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은 왕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라는 티셔츠를 입고 있던 여성들의 목소리는 전체이든 부분이든 간에 이건 논외로 하고 진중권이 주장하는 남근 다발이 무서워 말도 못하는 나라가 과연 대한민국일까? 페미니스트들은 여권신장 운동이 지금의 남녀, 인종평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하는데 과연 사실일까? 젠더권력을 가졌으며 동시에 페미니스트인 남성 페미니스트들에게 남성성이란 '가해자'가 가진 대부분의 성별일까? 진중권은 성우 김지연을 향한 남성들의 항의를 극성마초의 성질부림에 지나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그가 간과하고 있는 건 페미니즘에 공개적으로 반대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공격적이고 폭력적인 항의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철학자 강신주가 한 인터뷰에서 '페니니즘은 수준이 떨어진다'는 발언을 했을 때 받은 비판은 상상을 초월한다. 보수언론, 진보언론 할 것 없이 강신주에게 여성혐오주의자란 말을 서슴치 않고 했으며 각종 SNS상에서 강신주가 받은 조롱은 진중권이 말하는 '미러링'차원을 넘어선바 있다. 강신주는 페미니즘은 여성적인 입장을 다루나 아직 인간 보편까지는 수준이 안 올라갔으며 그래서 항상 베타적이고 공격적이다고 말한 바 있다. 실제로 페미니스트들은 베타적이며 공격적이며 이중적이다.
남성중심사회의 종식을 이야기하는 대부분의 페미니스트들은 반대측에 대한 비열한 공격을 서슴치 않는다. 진중권의 '나도 메갈리안이다'라는 칼럼은 한국여성단체 연합 성명의 논조와 다르지 않다. 자신들의 공격성, 자신들의 비열함, 자신들의 폭력성을 '미러링'이란 말로 감추기에 급급하다. *여기서 한단계 더 높은 공격성을 가진 이들이 남성 페미니스트들이다.
극단적이다. 그들에게는 중간이 없다.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함부로 말하며 취향을 존중한다고 말하지만 자신의 취향을 대변하기 위해 최소한의 수준도 갖추지 못한 논리를 가졌다. 여성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남성들의 희생과 비용을 자발적으로 떠안고 또 그렇지 못하더라도 페미니즘에 대한 얼마간의 존경심을 간직하라고 말하는 이들이 '남성 페미니스트'다. 성별간의 대립이 아닌 인간해방에 대해 이야기하면 그들 대부분은 똑같은 말을 되뇌인다. 여성이 해방되는 것, 흑인이 해방되는 것, 동성애자가 해방되는 것, 모든 억압에서 해방 해방 해방 해방 해방들이 합쳐지고 뭉쳐져서 최종적으로다가 인간해방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라는 말. 휴머니즘을 이야기할 때 그들은 페미니즘이 휴머니즘의 상위에 있다고 하기 일쑤다. 페미니스트 여성 가운데 인간해방 없는 여성해방을 쫒는 부르주아가 실재한다는 김규항씨의 말에 김미경이 [무식해서 용감했던 김규항에게 꾸벅!]이라고 조롱한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그들에 대한 쓴소리 한마디 조차 포용하지 않는다.
게다가 그들이 나누는 담론은 낡았으며 급진적이며 권력 획득에 급급하기에 상대를 혐오하거나 상대에게서 혐오를 찾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들은 그들과 다른 사람들을 자기 밑이라고 생각하는 선민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이 속한 혹은 그들이 믿는 사상의 노예마냥 '보호'를 위한 '과한 행동'을 서슴치 않으며 '과한 행동'에 대한 지적을 '여성의 고통을 모르는 사람들이 핍박하는 것'이라는 식의 피해의식의 결말로 치닫는다.
본인이 페미니스트라 주장하는 남성 페미니스트들은 본인이 피해자가 되지 않는 한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그들은 페미니스트들이 주장하는 단순 사실관계를 앵무새처럼 반복해서 읊거나 품위유지에 도움이 되는 사건에 집중하며 목소리를 높일 뿐이다.
범죄 사실이 밝혀지기도 전에 교원이 성범죄 혐의로 수사기관의 조사만 받아도 교단에 설 수 없게 하는 법안이 발의 될 수 있는 배경에는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남성들이 있다. 그들은 페미니즘이 모든 평등을 다룬다고 말하면서도 자신들의 남성성을 거세해가며 '반대 표'를 던지지 않는다. 성범죄 혐의 교원 즉각 직위해제는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하는 행위다. 대한민국 헌법 제27조 4항에는 형사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때가지는 무죄로 추정된다고 했다.
그들의 목소리는 남녀갈등을 유발하며 피해자의 시각으로 본다는 말로 가해자를 특정하기에 제대로된 문제 인식을 하지 못하게 만든다. 올바르지 못한 판단을 내렸을 경우 그 사안에 대한 비판은 성별이 기준이 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스트들은 과도하게 상대의 성에 집착하는 경향이 잦다.
그들은 차별이 없는 세상을 이야기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차별'이 없는 세상은 있을 수 었다는 걸 잘 알고 있기에 이를 철저히 이용한다. 자신들의 성별이 남성인 점을 이용해 남성성을 공격하기도 하며 구조적인 문제를 이야기함에 있어 '이분법'적 논리로 상대를 철저히 깔아뭉갠다. 그들은 그들 자신을 들여다보고 무엇이 잘못됐는지 알고는 있지만 말하지 않음으로서 권력의 쟁취를 지향한다.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그들이 추후에 페미니즘을 반대한다고 한들 놀랄 필요가 없는 이유다. 그들은 약자와 약자가 싸우는 일로 얻을 수 있는 이해득실을 계산하며 사회적명망에 광적으로 집착한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그들이 옹호하는 것에 대한 비판을 '악플'로 치부하며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을 한국사회의 태도문제로 확대시킨다. 의견수렴 과정에서 있을 수 있는 비판을 철저히 아래로 깔아뭉갬으로서 그들은 그들에게 유리한 지대를 선점한다.
남자 페미니스트는 기본적으로 사람들 말을 듣지 않는다. 아니 들을 수 없다. 그들은 마치 카서스의 바위선에 묶여 매일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벌을 받는 프로메테우스와도 같다. 그들은 그들이 남성들에게 공격받았다는 걸 훈장으로 여기기에 떠벌리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정치적 올바름을 공공연히 알리기 위해 자신이 받았다는 혐오표현을 나열하며 상대방에게 여성혐오 낙인을 찍는다. 그들은 그들이 만든 벽 바깥에 있던 이들과 오래도록 소통할 수 없을 것이다. 페미니즘은 수많은 비판과 의문에 대한 하나의 대답만을 갈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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