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히 먹겠습니다.”
예의바르게도 감사기도를 드리네요. 내 아버지 하나님은 조금 놀란 눈치에요.
“뭐냐? 이게, 대체.”
호된 채찍질을 당한 벼리는 목 아래부터 발끝까지 온통 상처투성이인데 신음소리 한 번 내지 않습니다.
“아버지 저도 어떻게 된 건지 잘 몰라요.”
“네가 만들었는데 네가 모른다는 게 말이 돼?”
“글쎄요.”
아버지도 저에 대해서 잘 모르잖아요.
아버지를 만든 분들도 아버지가 뭘 할지 예측하지 못했던 것과 같은 거 아닐까요.
“갔다버려.”
둘째 형이 엉덩이에 꼬리가 생긴 소년의 목을 도끼로 내려칩니다. 그리고는 칼로 배를 갈라 내장을 끄집어내요. 피가 줄줄 새고 있지만 소년은 여전히 의자에 앉아 스테이크를 썰고 있습니다.
“재밌네.”
둘째 형이 머리가 잘린 소년의 다리를 묶고 옆으로 뉘어놓습니다.
머리가 잘린 소년이 발길질을 하고 버둥거리네요.
바토리가 입을 쓱 닦고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옷에 피가 좀 묻어서 기분이 언짢은 모양입니다.
“왜 그러는 거죠?”
벼리가 소리 나게 포크와 나이프를 테이블에 내려놓고 겁도 없이 묻습니다.
“뭐가?”
“몰라서 물어요?”
첫째 형은 소녀의 질문이 의아한 듯 고개를 갸우뚱 거리고요. 내 아버지 하나님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내쉽니다.
“저년한테서 그년 냄새가 나. 역겹고 불편한.”
“무슨 말씀이시죠?”
바토리와 함께 나가고 있던 셋째 형이 잠시 걸음을 멈추고 묻습니다.
“둔한 녀석들. 보면 모르겠냐? 막내가 뭘 만들어냈는지?”
“뭔데요?”
목이 잘린 소년의 두 발을 꽉 붙잡고 있던 둘째 형도 ‘벼리’가 누군지 궁금해진 모양입니다.
첫째 형은 코를 킁킁거리며 소녀의 몸에서 나는 냄새를 맡습니다.
“됐고. 쟤나 좀 갔다버려.”
내 아버지 하나님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납니다.
“앉아요.”
“응?”
그 누구도 아버지에게 명령을 내릴 수는 없어요. 어머니조차도 생전에 그렇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꿇으라면 꿇고 빌라면 빌고 때리면 맞았었죠.
“죄송해요. 제가 대신 사과드릴게요.”
아버지를 더 이상 화나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는 미쳐도 정말 단단히 미쳤어요. 그가 한 번 화나면 누구도 말릴 수 없습니다.
“너 내가 누군지는 알고이러니?”
“알아요. 아니까, 좋은 말로 할 때 앉아요. 죽여 버리기 전에.”
그가 다시 앉습니다.
우리는 매우 놀라서 입이 떡 벌어졌어요.
“너 미쳤구나.”
나는 그녀를 방으로 데려가려고 합니다만, 그녀가 거부하네요. 눈동자가 까만 찰흙 같네요. 검은 늪 개구리들에게 잡아먹히기라도 한 모양입니다. 그새 목이 잘린 소년 역시 검은 늪 개구리들의 먹잇감이 됐네요.
“미친년.”
“넌 아주 재수 없는 놈이야.”
“너 겁 대가리를 상실했구나. 감히 누구한테.”
첫째 형이 끼어들어보지만 소용이 없네요.
아버지는 지금 벼리의 목을 조르고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힘을 주면 그녀의 가녀린 목이 ‘뚝’부러지고 말겁니다.
“나를 죽인다고? 어떻게? 무슨 수로?”
“그건 지금부터 천천해 생각해 볼 일이구요.”
“맹랑한 년!”
그가 손가락에 힘을 풉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두려운 눈빛과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어요.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고 하던 그가 맞는지 의심스럽습니다.
“할 수 있으면 어디 한 번 해봐.”
“제가 못할 것 같나요?”
“아버지는 네가 하고 싶다고 해서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란다. 너는 아버지가 죽으라고 하면 죽고 살라고 하면 살고 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어.”
내내 근엄하고 엄숙한 표정으로 앉아있던 첫째 형이 말합니다.
“역겹고 불편하고 구역질나는 얼굴 좀 치워줄래요?”
“뭐?”
“대화중에 무례하게 끼어들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아버지가 웃습니다. 너무 황당하고 어이가 없어서겠죠. 그나저나 얼마 만에 듣는 그의 웃음소리인지 모르겠네요. 모두 겁에 질렸습니다. 벼리만 빼고요. 그녀는 고개를 빳빳하게 새우고 본인보다 몇 배는 더 큰 아버지를 당당하게 쳐다보다 조막만한 주먹을 움켜쥡니다. 정말 따귀라도 한 대 때릴 것 같은 험악한 분위기네요.
“너 정말 겁이 없구나.”
“잘못 한 게 없으니까요.”
“나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네 머릿속에 ‘죽음벌레’를 심어 넣을 수 있어. 그 녀석은 네 뇌를 야금야금 갉아 먹을 거야. 그런데 내가 왜 그렇게 안 하는 줄 아니?”
“알아야하나요?”
불편하고 숨 막히네요. 나는 벼리의 손을 잡아끕니다. 더 이상은 안 돼요. 그를 화나게 해서는 안 됩니다.
“네가 오늘 뭘 단단히 잘못 먹었나보다.”
나는 그녀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는 계속 웃고 있어요. 그의 웃음소리는 실성한 개 같습니다. 웃고 있다고 해야 할지, 짖고 있다고 해야 할지, 헷갈립니다.
다행히, 그는 쫒아오지 않습니다. 나는 벼리에게 왜 그런 거냐고 묻습니다. 그녀는 정신을 잃어요. 나는 그녀를 침대에 눕혀요. 그녀는 양손을 얼굴 밑에 대고 자고 있습니다. 새근새근 잘도 자네요.
커튼을 치려고 하고 창밖을 보니 비가 억수로 쏟아집니다. 도롱뇽 물고기 두꺼비 떼들과 함께 말이죠. 유리창에 쩍쩍 금이 가네요.
돌리가 담배 케이스에서 담배를 꺼내 지포라이터로 불을 붙여 줍니다.
“이곳은 거룩한 땅이 아니에요.”
“정신 나간 곳이긴 하지.”
“당분간 인간세계에서 지내는 건 어떨까요?”
“그럴 수 없다는 거 잘 알잖아.”
“어째서요?”
“정말 몰라서 물어?”
“아는데 다시 듣고 싶어서 물었어요.”
“내 아버지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은 곳에 오래 머물 수는 없어. 그랬다가는 정말 사단이 날 테니까.”
“그랬었던 적이 있나요?”
“그런 적은 없지. 한 번도 어겨본 적이 없으니까.”
시체를 처리해야 하는 검은 늪 개구리들이 땅속에서 기어 나오지 않습니다.
천둥번개가 치면 숲이 불타요.
나무껍질에 유독 기름이 많기 때문이죠.
상상해보세요.
비가 억수로 내리고 숲이 활활 불타는 광경을 말입니다.
‘가을 길’이라는 동요가 생각나네요.
빨갛게 빨갛게 물들었네, 빨갛게 빨갛게 물든 하늘. 트랄랄랄라 트랄랄랄라. 맞던가요?
동요를 부르고 있는데 벼리가 자고 일어나서 눈을 비비고 있네요.
“이제 좀 정신이 들어?”
“잘 잤어요.”
“내 말은 그 말이 아니잖아.”
“무슨 일이 있었나요?”
“하나도 기억이 안나?”
“다 기억나는데 별 일 아니라고요.”
“죽을 수도 있어.”
“죽으면 다시 만들어줘요.”
벼리는 점점 어머니를 닮아가는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모든 일을 쉽게 생각하고는 했어요. 긍정적인 건 좋지만 매사에 모든 일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건 버려야합니다. 이 세상에 어려운 일을 쉽게 극복하는 방법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아요.
“빈말이더라도 아버지를 죽이겠다고 말한 사람은 네가 처음이야. 생전에 어머니도 그렇게 말하지는 못했어.”
“빈말 아니에요.”
벼리는 싱크대 서랍에서 칼을 꺼내 감자를 깎습니다.
“갑자기 감자는 왜?”
“덩이가 먹고 싶다고 해서요.”
“응?”
검은 늪 개구리들이 일제히 입을 벌립니다.
그새 발밑 그림자 속에서 사는 검은 늪 개구리에게 이름을 붙여준 모양입니다. 내가 만들었지만 어째서 저런 게 가능한지 모르겠네요. 죽은 시체가 아닌 이상 관심도 없던 녀석들인데 말이죠.
“덩이가 사는 세상이 어떤 곳인지 모르죠?”
“죽지 않는 한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는 곳이야.”
“같이 가볼래요?”
모르겠어요. 내가 어째서 그녀의 말에 이끌려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인지. 그림자 속에 검은 계단이 있고 이 검은 계단을 꾸불꾸불 내려가 보니 가로등같이 환한 강기슭을 따라 선천적 유전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멀뚱히 서있습니다. 우리가 발을 딛자 샴쌍둥이 까마귀 들이 일제히 하늘을 날아올라요.
“안녕?”
“응? 누굴 보고 인사를 하는 거야?”
알비노 말이네요. 네브래스카의 백마목장에서 보던 겁니다. 바로 옆에 있었는데 지금까지 왜 몰랐던 걸까요? 크기가 작은 것도 아닌데.
“가자.”
“응?”
알비노 말 등에 올라탄 벼리가 손을 내밉니다. 은근슬쩍 말을 놓는데 기분이 나쁘지는 않네요. 어디론가 쏜살같이 달려갑니다. 흰 정장을 빼입은 검은 늪 개구리들이 손을 흔드네요. 개구리들 주제에 사람마냥.
“어디로 가는 거야?”
“곧 도착해요.”
곧 도착한다고 한지 한 시간 반이 지났어요.
엉덩이가 너무 아픕니다. 엉덩이에 진물이 날 정도에요. 허벅지에서도 붉게 뭔가 올라오고 있습니다. 나는 통증이 뭔지 모르는데 이거 참 이상한 일이네요. 한 참을 달리던 말이 공장굴뚝이 보이는 언덕배기에서 거칠게 숨을 몰아쉽니다. 안개가 자욱합니다. 안개 속에는 바늘이 뾰족하게 돋아난 물고기들이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서로에게 뱉은 가시 돋은 말들이 물고기가 된 거라고 하네요. 살은 별로 없고 새하얀 가시만 많습니다.
“가시에 찔리지 않도록 주의하세요.”
“주의한다고 될 게 아니잖아?”
가시에 찔려 아파죽겠는데 벼리는 천하태평이네요.
게다가 어떤 이유에서인지 물고기들이 저한테만 몰려드는 것 같습니다.
정말 짜증납니다.
“시발 진짜 좆같아서.”
“여기서 욕을 하면 안 돼요.”
입 밖으로 나온 소리가 동그랗게 뭉쳐집니다. 포도 알 같네요.
“이게 뭐지?”
“가시 안개, 알이에요.”
“가시 안개?”
가시 안개 알들이 꿈틀대더니 치어가 나옵니다. 뼈는 말랑말랑 해 보이는데 색깔이 화려합니다.
“저 애들은 가시 끝에 독이 있어요.”
“찔리면 어떻게 되는데?”
“하루 종일 가렵죠.”
“별거 아니네.”
별거 아닌 게 아니었습니다. 한 번 찔리니 온몸이 다 가려워서 한발 짝도 움직일 수가 없어요.
“치료제는 없나? 이거 참 긁지 않고는 못 베기겠어.”
자꾸 긁다보니 벌겋게 부어오른 부위의 범위가 늘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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