소리 등등이 계속 들리다가 만다. 타로는 앓는 소리를 내다가 꿈에서 깨지만 귀가 멍하게 아프다.)

 

 

30. 거실 (새벽)

 

(타로가 물을 벌컥벌컥 마신다.)

 

여자교황: 또 그 꿈을 꾼 거야?

타로: 매일 똑같은 악몽을 꾸는 이유는 뭘까?

여자교황: 아마도 당신에게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라서 그런 거겠지. 그럴 때는 긍정적인 결과로 꿈을 마무리 지을 수 있게 노력해봐.

타로: 예를 들면?

여자교황: 로와상, 빵오쇼콜라, 빵오레쟝, 브리오쉬, 퐁당 오쇼콜라, 무스 오 쇼콜라, 타르트, 크렘 부룰레, 에클레어 등을 떠올리려고 애써보는 거지. 아니면 커스터드 크림과 건포도를 떠올려봐. 따뜻한 커피한잔도 곁들여서.

타로: (싱겁게 웃으며) 배고파?

여자교황: (웃으며) 뭐 곧 있으면 아침이니까.

타로: 아침이 되려면 아직 멀었어. 세상이 온통 캄캄해.

여자교황: (장난스럽게) 그래? 그럼, 불을 켜.

타로: ? 무슨 말이야?

여자교황: 아침 해가 뜨고 있다고.

타로: 정말?

여자교황: 당신은 정말 딱한 사람이야.

타로: 당신은 이제 아닌 것처럼 말하네. 그런데 그거 알아? 나는 단 한 번도 오늘이 어제보다 좋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는 거.

 

(두 사람, 서로 얼굴을 본다.)

 

여자교황: 그래? 정말?

타로: 당신도 가끔 악몽을 꾸잖아. 당신은 아닌 것처럼 말하지 좀 마.

여자교황: 살다보면 가끔 불행할 수도 있는 거지.

타로: 가끔?

여자교황: 당신은 내가 매일 불행해 했으면 좋겠어?

타로: 누가 그러래? 하지만 우리 집은 여기가 아니야.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여자교황: 우리는 이제 어른이야.

타로: 무슨 뜻이지?

여자교황: 어릴 때 살던 집에 가보고 싶다고 해서, 어릴 때 없어진 집이 생기는 건 아니야.

타로: 내가 말하는 집은 그런 게 아니야.

여자교황: 그리고. 그리고 말이지. 당신도 알다시피 나는 그곳이 싫어. 내 아이들이 그곳에서 자라길 바라본 적도 없고, 그곳에 평화가 올 거라고 추호도 생각하지 않아. 아니 그곳에 평화가 찾아오더라도 나는 가지 않을 거야. 나는 여기가 좋아. 당신은 이곳에 사는 게 싫어?

타로: 싫지는 않아.

여자교황: 그럼 된 거야.

타로: 그래.

여자교황: 다른 생각하지 말자. 알았지?

타로: 그래.

 

(여자교황, 타로의 이마에 키스를 한다.)

 

여자교황: 얼른 자. 우리 아가. 그래야 일찍 일어나지.

 

(타로, 여자교황을 끌어안는다. 두 사람 키스를 한다.)

 

타로: 그런데 내가 어딜 봐서 아기지?

여자교황: 내가 볼 때 당신은 덜 자랐어.

 

 

31. 부엌(아침)

 

(타로의 가족이 식탁에 앉아있다. 여섯 식구로 식탁이 꽉 찼다. 타로는 콩으로 만든 퓌레에 빵을 찍어 먹는다. 여섯 식구 말없이 식사를 한다. 식사가 끝나자)

 

타로: (신문을 읽다가 넷째를 보며) 왼손잡이구나.

셋째: (넷째를 보며) 자이나는 가마도 반시계 방향이에요.

둘째: (눈치를 살피다가) 자이나는 발처럼 생긴 손을 지니고 있어요.

여자교황: ? 그게 무슨 말이니?

넷째: (금방이라도 울음보를 터뜨릴 것 같은 표정으로 앉아있다.)

셋째: 원숭이.

첫째: 그만들 좀 해. (타로를 보며) 자이나는 아직 많이 어려서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잖아요.

여자교황: (셋째에게) 네 눈에는 나도 원숭이로 보이겠구나.

셋째: 그건 아니에요.

여자교황: (셋째에게) 그게 아니라면 앞으로 동생을 원숭이라고 부르지 마. 알았니? (둘째를 보며) 너도.

둘째, 셋째: . 알겠어요.

타로: (신문을 반으로 접고.) 카르멜, 요새 만나는 사람 있니?

첫째: ?

타로: 우연히 만났는데 저녁식사를 같이 하고 싶어 하더구나. 학교에 가거든 이번 주에 시간 되는지 내 대신 물어 봐 줄래?

첫째: . (머뭇거리다가)

 

 

32. 빵가게(아침)

 

(타로, 팔에 힘을 잔뜩 주고 반죽을 뭉치고 있다. 한 덩이가 된 반죽에 버터를 넣고 손가락으로 누른다. 반죽에 탄력이 생길 때까지 치댄다. 반죽을 반으로 접고 내려친 후 또 접는 과정을 반복한다. 쿠키 팬에 동글게 만든 반죽들을 올린 뒤 비닐을 씌운다. 주변은 좀 시끄럽다. 밖을 몇 번 쳐다보다가 이번에는 밀대로 반죽을 밀고 위, 아랫부분을 중앙으로 오게 해 접는다. 반죽 끝을 터지지 않도록 꼼꼼히 잡은 뒤 오븐에 넣고 굽는다.)

 

뒤마: 설마 어제 일로 이러는 건 아니지?

타로: 뭐가?

뒤마: 소금을 안 넣었잖아.

타로: ?

뒤마: 저기 저 사람 오늘 또 왔군. (오븐에 넣은 반죽을 보는 두 사람) 배고플 거야.

타로: ?

뒤마: 버리기는 좀 아까우니까.

타로: 줄 거면 제대로 만든 걸 줘야지. 그러면 쓰나.

뒤마: 그럼 버려? (다 구워진 빵을 오븐에서 꺼낸다) 좋아 할 거야. 그는 좀 배가 고프거든.

타로: 그에게 물어보기라도 했어?

뒤마: 그런 걸 꼭 물어봐야 아나? 너도 그가 음식물쓰레기통을 뒤적이는 걸 봤잖아.

타로: 그렇지만, 그건-

뒤마: 소금을 넣지 않은 걸 손님들에게 줄 수는 없어. 그렇다고 버리기도 아깝고. (오븐에서 꺼낸 빵을 종이봉투에 담아 남자에게 건넨 뒤 가게로 돌아온다) 그는 손님이 아니잖아?

타로: (벤치에 앉아 허겁지겁 빵을 먹는 남자를 본다)

뒤마: 내 말이 맞지? 좋아할 거라고 했잖아.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