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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조위 (梁朝偉 | Tony Leung) 출연작품 및 비하인드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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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젝트빅라이프 2019. 1. 5.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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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영화배우. 梁朝偉 (영문명: Tony Leung Chiu Wai, 광동어: 렁치우와이(Loeng4 Ciu4 Wai5), 보통화: 량차오웨이(Liáng Cháowěi)).[4] 1962년 6월 27일 홍콩 출생. 본적지는 광둥 성 태산[5]이다.

중국에선 영제(影帝), 즉 영화황제로 불리는 배우.[6] 지금도 중화권에서는 엄청난 인기를 자랑한다. 1981년에 데뷔하였으며, 홍콩 4대 천왕과 비슷한 시기에 청춘스타로 많은 인기를 누렸다.

양조위의 아버지는 도박 중독자였고, 양조위가 8살 때 가족을 버리고 떠났다. 그와 여동생은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지독한 가난으로 인해 중학교도 채 졸업하지 못하고 중퇴한 후 삼촌 집에서 심부름을 하는 처지였다고 한다. 그래서 최종학력은 중학교 중퇴. 극도로 가난했지만 지금도 인성으로 유명한 그 답게, 비록 중학교 중퇴였음에도 불구하고 사고를 치거나 어머니 속을 썩이기는 커녕 아주 품행이 단정한 효자였다고 한다.

배우 데뷔는 우연한 기회에 이루어졌는데, 배우 따위는 꿈도 꾸지 못하고 살던 그는 우연한 기회로 한 배우 지망생이자 훗날 절친한 친구가 되는 누군가를 만나게 되는데 그 친구는 TVB의 배우 훈련반 오디션을 보는데 도와달라며 부탁해서 동행했다가 오히려 친구는 떨어지고 양조위가 붙었다. 결국 친구도 1년 뒤인 1982년에 합격하였는데, 그 친구의 이름이 바로 주성치.[7] 여담으로 양조위와 똑같이 가난 때문에 중학교 중퇴하고 막일을 하다 친구 권유로 TVB 오디션을 보아 합격하고 대스타가 된 선배 배우가 있으니 그게 바로 주윤발이다. 

젊었을 적에는 잘생긴 외모로 강인한 청년 역할을 많이 맡았고 여러 무협드라마에서 주연과 조연을 많이 맡았으며, 나이가 들면서부터는 연기파 배우로 활약하게 되었다. 국내에서는 1980년대 후반 홍콩 영화들의 인기가 높아질 즈음 유명해지기 시작했으며, 지금도 액션 계열에서 활동하는 경우를 제외한 중화권 배우들 중에서는 매우 높은 인지도를 가지고 있다.


출처: https://namu.wiki/w/%EC%96%91%EC%A1%B0%EC%9C%84



출연작품


출연작품[편집]

영화[편집]

드라마[편집]

  • 의천도룡기 - 장무기 역
  • 녹정기 - 위소보 역
  • 절대쌍교 - 강소어(소어아) 역
  • 협객행 - 석중옥, 석포천 역
  • 대운하 - 규염객 역
  • 양가장- 양칠랑 역
  • 신찰사형
  • 신찰사형속집
  • 대도회
  • 북두쌍웅
  • 천강재신
  • 향성낭자
  • 비응
  • 계절
  • 천룡팔부
  • 소걸아




양조위-유가령 '영화보다 더욱 영화같은' ♥스토리 화제



홍콩스타 양조위의 '19년 순애보' 화제

"유가령에 대한 내 사랑은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와 결혼하겠다"

'영화보다 더욱 영화같은' 홍콩 배우 양조위(梁朝偉·49)와 유가령(劉嘉玲·45)의 러브스토리가 공개돼 화제다.

MBC '놀라운TV 서프라이즈'는 23일 방송에서 2008년 7월, 19년간의 열애 끝에 결혼에 골인한 양조위-유가령 커플의 기막힌 사연을 소개했다.


출처: http://www.newdaily.co.kr/site/data/html/2011/10/23/2011102300057.html








매니저와 영화사 관계자들에 둘러싸인 양조위는 한눈에 뜨이는 사람이 아니었다. 165cm를 안 넘기는 작은 체구에 웬만한 여배우 못지않게 소담스런 어깨, 그리고 가무잡잡한 얼굴. 1997년 10월 <해피 투게더>의 상영에 맞춰 부산영화제를 방문한 양조위를 처음 대면했을 때, 그 왜소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근사한 미모라기보다는 아담하고 친근한 인상에, 사춘기 소년마냥 수줍은 눈인사를 건네던 모습이 너무 소박해서 오히려 기억에 남았다. 3년 뒤 <화양연화>로 다시 부산영화제에 왔을 때도, 지난 1월14일 새 영화 <영웅>의 시사회가 열리던 중앙시네마에서 만났을 때도, 그 느낌은 여전했다. 상영관 옆의 열린 공간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자세를 잡는 틈틈이 쑥스럽게 웃는 표정, 광둥어의 성조에 크게 흔들리지 않는 나지막한 음색과 조용조용한 말투, 질문에 답하기 위해 양미간과 눈에 살짝 주름을 잡으며 찰나의 생각에 잠기곤 하는 버릇까지도, 여전해 보였다.

확실히 양조위는 외모로 승부수를 던진 배우가 아니다. 80년대 중반 이후 홍콩누아르의 깃발 아래 운집한 스타들과 더불어 스크린에 등장하긴 했지만, 당대를 풍미한 주윤발이나 장국영, 유덕화와 달리 단숨에 우상으로 떠오르지도 않았다. 양조위는 강호의 의리를 위해 자기 희생을 불사하는 무협시대의 영웅을 되살린 오우삼의 홍콩누아르를 통해 신화화된 주윤발의 위풍당당하고 남성적인 ‘영웅본색’을 따르기엔 왜소했고, 액션과 <천녀유혼>의 판타지 로맨스를 넘나드는 장국영처럼 선이 곱고 해사한 미남도 아니었다. ‘열혈남아’ 유덕화의 잘생긴 반항아 이미지에 비하면 너무 유순한 눈빛을 띠고 있었으며, ‘동방불패’ 이연걸 같은 발군의 무술 실력도 없었다. 언뜻 평범해 보이는 그는, 홍콩누아르와 코미디, 무협 등의 장르영화가 연간 100편 가까이 쏟아져나오던 당시 무난한 감초 역할이나 도드라질 것 없는 영화의 주연을 번갈아 맡는 정도였다.

그런데 홍콩 영화계가 사양세로 접어든 지도 수년이 지난 지금, 양조위는 가장 빛나는 별이 되어 있다. 2000년에 <화양연화>로 칸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 트로피를 거머쥐었고, 최근작 <무간도>와 <영웅>이 각각 홍콩과 중국의 박스오피스에서 승승장구 중이다. 주윤발, 이연걸이 할리우드로 떠나고 장국영과 유덕화의 행보가 더뎌진 동안, 양조위는 작가영화와 대중영화의 줄타기에서 균형을 유지하며 홍콩에서 살아남은 거의 유일한 배우다. 그리고 <비정성시> <시클로> <해피 투게더> <화양연화>처럼 영화사가 기록할 영화들에 자신의 얼굴을 새기면서, 그는 세계영화사의 한 기억이 되었다. 그 왜소하고 평범해 보이는 그의 어디에, 그런 내공이 숨어 있는 걸까.

85년 <무명경찰>로 데뷔할 때만 해도, 양조위는 TV의 후광을 업고 영화계의 문턱을 기웃거리는 아이돌 스타였다. 홍콩 의 배우스쿨 과정을 수료한 81년 이후, 장난기 넘치는 악동 캐릭터로 분한 <녹정기>와 <의천도룡기> 등 무협 시리즈와 풋내기 경찰로 뛰어다닌 <신찰사형>이 안방극장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기 때문. 하지만 86년 관금붕과 함께한 세 번째 영화 <지하정>은, TV 태생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을 일부 거두어줬다. 우연히 만난 세 여인 중 하나가 피살된 뒤 남은 둘과 미묘한 감정의 교차로에서 헤매는 20대 청년으로 일상적인 감성의 연기를 보여준 덕분이다. 오래 전이라 “관금붕의 꼼꼼한 연출” 외에는 기억나는 게 별로 없다지만, 즉물적인 쾌락에서 차츰 진심을 고민하는 토니와 안락한 스타덤의 소파에만 안주하지 않으려는 조숙한 고집을 드러내는 24살 무렵 양조위는 어딘지 닮은꼴이다. 이후로도 당분간 <녹정기>의 캐릭터를 변주한 TV드라마와 <은행풍운> 같은 슬랩스틱 코미디를 병행하긴 했으나, <지하정>은 양조위를 허우샤오시엔에게로 이끄는 다리가 됐다.


출처: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16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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