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고뇌의 배
[입(하나님을 모독한 말, 거짓말쟁이 들), 항문(동성애의 죄), 질(여성 죄인) 등의 인체의 구멍에 주입하는 금속기구. 나사를 돌리면 서서히 4개의 잎으로 확장, 마지막에는 구멍이 터져 버리는 구조로 되어있다. 또한 내부에 스파이크가 장착되어 있는 것도 있다.]
집에 돌아오니 피 비린내가 진동합니다. 둘째 형한테 물어보니 내 아버지 하나님이 노예로 잡아온 사람들 중 한 명만을 살려서 돌려보내주겠다고 약속했다고 하네요. 무기는 주지 않았어요. 여자들은 힘이 더 센 남자들에게 목이 졸려 죽습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에게 밟혀 죽거나 맞아죽거나 하다가 시체처럼 엎드려 있어요.
“누가 살아남을 것 같아?”
“다 죽겠지.”
글라라가 숨을 크게 몰아쉽니다. 바토리와 눈이 마주친 모양이네요. 바토리는 머리 세 개가 꽂힌 꼬챙이를 흔듭니다.
“글라라, 내가 내 눈에 띄면 어떻게 한다고 했지?”
“죽일 테면 죽여 보든지.”
글라라도 만만치 않네요. 그녀는 피를 좀 많이 마시고 왔고 몸이 가볍습니다.
“너는 내 욕조에 피를 받고 내 손등에 키스를 해야 해. 또 거부당한다면 나도 내가 어떤 조취를 취하게 될지 몰라. 무슨 말인지 알아들어?”
“싫다면?”
글라라는 송곳니를 드러내며 방어 자세를 취합니다. 궁지에 몰리면 쥐도 고양이에게 이빨을 드러낸다더니 그 말이 딱 맞네요. 바토리가 용수철처럼 튀어 오릅니다. 백병전을 펼치고 있는 사람들이 순간 얼어붙네요.
“둘 다 그만해요.”
벼리가 겁도 없이 끼어듭니다.
“그래 그만 좀 해. 따지고 보면 둘은 피를 나눈 사이잖아.”
“웃기시네.”
두 사람의 갈등은 점점 악화되는 듯 보이지만 무력충돌로 비화하지는 않습니다. 벼리 때문이죠.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검은 늪 개구리 때문입니다. 그림자 속에서 갈기가 난 암컷 사자들이 튀어나왔어요.
“너 정말 이상한 걸 만들어냈구나.”
바토리가 벼리에게 다가섭니다. 갈기 난 암컷사자들이 으르렁대네요.
“안녕?”
“안녕하세요.”
“사자 좀 다시 넣어둘래?”
“아, 네.”
갈기 난 암컷사자들이 그림자 속으로 다시 들어갑니다.
“너는 말도 잘 듣고 참 착한 아이구나. 그리고 좀 이상한 걸 가졌고.”
“칭찬 고마워요.”
바토리는 벼리가 마음에 드는 모양입니다. 그녀는 글라라에게는 관심이 없어졌는지 눈길 한 번 주지 않네요. 그리고는 찬찬히 벼리의 몸 구석구석을 뜯어봅니다.
“아기 피부구나. 조금만 방심해도 트거나 건조해져서 피부트러블이 생길 수도 있겠어.”
“그런가요?”
“피 냄새도 다른 인간들하고는 다른 것 같고.”
“고마워요.”
“내 새장에 가둬놓고 계속 보고 싶을 정도로 아름답구나.”
바토리가 말하는 새장은 쇠창살로 만들어진 관을 말합니다. 바닥에 가시가 달려있죠. 한 명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크기의 새장에 처녀들을 우겨넣고 도르래를 이용해서 새장을 허공에 매달면 뽀족한 철심이 나와서 처녀들을 갈 갈이 찢겨 죽여 버리죠.
“미친년!”
글라라가 다 듣게 혼잣말로 중얼거립니다. 오늘따라 글라라가 왜 저러는지 모르겠네요. 바토리의 성질을 건드려서 좋을 게 하나 없다는 건 본인도 잘 알 텐데.
피에 취해도 단단히 취한 모양이네요. 뭐든 적당히 마셔야합니다.
그 사이 사람들은 편을 만들어서 싸우고 있습니다. 가장 강해보였던 근육질의 거인이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어요. 그는 무릎을 꿇고 살려달라고 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람들에게 밀려 쓰러집니다. 사람들은 쓰러진 그의 얼굴을 발로차구요. 죽을 때까지 말이죠.
죽이고 죽고
살려고 발버둥 치다가 죽고
죽은 척 하다가 죽고
도망치다 잡혀서 죽고
죽이고, 죽이고, 죽이고, 계속 죽이다가
이제 두 사람만 남았네요.
둘은 서로를 노려보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한 사람은 죽어가고 있고 다른 한 사람은 부러진 갈비뼈를 몽땅 드러낸 시체와 목이 잘린 시체 더미들 사이에서 몸을 일으켰어요. 운이 좋다고 해야 할까요. 죽어가고 있던 사람은 마지막 숨을 몰아 쉰 뒤 쓰러집니다. 남은 한 사람은 애타게 엄마를 찾고 있습니다.
저러다가 탈수로 죽죠.
내 아버지 하나님이 모사하고 모창할 일이 하나 더 늘었네요
“사람들을 왜 저렇게 죽여요?”
“그의 머릿속에는 이유가 없어.”
“네?”
“그는 말도 안 되게 충동적이야.”
“정신에 문제가 좀 있나보죠?”
“병적이긴 하지만 문제가 있는 건가, 싶기도 하고. 그는 원래 저랬거든.”
생각해보니 이유가 아예 없는 건 아니네요.
죽음이 일상에서 사라지면 아니 죽음이 자연스럽게만 진행되면 ‘신’은 필요 없어질지도 모르니까요. 그는 가능한 많은 사람들을 불행에 빠뜨립니다.
그는 오늘 기분이 아주 좋습니다. 식사에 모두를 초대했어요. 질색할 때는 언제고 말이죠. 그는 식탁에 팔꿈치를 올리고 벼리를 빤히 쳐다봅니다. 블루베리와 꿀로 드레싱을 대신한 샐러드와 각종 치즈를 듬뿍 올린 치즈플레이트를 앞으로 쭈욱 밀면서요.
“왜 안 먹어?”
“먹고 있어요.”
“입맛에 안 맞니?”
“맛있어요.”
벼리는 그가 꽤 무서운 모양입니다. 눈치를 보다가 입에 털어 넣네요.
“체하겠어요. 알아서 먹게 내버려 두시죠.”
첫째 형이 능글맞게 웃으며 아버지 앞 접시에 베이컨으로 만든 사람고기를 올립니다.
“짜지 않으세요?”
“풍미가 진하고 괜찮은데?”
두 사람은 사람 좋은 웃음을 짓습니다.
오늘 요리는 넷째 형이 했어요. 그는 아주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솜씨 좋은 요리사이기도 하고 하드고어 애니메이션 제작자이기도 합니다. 그는 주로 이곳에서 벌어지는 일들로 만화를 만듭니다. 그가 만든 만화는 ‘절대로 검색해서는 안 될 검색어’로 유명세를 탔어요. 그의 말에 의하면 본인이 유아 교육용이라는데 도대체 어느 나라 유아가 전깃줄 때문에 목이 날아간다거나, 넘어졌는데 머리가 깨져서 뇌가 나오고, 줄에 걸렸다고 발목이 날아가고, 훌라후프가 몸을 관통하고 토막 내는 걸 볼지는 모르겠습니다.
“꽤 귀엽게 생긴 애구나.”
그가 벼리에게 호감을 보입니다. 재미난 소재를 발견할 때나 저런 말을 해요. 벼리의 그림자속에 사는 검은 늪 개구들이 살며시 눈을 뜹니다. 장지뱀 새끼 한 마리가 식탁보 아래로 기어들어갑니다.
“고맙습니다.”
“예의바른 아이구나.”
그가 큐빗이 박힌 머리끈을 건넵니다.
벼리는 식탁보 아래로 기어들어간 장지뱀 한 마리를 눈으로 쫓으면서 긴 머리를 뒤로 묶습니다.
바토리는 침을 꼴깍 삼키고요.
글라라는 포크를 무기처럼 손에 쥐고 있습니다.
둘째 형은 ‘고뇌의 배’를 싸움 끝에 살아남은 소년의 입에 넣고 손잡이를 잡고 돌립니다. 소녀의 입이 점점 벌어지네요.
“그만해요.”
벼리가 큰 소리로 말합니다. 깜짝 놀란 둘째 형이 손잡이를 돌리던 걸 멈추네요. 누렁이에게 밥을 주러가고 있던 넷째 형이 뒤돌아봅니다.
“뭐래?”
둘째 형은 손잡이를 마저 다 돌립니다. 소년은 입이 다 찢어져서 피를 흘리다가 쇼크가 왔는지 미동조차 없습니다. 내 아버지 하나님은 고기 한 접시를 깔끔히 다 비운다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납니다.
벽에는 채찍이 쫙 걸려있어요.
“누구도 이 방에서는 그만하라는 말을 해서는 안 돼.”
“버르장머리 없는 아이는 맞아야 철이 들죠.”
바토리가 웃음이 나오는 걸 꾹 참다가 한 마디 거드네요.
저는 벼리가 쫒다가 놓친 장지뱀 새끼 한 마리가 죽은 소년의 입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걸 가만히 지켜보고 있습니다.
채찍질 소리가 요란하네요. 식탁에 살점이 튀고 피가 튀어요. 내 아버지 하나님에게 이제 그만 좀 해요, 라고 말해봤자 소용없습니다. 그는 14세기 중엽의 채찍질 고행자들처럼 ‘유일한 구원 방법’은 교회가 정한 고해성사가 아니라 채찍질이라고 선언한 편지를 읽는 것이라고 말한 뒤 조용히 의자에 앉습니다.
다시, 죽은 소년의 입속으로 들어간 장지뱀 새끼에 대한 이야기를 할게요. 어떻게 이게 가능한지 모르겠지만 죽은 소년도 의자에 앉았습니다. 엉덩이에 꼬리가 달렸다는 것만 빼면 전과 달라진 게 없어 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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