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교육 의무화를 들고 나온 여성단체들, 여성민우회 등이 말하는 모두를 위한 교육이란 무엇일까?
그들은 페미니즘이 학생들 모두의 눈높이에 맞는 인권교육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올바른 전망을 제시하거나 여성을 억압하는 객관적 현실을 올바르게 파악하고 있지 않다. 그들은 남성특유의 사회적 경험과 지각방식을 보편적인 것으로 표준화 하려는 태도를 근절시키는 것, 스스로 억압받는 다고 느끼는 여성들의 관심사를 체계적으로 이해하려는 것, 여성적인 것의 특수성이나 정당한 차이를 정립하고자 하는 것 등이 페미니즘의 목적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올바른 전망은.......
거짓말로 만들어진 혹은 잘못 만들어진 통계를 사용함으로서 페미니즘의 불필요함을 스스로 입증하고 있다. 대한민국 양성평등 성적표는 115위가 아니다.
유엔 가입 국가 대부분이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유엔개발계획 '성불평등지수" 순위에서 대한민국은 당당히 10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어째서 가장 객관적이어야 할 교과서에는 115위라 기재된 것일까?
페니니즘 교육을 하겠다며 교과서에 실은 WEF '성격차지수'는 국가의 수준은 고려하지 않고 '남녀 간 격차'만 본다. 전쟁으로 남자들이 많이 죽어가는 나라 일 수록 양성평등지수가 높다. 참고로 유럽의 빈국 몰도바는 26위다.
잠깐 몰도바라는 나라에 사는 여자들의 삶에 대해서 알아보자. 몰도바는 남존여비 사상이 남아있는 곳이며 '남자'를 하늘처럼 떠받드는 곳이다. 일인당 국민소득이 약 1200달러에 불과한 동유럽 최빈국 답게 남성은 거지로 여성은 창녀로 살아간다는 말이 농담처럼 들리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몰도바는 구소련 독립이후 경제가 망가졌고 그 덕분에 20만명이 넘는 여성들이 원정 매춘을 하고 있다. 이런 나라가 우리나라보다 성평등한 국가라고 '여가부' 및 '교육부'가 교과서로 가르치고 있다는 말인데 이거야 말로 '여혐'이 아닐까, 싶다. 교과서에 쓰인 그대로 믿자면 여가부가 있는 유일한 나라가 성평등 지수가 고작 115위라는 말인 건데......저 통계대로 라면 여가부는 그동안 재역할을 하지 못했으니 없애 버리는 편이 차라리 나을지도 모르겠다.
덧붙이자면 전쟁의 고통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르완다가 성평등 국가 순위 7위다.
WEF성평등 지수 순위를 높이는 방법은 남자들이 다 죽어나가면 된다. 전쟁으로 빈곤국가가 되든가. 경제를 말아먹어서 남자여자 할 것 없이 거리로 쏟아지던가.
메갈 혹은 워마드 또는 과격한 페미니스트들이 '재기해''라고 외치는 장면들이 꽤 많은데 어찌보면 그게 WEF성평등 지수를 높이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일지 모른다. 다시말해 페미니즘을 가르치겠다며 WEF성평등 지수를 교과서에 싣거나 WEF성평등 지수를 교육방송에서 당당히 떠들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남자들은 다 나가죽어라'에 동의하고 있다는 것으로 봐도 무방하겠다.
경제참여기회가 124위고 교육성취도가 103위이며 건강과 생존이 74위이며 정치권한 부여가 93위라고 주장하는 여성단체들이 있다면 르완다를 이야기하면 된다. 전쟁으로 남녀 할 것 없이 다 죽어나가고 있는 르완다의 경제참여기회는 대한민국보다 월등히 높다. 르완다는 후투족과 투치족 간의 내전으로 석달 동안 100만여명이 상해당했으며 현재도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50만명의 여성이 집단 강간을 당하기도 했다. 이런 나라를 경향신문은 남녀가 평등한 나라로 소개하기 까지 했다. 빈곤 국가를 젠더감수성이 우수한 나라로 소개하는 모습을 보면 실소가 나온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WEF성평등지수가 높아지려면 극도로 가난해야하며 전쟁국가여야 한다. 남성들이 죽어나가거나 남녀 비율에서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은 나라일 수록 성평등지수가 높으니 그녀들의 말대로 남성들은 '재기'하자.
남성과 여성을 구분 짓는 것이 남성들이 구축한 사회적 이미지 일 뿐이라고 가르치는 교육이 정상적인가?
한겨레 신문은 이 책을 소개하면서 진화심리학은 '여혐''의 과학적 호위병인가, 라는 기사를 냈다. 다시 말하자면 페미니즘은 진화심리학 및 생물학적 차이마저 '여혐'이라 큰 소리치고 있지만....
군대 문제에서 만큼은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인정하고 있다.
강요된 여성성이 해결되면 강요된 남성성이 해결 된다는 사람들이 유난히 많아졌다.
산업재해 남성여성 비율이다.
강요된 남성성을 버리면 대한민국은 돌아가지 않는다. 가장 힘든 일, 가장 위험한 일에 남성들은 '남자니까, 이런 일은 내가 해야지.'라고 당연하게 생각하고 일을 하고 있다. 남성이니까, 살해 당하지 않는다? 협박 받지 않는다? 라고 주장하는 것도 틀렸다.
페미니스트라 주장하거나 페니미즘이 전부라 말하는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을까? 그들의 주장에 근거로 맞서 볼 필요가 있을까? 혹은 남성들이 페미니즘을 배워야 할까?
그럴 필요는 없다. 여가부는 어떤 정권이든 간에 해마다 여성정책에 쓰이는 예산 비율이 상당히 높은 반면 남성을 위해 쓰는 예산은 전무했다.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남성들의 방송 출연비율과 출판 비율 혹은 여성계가 주최하는 강연 비율에 주목해보자.
페미니스트와 대화할 필요성을 느낀다면 '논리'로 무장하고 싸울 필요는 없다.
한국사회에서 페미니스트로 살아가고 있다는 건 ''논리'가 아니라 '왜곡'으로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겠다는 선언이다.
그들이 '바보'라서가 아니라 '영악'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니 '대화'가 통할리가 없다.
페미니스트는 당신이 힘이 없거나 당신의 어려움이 '이슈''가 되지 못한다면 절대 손을 내밀지 않는다.
페미니즘이 아닌, 인본주의를 가르치는 교과서가 되길 바란다.
페미니스트가 불편해서 싫다고 하는 게 아니다.
페미니즘이 수준이 떨어지기 때문만도 아니다.
그들이 파괴하고 싶은 세상에 '우리'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이 만들고 싶은 세상에는 남성도 여성도 없기 때문이다.
그들의 세상에는 '사회'가 없다. 그들이 강요하는 동질화에 반대한다.
모두를 위한 이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를 위해 무언가를 하겠다는 사람들은 희생을 강요한다. 모두를 위해 희생을 강요해왔던 인물들 대부분은 전체주의자였다. 페미나치라고 괜히 불리는 게 아니다. 자신의 이념을 위해 집단의 전체를 개인보다 우위에 두고 개인을 전체의 존립과 발전을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사상이 페미니즘이다. 그들이 그들 집단을 위해 '한 사람'을 희생시키고 '사과'하지 않는 모습은 그들의 입장에서는 지극히 정상적이다. 그들의 사상이 전체주의를 기반하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면 성폭력범이라 지목 받은 무고한 한 사람을 위해 '결사 반대'라는 말을 할 수가 없다. 영국의 법률가 William Blackstone는"열 명의 범죄자가 도망치는 것이한 명의 무고한 사람이 억울한 고초를 겪는 것보다 낫다."고 말했다.
그런데 페미니스트라 자처하는 이들은 '침묵'을 강요당한다며 '억울한 사람'을 만들라고 하고 있다. 이게 이들이 말하는 페미니즘의 실체다.
이 세상에 모든 철학자들, 모든 교육자들, 모든 사상가들 중에 내가 말하는 것이 전부 맞다고 이게 가장 옳다고 한 사람들이 있었던가? 내가 알기로는 독재자들 말고는 없다. 니체가 페미니즘이 남성의 문제인 독단적 이미지를 여성이 답습한다고 비판한 건 우연이 아니다. 그들이 머리를 짧게 자르고 바지를 입고 '분홍색'은 강요된 색이다. 내 사상이 가장 옳다. 페미니즘이야 말고 가장 평등한 이론이다. 주장하는 모습을 보자. 사람이 먼저인 세상을 만들고자 페미니스트가 됐다면 모두가 페미니스트가 되어야한다는 해괴한 발언을 하지 말아야한다.
이상한 취급을 받는 건 가부장적 사회이기 때문이 아니라 페미니스트의 심연에서 '파쇼'를 보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은 대중독재이론과 다를 바가 없다. 악랄하게 파괴를 부르짖고, 악랄하게 자신을 피해자로 만들어가며 강자의 반열에 들고자 애를 쓴다. 그 과정에서 짓밟히고 쓰러지고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다. 그들은 발언중에 상대를 무시하거나 비하하고 비아냥거리며 모욕하면서 검은 티셔츠를 나눠 잆던 파시스트 마냥 티셔츠를 만들며 개인을 집단화하고 있다.
페미니즘은 누군가가 배워야 할 만한 가치를 지니지 못했다. 파괴를 부르짖고 구호를 외치고 집단의 룰을 만드는 모습은 미개하기 짝이 없다.
성별갈등을 부추기는 자들은 인간을 말하지 않는다.
통계 바로쓰기 공모전 수상작을 보자. 대한민국에 사는 남녀는 대부분 정상적이다. 모두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이해하려 애쓰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언론, 일부 정치인들, 일부 언론인들, 일부 작가들은 잘못된 통계를 사용하면서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그들이 왜 잘 못된 통계를 사용하면서 '피해자'가 되려고 하는지는 궁금해 하지 않아도 된다. 그들에게 갈등은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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