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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를 가장해서 수류탄으로 아군을 살해하는 행위 프래깅fragging(고의적인 상관 살해)의 유래

사건사고

by 프로젝트빅라이프 2020. 3. 15.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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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서와 규율이 실에 매달린 베트남의 정글에서 일부 장교들은 베트콩보다 더 큰 위험에 직면했다.

1970 년까지 슬래그 명사 단편화 수류탄 단축 (1918)에서 미군 용어. 관련 : 조각난; 깨지기.

Fragging은 미국인의 입대 남성이 상사를 살해하려고 시도하는 베트남의 무시 무시한 의식이다. 이 단어는 수류탄의 닉네임에서 유래 한 것으로, 범죄가 끝날 때 증거가 파괴되기 때문에 입대 된 사람들에게 인기있는 무기였다.

파편 수류탄이나 다른 폭발물을 사용하여 상급 장교를 살해하는 프래깅은 베트남 전쟁에서 놀랍게도 흔했다. 가장 신뢰할만한 수치는 1969 년부터 1971 년까지 730 건의 의심되는 사건으로, 그 전후 미국 전쟁보다 훨씬 높다. 이상하게도, 프래깅의 공식적인 수는 없다. 비공식 출처 중 하나는 86, 다른 하나는 45다. 베트남 이전에는 미군 장교들에 대한 공격이 드물었다. 제 1 차 세계 대전은 12,700 명의 군인에 대해 법원 무술로 이어지는 한 사건을 보았으며, 제 2 차 세계 대전과 한국 전쟁 중에는 비율이 상당히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다. 베트남 분쟁 동안 프래깅 비율은 1969 년 3,300 명당 1 건의 사건에서 1971 년 572 명당 최고치로 상승했다.

출처: straightdope

 

 

전투에서 벌어지는 상관 살해 사건은 대개 무능하고 생존에 위협이된다고 인식되는 지도자를 제거하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프래깅 사건은 후방에 켈론 부대에서 발생했으며 마약에 대한 병사들에 의해 또는 부대 지도자들이 마약 방지 정책을 시행했기 때문에 저지른 것이다. 징계 또는 규정 시행에 너무 엄격한 것으로 인식 된 부대 지도자들은 때때로 안전 핀이 붙어 있는 분화 수류탄이나 조각상 수류탄 혹은 연기 수류탄을 통해 경고를 받았다. 프레깅 위협을 통한 협박은 실제 사건을 훨씬 능가했다.

1969년 5월 10~20일에 벌어진 937고지 (통칭 햄버거힐 전투)의 지휘관 웰던 허니컷 중령은 고지를 점령하는데 약 72명의 전사자와 더 많은 부상자를 양산했다. 고지를 점령하고 나서도 '이산이 아닌가보다'..하면서 전면철수를 하기도 했다. 여기에 사병들은 울분을 토했고 지하신문에 현상금이 걸렸다.  그 결과 수차례 프래깅을 당했고 그 프래깅에서 살아남아 귀국했으나 장군은 되지 못했다.
 
2005년 6월 7일 이라크 전선에서
에스포지토 대위와 앨런 중위가 숙소에 설치된 크레모아로 공격받고 그 이후에 수류탄이 몇발 더 투척되면서 둘다 중상을 입고 다음날 사망했다. 용의자가 검거 됬으나 피해자들이 평소에 원성을 많이 사고있었고 결국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났다. *지금까지도 누가 범인인지 밝혀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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