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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듀라한 (Dullahan)

프로젝트빅라이프/싸이코패스신은죽었다

by 프로젝트빅라이프 2018. 12. 15.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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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서의 학살>파블로 피카소, 1951. 이 작품은 한국전쟁 당시 1951년 신천학살을 고발한다



많이 어지럽니?”

죽겠어요. 진짜. 그런데 여기는 어디죠?”

선원들은 우리의 손과 발을 밧줄로 묶고 증기기관과 연료로 꽉 찬 선박 아래로 끌고 들어갑니다. 그들이 누구냐고 어디에서 왔냐고 물으면 나는 신의 아들이고 하늘위에서 왔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신을 모독했다며 우리를 때리고 짓밟습니다. 하나도 아프지가 않은데 말이죠.

 

왜들 저러죠?”

그들은 우리가 아픈 내색을 내길 바라며 뾰족한 막대로 허벅지를 찌르고 나는 그들이 좀 귀찮아져서 다 죽여 버릴까, 고민합니다. 바퀴벌레 같은 새끼들, 한 놈씩 아니 두 놈씩 잡아다가 팔, 다리를 비틀어 다 떼어내고 머리를 꾹 눌러버릴까, 봐요.

 

생각만 해요. 생각만.”

 

그녀가 그러지 말라고 말립니다.

선원들이 우리를 다시 갑판 밖으로 끌어내 손도끼로 목을 자르려고 하는데도 말이죠.

목이 잘려봐야, 정신을 차릴는지.

 

사람 모가지를 딸 때는 망설이지도 말고 머뭇거리지도 말고 단숨에 해치워야해. 안 그러면 내가 네 놈의 목을 따 버릴 테니까.”

 

선원들 중 하나가 손도끼를 든 젊은 선원에게 말합니다.

그 옆에 서있는 선교사는 성경책을 읊습니다. 워낙에 목소리가 작아서 뭐라고 하는지는 잘 들리지 않아요. 오라시오 키로가가 쓴 목 잘린 닭이 생각나는 밤입니다. 목잘린 닭은 마치니와 베르따의 네 명의 바보 아들들 이야기인데 모두 짐승 같은 모양새를 가졌습니다. 짧고 굵은 회색털이 얼굴을 뒤덮고 있는 탓에 누가 누구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죠. 아무튼 그들은 마치니와 베르따 부부 사이에 귀엽고 예쁜 딸이 태어나자 철저히 외면당합니다.

그러다가 닭을 잡는 모습을 보게 되고요.

그들은 여동생 베르띠따의 목과 팔, 다리를 잡고 부엌에 갑니다. 살려달라는 말도 무시한 채 목을 쳐요. 필요 이상으로 피가 사방에 튀지만 네 명의 바보들한테는 문제 될 게 없죠.

 

우리는 목이 잘렸습니다.

우리의 몸은 바다 한 가운데에 버려지고 우리의 머리는 나무술통에 들어가 있어요.

술에 취하네요.

 

기분이 어때?”

그냥 뭐. 알딸딸하네요.

 

벼리는 두 손에 얼굴을 묻고 싶어 하다가 약간씩 깜박이던 눈을 심하게 깜박거립니다. 머리만 남았다는 게 실감이 안 나는 모양이에요.

 

배 멀미는 사라지지 않았어?”

그게 목 잘린 사람한테 할 소리에요?”

그녀가 웃습니다.

버려진 몸은 바다 속을 실컷 헤엄치고 있을 거예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겠지만 말입니다.

목 아래가 간지럽습니다.

 

끅끅.”

 

웃음을 참기가 힘듭니다. 심각하게 가려워서 긁고 싶은데 팔이 아직 덜 자랐어요.

 

끅끅. 끅끅. 끅끅. 끅끅.”

 

, 다리가 다 자라는 동안에 제너럴셔먼호는 뭍에 도착합니다. 갈매기 떼가 극성스럽게도 우네요. 선원들은 닻을 내리고 배에서 내린 선교사들은 목에 걸린 십자가 목걸이를 풀어 손에 쥡니다. 그들은 모두에게 주가 필요하다고 믿고 그 믿음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많은 것들을 파괴할 거예요.

 

바람이나 좀 쐴까?”

 

우리는 나무술통을 깨고 밖으로 나옵니다.

선원들은 낯선 공간, 낯선 풍경에 압도당했는지 꽤나 점잖게 굴고 있습니다. 그들은 소달구지를 끌고 나온 농부를 향해 손을 흔들어요. 키 크고 덩치도 큰 백인들에게 주눅 든 마을 사람들이 성곽 밖으로 하나, 둘 나옵니다. 도끼로 우리 목을 자른 선원이 붓을 잡습니다. 그는 외부인에 대한 경계심 반 호기심 반으로 찾아온 사람들의 초상화를 그려줘요. 친절하게 때를 기다리며 말이죠.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좀 있어 봐요.”

 

머리 수건을 매만지던 여자가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어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선원은 손도끼를 쥐었던 손으로 여자의 어깨를 살포시 누르고 자리에 앉혀요. 그리고는 슬쩍 형태를 그려보고는 몸 선을 진하게 땁니다.

 

숨은 쉬어도 돼요.”

 

선원은 그림을 그리느라 정신이 팔려있고, 여자는 주눅이 들어서 땅만 내려다봐요. 다른 선원들은 마을사람들이 가마솥에 익힌 돼지고기에 정신이 팔려있습니다. 장옷 허리를 조여 입은 여인은 펄펄 끓는 가마솥에서 큰 덩어리째 삶아진 돼지고기를 도마에 올려놓습니다.

 

차린게 없어서 미안시러와 어찌까.”

고맙습니다.”

 

선교사가 인사를 끝내기도 전에 선원들이 달려들어 돼지고기를 뜯습니다.

게걸스럽게.

쌀밥은 거들떠보지도 않아요.

돼지고기를 가마솥에 삶은 여인은 선교사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선원들의 모습이 꽤나 재미있는 모양입니다. 깔깔거리며 웃는데 배꼽이 다 드러나는 줄도 몰라요.

 

거 참 복스럽게도 잘 먹네.”

그들은 당신들도 잡아먹을 거예요, 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냥 있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그냥 멀찍이 있고 싶으니까요. 선원들은 금방 배부르지 않고 마을사람들은 밖에서 온 손님들 대접을 귀하게 한답시고 흑돼지를 또 잡습니다. 흑돼지는 죽어라 소리를 지르고 배가 좀 부른 선원들은 아랫도리를 만져요. 그새 힘깨나 쓰게 생긴 남자가 돼지 목을 칼로 찔러 큰 구멍을 냅니다.

하늘에는 까마귀가 참 많이도 날고 있네요. 남자는 까마귀들도 좀 먹으라고 돼지내장을 바닥에 툭 던져놓습니다.

 

심심하지? 조금만 기다려봐.”

? 뭐가요?”

목을 자르는 사람들을 보고 싶다고 했잖아.”

.”

배가 뜨듯해지면 딴 생각을 하게 되는 게 사람이니까.”

 

날은 서서히 저물어 어둑어둑 해지고 마을 밖에서는 늑대 울음소리가 들립니다. 회색 토담 위에 올린 약간 흰 볏짚 위에 올라가 있던 수탉도 맥락 없이 울고요. 줄곧 나뭇가지에 앉아있던 까마귀들은 더 캄캄한 곳으로 날아갑니다.

 

마을사람들은 손님들을 위해 횃불을 들어요. 바로 그때였습니다.

삶은 닭을 내놓았었던 누군가가 울음을 터뜨린 것도, 혼자 놀고 있던 꼬마가 선교사의 손목을 물어버린 것도, 풀어헤쳐진 저고리 자락을 움켜쥐고 있는 처녀의 가랑이에서 피가 새어 나왔던 것도 말이죠.

 

뭐야? 저것들.”

 

처녀의 아버지는 낫을 한 자루 집어 듭니다. 그리고는 말릴 새도 없이 선교사의 등을 내려찍어요. 마을사람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선원들은 약간 술에 취해 비틀거리면서도 허리춤에 총을 꺼내 듭니다. 일촉즉발의 상황입니다만, 그걸 제지할 사람은 나를 포함해서 아무도 없습니다. 선원들 중 하나가 처녀의 아버지를 붙잡습니다. 그리고는 칼로 목을 그어요.

 

이 개만도 못한 버러지 새끼들아.”

 

선원들은 마을사람을 팬케잌, 동전구멍이라고 부릅니다. 마을사람들은 몽둥이를 집어 들었어요. 싸움의 끝은 싱겁습니다. ! ! ! 총성이 울려 퍼지고 난 뒤 마을사람들이 손에 든 몽둥이는 바닥에 모두 떨어져 있습니다. 나머지는 도망치거나 숨거나 잡히거나 달아날 수 없게 된 부상자들은 죽을 때까지 선원들이 겁탈하는 아내와 딸, 그리고 어머니의 모습을 봐요.

 

재미없지?”

……

벼리는 내 물음에 답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나를 쏘아봐요.

 

그만보고 돌아갈래?”

……

아님, 조금만 더 기다려보든가.”

저것도 신이 시킨 건가요?”

내 아버지 하나님은 가장 재미있는 걸 다른 사람이 대신하게 두지 않아.”

?”

사람들은 내 아버지 하나님을 닮았거든.”

……

뭐 그 반대이거나.”

 

살육파티를 끝낸 선원들에게서는 피비린내가 납니다. 피 냄새를 맡은 들개들은 선원들이 술에 취해 깊이 잠든 사이 시체들을 뼈만 남기고 다 먹어치울 기세에요. 성곽내로 도망친 마을사람들 중 하나가 긴 창을 양손에 쥔 군인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군인들은 들개들을 쫒아내고 선원들을 나무에 꽁꽁 메워둬요. 그리고는 목 졸라 죽인 처녀의 가랑이 사이를 집요하게 파고들던 선교사를 창으로 몇 번이고 찔러죽입니다. 성곽 밖으로 나온 군인들은 선원들이 깨어나기를 기다렸다가 목을 벱니다. 선원들이 뒤늦게 살려달라고 말해봤자, 군인들은 그들의 말을 알아듣지 못해요.

 

속이 좀 시원하니?”

모르겠어요.”

벼리는 새까맣게 불타고 있는 제너널셔먼호를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사람들을 죽여야 할지, 신을 죽여야 할지 모르겠니?”

아뇨.”

그런데 왜 아까부터 그런 표정이야?”

내 표정이 어때서요?”

 

그녀는 헛웃음을 터뜨리고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더니 말을 잇습니다.

 

사람마다 달라요.”

?”

신은 하나지만 사람은 여럿이니까요.”

그렇지 않아.”

뭐가 그렇지 않죠?”

아니야. 아무것도.”

 

신의 세계도 인간들 세상만큼이나 과거에는 상당히 복잡 했습니다. 신들의 전쟁이 벌어지지 않았다면 많은 것들이 변하지는 않았었겠죠. 어쨌든 이만 집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과거에 너무 오래 머물러 있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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