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루브르박물관(낮)
(루브르 박물관 계단 정중앙 ‘사모트라케의 승리의 여신’을 보고 있는 남자1과 카르멜. 카르멜. “기체 상태의 예술미학의 승리에 관한 에세이”를 펼쳐보고 있다.)
남자1: 카르멜.
카르멜: 응? 왜?
남자1: 지, 지금 읽는 책 말이야. 재밌어? 음, 나하고 있는 게 재미없다던가, 그런 건.
카르멜: (책을 덮으며) 이건 그냥.. (웃으며) 숙제야.
남자1: 난 말이야. 카르멜 너도 알다시피, 정말, 진지해. 진심으로 아주-.
카르멜: 누가 뭐래? (웃으며) 우리는 아직 어려.
남자1: 얼마 남지 않았어.
카르멜: (걸어가며) 그러세요?
남자1: (걸어가며) 어렸을 때 나는 이곳에서 길을 많이 잃어버렸어. 어디로 가면 모나리자를 찾을 수 있을지 몰랐거든. 그런데 이제는 그러지 않아. 내, 내, 내 생각에 사랑이란 길을 잃고 헤매다 다시 제자리로.
카르멜: (걸어가며) 으흠.
남자1: (걸어가며) 내가 말하는 제자리라는 건...
카르멜: (걸어가며) 으흠.
남자1: (걸어가며) ...결국에는 모든 길이 제자리로 돌아가기 위해서 존재 한다고 할 수 있는데...
카르멜: (걸어가며) 으흠.
남자1: (걸어가며) 그런데 사랑이 없는 사람들, 성불구자들은-.
카르멜: (걸음을 멈추며) 응?
남자1: 난 그런 사람들이 무슨 재미로 사는지 궁금해.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거든.
카르멜: (유리관 속에 든 모나리자를 보며) 그래, 그렇구나.
남자1: 하긴 우리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일들이지. 우리는 때로 마음에도 없는 소리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겠지만, 다시 곧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알 게 될 거야. 우리는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걸 감사하게 생각해야 해. (카르멜, 웃는다) 커다란 행운이니까.
카르멜: 휴우.
34. 세느 강(낮)
(루브르박물관을 나와서 세느강 주변을 어슬렁어슬렁 거리는 남자1, 카르멜은 스케치북을 꺼내놓고 무언가를 열심히 그리고 있다. 바람이 좀 세게 분다.)
남자1: (웃옷을 벗어 걸쳐 주며) 카르멜? 저기 가봤어?
카르멜: 으흠.
남자1: 나, 나, 나는 말이야. 너하고 저, 저기 가고 싶어. (카르멜의 웃음소리) 저기 말이야 저기! 내 생각에는 저기 가서 밤새 노는 건 어떨까, 싶은데.
카르멜: (웃으며) 튀일리 정원?
(세느 강을 따라 걷는 두 사람.)
남자1: (은근슬쩍 손을 잡는다.) 아니, 놀이공원 말이야. (카르멜 티 나지 않게 웃는다.) 저기, 대관람차 타봤어?
카르멜: 아니.
남자1: 아니, 저걸, 아직도 안타봤단 말이야? 넌 외계에서 온 게 틀림없어. 무슨 말인지 알지? 아 물론 네가 외계인이라는 말은 아니고.
카르멜: 대관람차를 타면 외계인도 지구인이 될 수 있는 거야? 정말?
남자1: 그래. 그러니까, 오늘 우린 대관람차를 타야해. 알았지?
카르멜: (웃으며) 그래.
남자1: 웃지마. 난 지금 심각하다고.
(카르멜 계속 웃는다.)
카르멜: 아! 그렇구나.
남자1: (대관람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좀 더 느리게 돌았으면 좋겠는데.
35. 대관람차 (저녁)
(카르멜과 남자1, 대관람차를 타고 있다. 센강, 개선문, 루브르 박물관 등의 파리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날이 어둑어둑 해진다. 남자1은 카르멜의 어깨에 팔을 두른다.)
카르멜: 추워?
남자1: 응? 아니 괜찮은데.
카르멜: 그런데 왜 이렇게 몸을 떨어.
남자1: 좋아서 그렇지 뭐.
카르멜: 어디가 그렇게 좋은데?
남자1: 웃는 게 예뻐. 피부색도 마음에 들고. 특히 증거인멸을 시도하는 것 같은 그 눈 말이야.
카르멜: 증거인멸? 그게 무슨 말이야?
남자1: 으음. 카르멜, 넌 네가 날 좋아한다는 걸 숨기려고 하더군, 무, 물론 나, 나는 네가 네 마음을 숨기려고 해도 – 다 찾아낼 수 있지만.
카르멜: 그 말은 내가 널 좋아하는 것 같으니까 너도 날 좋아한다는 말 인거야?
남자1: 내 말은 그게 아니라. 내가 널 좋아하니까, 너도 날 좋아했으면 아니 너도 날 좋아한다는 걸 알 수 있다는 말 이야.
카르멜: 어설퍼.
남자1: 으음.
(대관람차 잠시 멈췄다, 다시 돌아간다. 카르멜, 남자1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다. 대관람차 조명이 켜진다.
남자1: 무슨 말이냐 하면, 사랑은 아무런 무기도 지니고 있지 않은 것처럼 꾸미고 있지만 실은 언제나 화살과 전동으로 몰래 몸을 단속하는 법이거든.
카르멜: 내 앞에서 멋있는 말 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돼. (웃는다) 왜 그런지 알아? 내가 너보다 널 좋아하기 때문이야. 꾸미지 않아도 돼. 네가 날 욕해도 난 널 좋아할 테니까.
남자1: 내가 더 좋아해. 그게 핵심이야.
카르멜: (바람이 좀 세다. 히잡이 벗겨져 날아갈 것 같다.) 아버지가 만나보고 싶어 하셔. 너만 괜찮다면. (바람이 더 세다. 남자1, 카르멜이 하는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한다.) 언제가 괜찮아?
남자1: 지금. (웃는다) 가만히 좀 있어 볼래?
카르멜: 지금? 지금은 시간이 좀 늦은 것 같은데.
남자1: 지금이 좋은 타이밍이야.
카르멜: (바람이 거세다, 대관람차 살짝 흔들린다.) 잠깐만, 이러다, 날아가겠어. (히잡을 두 손으로 움켜잡으며) 네가 괜찮으면 나도 괜찮은데, 네 생각은 어때? 곤란하면 곤란하다고 말해도 좋아.
남자1: (카르멜의 목에 팔을 감으며) 괜찮겠어?
카르멜: 나야 괜찮지. 아버지 어머니도 좋아할 거야.
남자1: 정말?
카르멜: 그래.
(남자1, 키스를 한다. 카르멜 깜짝 놀라 히잡을 잡고 있던 손을 내려놓는다. 대관람차 아래로 떨어지는 히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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