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이 이런 느낌이구나.”
벼리는 신발을 벗고 딱정벌레를 모방한 장지뱀 새끼 한 마리의 뒤를 천천히 쫒아가고 있습니다. 맨발인데 뜨겁지도 않은 모양이에요.
“덥다.”
“재미있다고 할 때는 언제고.”
글라라가 바오바브 나무 밑동에 뚫린 구멍 안으로 들어옵니다.
“우리 둘이 이렇게 있으니까, 여기하고 제법 잘 어울리지 않아?”
“농담이라도 그런 소리 하지 마.”
벼리가 비명을 지릅니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네요. 구멍 밖으로 나와 보니 사자가 남긴 뼉다구와 고기 덩이를 벼리의 그림자가 먹어치웁니다. 아마도 검은 늪 개구리가 시체 냄새를 맡고 그녀를 저기까지 데리고 간 모양이에요.
“이것도 네가 만든 거야?”
“아니.”
나는 그냥 죽은 내 어머니와 소녀의 유전자를 결합했을 뿐입니다. 문제는 소녀의 그림자 속에 사는 검은 늪 개구리들이 죽은 것들만 먹는 것 같지는 않다는 거예요. 사자를 보고 놀란 벼리가 주변을 둘러보는 사이, 기어코, 장지뱀 새끼 한 마리를 긴 혓바닥으로 낚아채서 삼켜버립니다.
“큰일이군. 저런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뭐가 큰일이야? 고작 사자 한 마리 가지고.”
“그게 아니고. 아니다. 뭐, 배고프면 그럴 수도 있는 거지. 뭐. 어라? 조용히 좀 해봐.”
“응?”
“한 마리가 아니네. 왜들 저러는 거지?”
사자 떼가 몰려들고 있습니다. 게다가 전부 갈기가 난 암컷들입니다. 갈기가 짙고 풍성하지만 체격은 수컷사자만큼 크지는 않아요. 최대한 낮은 포복으로 벼리에게 다가옵니다. 사냥감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상대를 골라도 한참 잘못 골랐네요.
라고 생각했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내가 헛것을 본 것인지. 암사자들은 없고 마른 바람소리만 요란해요.
우리는 짐바브웨 하라레 외곽에 위치한 음바레의 어느 시장으로 갑니다. 상가 앞에 놓인 조각상들만큼이나 사람들의 표정은 다양합니다. 게다가 그들은 어느 이름 있는 조각가들보다 솜씨가 좋습니다. 글라라는 머리에 채소바구니를 이고 가는 짐바브웨 여성들을 보고는 갈증이 났는지 곧 그 뒤를 따라갑니다.
피를 마시는 소리가 참 크게도 들립니다. 안 됐지만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죽지 않을 만큼 만 빨기를 바래야줘. 뭐. 글라라는 다 마시고 난 뒤 옷을 갈아입고 왔습니다.
“다 마셨어?”
글라라 얼굴표정이 어두운 걸 보니 피를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다 마셔버린 모양입니다. 어쩌면 이편이 더 나을지도 몰라요. 흡혈귀에게 피를 빨린다고 영화처럼 흡혈귀가 되는 일은 없겠지만 용케 정신을 차리고 집으로 돌아간다 한 들 살이 썩어서 천천히 죽고 말테니까요.
어쩌면 고통 속에서 내 아버지 하나님을 만나게 될지도 모르죠.
“나는 내가 괴물이 될까봐, 두려워.”
“이미 괴물이야. 너는.”
나는 괴로워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글라라의 귓가에 속삭입니다.
“그렇게 말하지 마.”
“그럼 어떻게 말해야 해?”
“너도 괴물이야.”
글라라, 그녀는 거짓말을 잘합니다. 기분이 좋아서 입고리가 올라가져 있으면서도 애써 그걸 부정하는 말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해요.
“누가 뭐래? 나도 괴물이지. 괴물의 아들이니까. 당연한 거 아니야?”
“나는 내가 이렇게 되고 싶어서 된 게 아니야.”
“그건 나도 그렇지.”
“넌 인간이었던 적이 없어서 내 슬픔을 절대로 이해 할 수가 없을 거야.”
“내가 널 이해하려고 들지 않아서 우리가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글라라, 그녀는 소변이 계속 마렵고 볼일을 보는 횟수만큼 계속 갈증이 납니다. 이 마을의 기준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죽은 건 아닙니다. 이곳에서는 평범한 일이죠. 길을 걷다가 누군가 픽 쓰러져 죽어도 놀라서 호들갑을 떠는 소동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살아있는 사람들을 보니 현기증이 나네.”
나는 좀 쉬고 싶어요. 북적북적 대는 사람들을 보니 정신이 없습니다. 벼리는 이것저것 구경하느라고 정신이 없지만요. 가지고 싶은 물건을 슬쩍슬쩍 하는데 솜씨가 장난이 아닙니다. 날이 그새 어둑어둑해집니다.
“그만 집에 가자.”
“네?”
“돌아가는 게 좋겠어. 글라가가 이곳에 있는 사람들 피를 죄다 빨기 전에.”
글라라의 눈빛이 심상치가 않습니다. 저대로 두면 이 곳에 사람들은 모두 사라지게 될지도 몰라요. 나야 사람들이 죽든 말든 상관없지만 글라라는 아마 죄책감에 시달려서 한동안 문을 걸어 잠그고 그 누구도 만나지 않을 겁니다. 그건 내가 좀 그래요.
“가자. 다음에는 여기보다 더 재미있는 곳으로 데려다 줄게.”
“그래요. 그럼.”
벼리의 두 손에는 말린 벌레가 잔뜩 쥐어져 있습니다.
“징그럽지도 않니?”
“맛있어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벼리가 먹을 만한 것들을 잔뜩 사가지고 갈까, 싶습니다. 벌레를 잔뜩 입에 넣고 오물오물 씹어 먹는 모습이 정말 귀엽네요. 어쨌든 집으로 돌아갑니다. 글라라는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아무 말 없이 기도를 합니다. 습관이란 무서운 법이죠. 저는 죽이는 일이 습관이 된 사람들을 만난 적이 있어요. 살인을 일으킨 내적동기를 그들에게서 찾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습관이 무서운 거죠.
“그런데 왜 사람들을 죽이는 거죠?”
나는 느닷없는 벼리의 질문에 순간 당황한 나머지 혀를 깨물고 말았습니다.
“이유가 없어서 딱히 너한테 해줄 말이 없어.”
“왜 말리지 않죠?”
“그를 말릴 수 있는 건 그 자신뿐이야.”
“말리려 고는 해봤어요?”
“신을 누가 말릴 수 있겠니?”
사실, 나는 그를 말리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사람들은 너무 많아서 개체 수 조절이 필요해요. 그런데 나는 어째서 벼리의 눈치를 살피며 말하고 있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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