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관순 열사의 수형자기록표
미국 동포신문 '신한민보'에 보도된 유관순에 대한 기사에는 '한 이화여학생의 체포'라는 제목 밑에 '소녀의 양친은 원수에게 피살'이라는 부제가 달렸다.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으로 기록된 이날 시위에서는 유관순의 부모를 포함한 19명이 순국했으며 30여명이 큰 부상을 입었다.
유관순은 약 한 달만인 5월9일에 함께 잡혀온 10명과 함께 공주 지방법원에서 제1심 판결을 받았다. 재판에서 유관순은 "제 나라를 찾기 위해 정당한 일을 한 것인데 어째서 군기(軍器)를 사용해 내 민족을 죽이느냐"며 항변했고, 다른 이들 또한 "평화적으로 무기 없이 만세를 부르며 행진하는 사람들에게 무차별 총질을 하느냐"고 대응했다.
출처: 뉴시스
“내가 벌거벗고 신문 받을 때는 피눈물이 나더니 동지들 만나 뵈니 반가움에 눈물이 납니다.”
1919년 3ㆍ1운동 이후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붙잡혀온 경성(京城ㆍ서울)의 서대문형무소. 개성의 3ㆍ1운동 주도자 가운데 한 명이었던 허내삼(1888~1964년) 지사는 그곳에서 어린 유관순(1902~1920년) 열사를 만났다. 수사를 받고 재판을 받으면서 오고 가며 형무소내 독립운동 지사들과 동지애를 쌓던 시절. 허내삼 지사는 다른 감방에 수감된 유관순 열사와 감시의 눈과 귀를 피해 수신호로 소통했다. “동지들 만나 뵈니 반가움에 눈물이 난다”는 위의 말은 유관순 열사가 창문을 통해 손가락으로 허공에 글자를 써가면서 전한 내용이라고 한다.
출처: 한국일보
1919년 3월 1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태화관에서 만해 한용운 선생을 비롯한 민족대표 33인은 민족자결과 자주독립의 강력한 의지가 담긴 3·1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같은 날 오후 2시 탑골공원에서도 독립을 염원한 수많은 이들이 모여 “대한독립 만세”를 목 놓아 외쳤다. 하루 전날 천도교 중앙대교당에 숨겨뒀던 2만1000여장의 독립선언문과 태극기는 시민들의 손에서 손으로 퍼져나갔다.
탑골공원에서 종로로 쏟아져 나온 군중은 덕수궁 대한문을 지나 장곡천정(현 소공로)을 거쳐 남산 조선총독부를 향해 행진했다. 선은전 광장(현 한국은행 화폐박물관)에 이르렀을 때에는 3000명으로 늘어났다. 시위대가 총독부로 가기 위해 본정통(현 충무로)으로 들어서자 일제 헌병경찰이 제지했고 양 측이 충돌하며 20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어느 해보다 맑고 따뜻한 초봄을 맞았던 3월1일 그 날 가장 치열했던 장소다.
출처: 이데일리
유관순 열사 최고등급 ‘대한민국장’추가서훈
정부가 유관순 열사에게 새 훈장을 추서한 것은 ‘동일한 공적에 대하여는 훈장 또는 포장을 거듭 수여하지 아니한다’는 현행 상훈법 제4조 때문이다. 정부는 이에 따라 유관순 열사가 광복 이후 국가 이미지 향상과 국민 애국심 고취 등에 크게 기여한 공로를 추가했다. 상훈법 제2조는 ‘훈장 및 포상은 대한민국에 뚜렷한 공적을 세운 사람에게 수여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출처: 한겨레
✔️18살 꽃다운 나이 일제에 붙잡힌 유관순 열사가 당한 고문과 마지막 유언
18살이던 소녀 유관순 열사는 아우내 장터에서 사람들에게 태극기를 나눠주다 독립 만세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일본 헌병에 체포돼 서대문 형무소에 갇히게 된다.
일제는 유관순 열사의 독립 의지를 꺾기 위해 펜치로 손톱과 강제로 뽑는 것도 모자라 성(性) 고문까지 서슴지 않았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만큼 잔혹한 고문에도 유관순 열사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고 결심했던 처음 그 마음을 꺾지 않았다.
갖은 고문으로 핍박받던 유관순 열사는 1920년 3월 1일 오후 2시 3.1 운동 1주년을 기념하는 옥중 만세시위를 이끌기도 했다.
그러다가 끝내 그해 9월 28일 오후 8시 20분 유관순 열사는 19살 꽃다운 나이에 생을 마감하게 된다.
유관순 열사는 옥중에서 "내 손톱이 빠져나가고, 내 귀와 코가 잘리고, 내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어버린 그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다"고 말하며 흔들림 없는 투쟁 의지를 보여줬다.
출처: 인사이트
🖊3·1독립선언서
3·1독립선언서(3·1獨立宣言書)는 조선이 주권을 가진 독립국임을 선언한 문서로 1919년 3월 1일의 3·1 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을 선언한 글이다. 이보다 앞서 1919년 2월 1일에 중국 길림에서 발표된 대한독립선언서와 일본 도쿄에서 선포된 2·8 독립 선언의 영향을 받았다.
최남선이 초안을 작성했다. 일본 제국에 강제로 병합된 조국을 독립시키고자 손병희를 비롯한 33명의 민족대표는 세계 만방에 독립을 선언하고 전국 곳곳에서 독립 만세를 외치기로 계획을 세웠다. 33명의 대표는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태화관(요릿집)에서 회동을 가졌으며 한용운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그러나 총독부에 자진 투옥함. 이에 앞서 2월 26일 ‘보성사’에서 2만여 장의 〈독립선언서〉를 인쇄하여 2월 28일에 1,500여 장을 학생들에게 분배하고 나머지를 그 밖의 각처와 각 지방에 분배했다. 탑골공원에서는 정재용이 팔각정 단상에서 낭독하였다.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고 독립의 당위성을 밝힌 선언서로, 전국적 만세시위운동으로 확산시키는데 기여한 선언서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어, 2016년 10월 20일 2건의 문서에 대하여 대한민국의 등록문화재 제664-1호, 제664-2호로 각각 지정하였다.
출처: 위키백과
독립선언문
우리는 이에 우리 조선이 독립한 나라임과, 조선 사람이 자주적인 민족임을 선언한다.
이로써 세계 만국에 알려 인류 평등에 큰 도의를 분명히 하는 바이며, 이로써 자손만대에 깨우쳐 일러 민족의 독자적 생존에 정당한 권리를 영원히 누려 가지게 하는 바이다.
반만년 역사의 권위에 의지하여 이를 선언함이며, 이천만 민중의 충성을 합하여 이를 두루 펴서 밝힘이며, 영원히 한결같은 민족의 자유 발전을 위하여 이를 주장함이며, 인류가 가진 양심의 발로에 뿌리박은 세계 개조의 큰 기회와 시운에 맞추어 함께 나아가기 위하여 이 문제를 내세워 일으킴이니, 이는 하늘의 지시이며, 시대의 큰 추세이며, 전 인류 공동생존권의 정당한 발동이기에 천하의 어떤 힘이라도 이를 막고 억누르지 못할 것이다.
낡은 시대의 유물인 침략주의·강권주의에 희생되어 역사가 있은 지 몇 천 년 만에 처음으로 다른 민족의 억누름에 뼈아픈 괴로움을 당한 지 이미 십 년이 지났으니, 그동안 우리 생존권에 빼앗겨 잃은 것이 그 얼마이며, 정신상 발전에 장애를 받은 것이 그 얼마이며, 민족의 존엄과 명예에 손상을 입은 것이 그 얼마이며, 새롭고 날카로운 기운과 독창력으로 세계 문화에 이바지하고 보탤 기회를 잃은 것이 그 얼마나 될 것이냐.
슬프다. 오래 전부터의 억울을 떨쳐 펴려면, 눈앞의 고통을 헤쳐 벗어나려면, 장래의 위협을 없애려면, 눌러 오그라들고 사그러져 잦아진 민족의 장대한 마음과 국가의 체면와 도리를 떨치고 뻗치려면, 각자의 인격을 정당하게 발전시키려면, 가엾은 아들 딸들에게 부끄러운 현실을 물려주지 아니하려면 자자손손에게 영구하고 완전한 경사와 행복을 끌어대어 주려면, 가장 크고 급한 일이 민족의 독립을 확실하게 하는 것이니 이천만 사람마다 마음의 칼날을 품어 굳게 결심하고, 인류 공통의 옳은 성품과 이 시대를 지배하는 양심이 정의라는 군사와 인도라는 무기로써 도와주고 있는 오늘날, 우리는 나아가 취하매 어느 강자인들 꺾지 못하며, 물러가서 일을 꾀함에 무슨 뜻인들 펴지 못하랴.
병자수호조약 이후 때때로 굳게 맺은 갖가지 약속을 저버렸다 하여 일본의 배신을 죄주려 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학자는 강단에서, 정치가는 실제에서 우리 옛 왕조 대대로 닦아 물려온 업적을 식민지의 것으로 보고, 문화 민족인 우리를 야만족같이 대우하며 다만 정복자의 쾌감을 탐할 뿐이요, 우리의 오랜 사회 기초와 뛰어난 성품을 무시한다 해서 일본의 의리 없음을 꾸짖으려는 것도 아니다.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격려하기에 바쁜 우리는 남을 원망할 겨를이 없다.
현 사태를 수습하여 아물리기에 급한 우리는 묵은 옛일을 응징하고 잘못을 가릴 겨를이 없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는 오직 자기 건설에 있을 뿐이요, 그것은 결코 남을 파괴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엄숙한 양심의 명령으로써 자기의 새 운명을 펼쳐나갈 뿐이오, 결코 묵은 원한과 일시적 감정으로써 남을 시새워 쫓고 물리치려는 것도 아니로다.
낡은 사상과 묵은 세력에 얽매여 있는 일본 정치가들의 공명에 희생된 불합리하고 부자연스러움에 빠진 이 어그러진 상태를 바로잡아 고쳐서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올바르고 떳떳한 큰 근본이 되는 길로 돌아오게 하고자 함이로다.
당초에 민족적 요구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였던 두 나라의 합방이었으므로 그 결과가 마침내 억누름으로 유지하려는 일시적인 방편과, 민족 차별의 불평등과, 거짓으로 꾸민 통계 숫자에 의하여 서로 이해가 다른 두 민족 사이에 영원히 함께 화합할 수 없는 원한의 구덩이를 더욱 깊게 만드는 오늘의 실정을 보라.
날래고 밝은 결단성으로 묵은 잘못을 고치고, 참된 이해와 동정에 그 기초를 둔 우호적인 새로운 판국을 타개하는 것이 서로 간에 화를 쫓고 복을 불러들이는 빠른 길인 줄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아닌가.
또 원한과 분노에 쌓인 이천만 민족을 위력으로 구속하는 것은 다만 동양의 영구한 평화를 보장하는 길이 아닐 뿐 아니라, 이로 인하여 동양의 안전과 위태로움을 좌우하는 굴대인 4억 중국인이 일본에 대하여 가지는 두려움과 시새움을 갈수록 두텁게 하여, 그 결과로 동양의 온 판국이 함께 넘어져 망하는 비참한 운명을 가져올 것이 분명하니, 오늘날 우리 조선의 독립은 조선 사람으로 하여금 정당한 생존과 번영을 이루게 하는 동시에 일본으로 하여금 그릇된 길에서 벗어나 동양을 붙들어 지탱하는 자의 중대한 책임을 온전히 이루게 하는 것이며, 지나인으로 하여금 꿈에도 잊지 못할 괴로운 일본 침략의 공포심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이며, 또 동양 평화로써 그 중요한 일부를 삼는 세계 평화와 인류 행복의 필요한 단계가 되게 하는 것이다.
이 어찌 사소한 감정상의 문제이리오.
아, 새로운 세계가 눈앞에 펼쳐졌도다.
위력의 시대가 가고 도의의 시대가 왔도다.
과거 오랫동안 갈고 닦아 키우고 기른 인도적 정신이 이제 막 새 문명의 밝아오는 빛을 인류 역사에 쏘아 비추기 시작하였도다.
새봄이 온 세계에 돌아와 만물이 되살아나기를 재촉하는구나.
혹심한 추위가 사람의 숨을 막아 꼼짝 못 하게 한 것이 저 지난 시대의 형세라 하면, 화창한 봄바람과 따뜻한 햇볕에 원기와 혈맥을 떨쳐 펴는 것은 이 한때의 형세이니, 천지에 돌아온 운수에 접하고 세계의 새로 바뀐 조류를 탄 우리는 아무 주저할 것도 없으며 아무 거리낄 것도 없도다.
우리의 본디부터 지녀온 권리를 지켜 온전히 하여 생명의 왕성한 번영을 실컷 누릴 것이며, 우리의 풍부한 독창력을 발휘하여 봄 기운 가득한 천지에 순수하고 빛나는 민족 문화를 맺게 할 것이로다.
우리는 이에 떨쳐 일어나도다.
양심이 우리와 함께 있으며, 진리가 우리와 함께 나아가는도다.
남녀노소 없이 어둡고 답답한 옛 보금자리로부터 활발히 일어나 삼라만상과 함께 기쁘고 유쾌한 부활을 이루어내게 되도다.
먼 조상의 신령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우리를 돕고, 온 세계의 새 형세가 우리를 밖에서 보호하고 있으니 시작이 곧 성공이다.
다만, 앞길의 광명을 향하여 힘차게 곧장 나아갈 뿐이로다.
공약 3장
1, 오늘 우리의 이번 거사는 정의, 인도와 생존과 영광을 갈망하는 민족 전체의 요구이니, 오직 자유의 정신을 발휘할 것이요, 결코 배타적인 감정으로 정도에서 벗어난 잘못을 저지르지 말라.
1, 최후의 한 사람까지, 최후의 일각까지 민족의 정당한 의사를 시원하게 발표하라.
1, 모든 행동은 가장 질서를 존중하며, 우리의 주장과 태도를 어디까지나 떳떳하고 정당하게 하라.
조선을 세운지 4252년 되는 해 3월 초하루. 조선민족 대표:
손병희 길선주 이필주 백용성 김완규
김병조 김창준 권동진 권병덕 나용환
나인협 양순백 양한묵 유여대 이갑성
이명룡 이승훈 이종훈 이종일 임예환
박준승 박희도 박동완 신홍식 신석구
오세창 오화영 정춘수 최성모 최린
한용운 홍병기 홍기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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