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타로의 집 거실(밤)
(소파에 앉아있는 타로. 문을 열고 남자황제가 나온다.)
타로: 잠이 안와?
남자황제: (걸음을 멈추며) 밖이 시끄러워서. 아무래도 무슨 일이 생긴 모양인데.
타로: 사람들이 많이 죽은 모양이야.
남자황제: 그래? 무슨 일로? 전쟁이라도 났나?
타로: 인질극을 벌였다는군.
남자황제: 테러?
타로: 생각보다 담담하군. (남자황제, 소파에 앉는다. 타로의 얼굴이 어둠 속에 빛난다.)
남자황제: 죽은 사람들은 질리도록 많이 봐왔으니까. 너는 어때?
타로: 슬퍼.
남자황제: 사람들이 죽어서?
타로: 아무렇지도 않아서 슬퍼. (헛기침하며) 기억나?
남자황제: 응?
타로: 그들이 카다이르를 산채로 불태워 죽였을 때 말이야. 우리는 필사적으로 싸우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도망쳤잖아.
남자황제: 그건 싸운 게 아니야. 학살 당한거지. 쇠 화살이 수천 개가 흩뿌려진 거리를 생각해봐. 머리가 몸에서 떨어져 나가고, 살점이 튀어서 뒹구는 거리를...누구의 것인지 모를 피로 채워진 웅덩이를...
타로: (텔레비전을 켜며) 나는 이제 그만 도망가고 싶어.
남자황제: (헛기침하며) 그게 전부가 아니잖아. 더욱이 여기서는...
(천천히 일어나 창문 쪽으로 향하는 남자황제)
46. 불 꺼진 바타클랑 극장
(비명과 울음소리로 가득하다. 공연장 밖으로 계속 빠져나오는 사람들, 몇몇은 바닥에 주저앉아 있다. 사이렌소리 들린다. 구급차의 헤드라이트가 도망치듯 걷고 있는 매달린 남자를 훑고 지나간다. 매달린 남자, 들것에 실려 나오는 사람들, 사람들을 통제하고 있는 경찰들, 사건을 보도하는 기자들을 뒤로한 채 어디론가 향하는 매달린 남자, 긴장한 채 어두운 골목을 노려본다.)
47. 완전히 부서진 골목(환상)
(회색연기가 하늘을 덮고 있다. 완전히 부서진 집에서 어린 팔레스타인 소년이 혼자 빵을 먹고 있다. 뒤에 매달린 남자의 모습이 보인다.)
소년의 목소리: 거기서 뭐하고 있어?
매달린 남자의 목소리: 너는 뭘 하고 있는데?
소년: 널 따라왔잖아.
매달린 남자: 날 쫒아왔다면서 너는 어째서 아직도 그곳에 있지?
소년: (대답은 하지 않고 뒤돌아본다.) 응? 무슨 소리지?
매달린 남자: 응?
소년: 사이렌소리 말이야.
매달린 남자: (뒤돌아본다. 구급차가 지나간다.) 바타클랑 극장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죽었어. 내가 그런 건 아니고.
소년: (덤덤하게) 다친 데는 없어?
매달린 남자: 나? 나는 괜찮아. 내가 운이 좀 좋은 편이잖아. 지금까지는.
소년: 그래? 나는 오늘이 최악이었는데.
매달린 남자: 집을 잃었구나.
소년: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야. 사실은 오늘이 내 생일이거든. 그런데 보시다시피 이렇게 됐어.
매달린 남자: 안됐구나. 생일이야 뭐 또 돌아오니까, 너무 낙담하거나 하지는 마. 거기는 원래 그렇잖아?
소년: 원래 그런 게 어디 있어? (절반 정도 먹은 빵을 바지 앞주머니에 넣으며) 나대신 바타클랑 극장 앞에 추모 꽃과 쪽지를 놓아 줘. 내가 직접 하고 싶지만 여기에는 꽃이 없어.
매달린 남자: 뭐라고 쓸까?
소년: “우리는 모두 같다.”라고 써줘.
매달린 남자: 바타클랑 극장 소유주가 누군지나 알고 하는 소리야?
소년: 누군데? 유대인이라도 되나? 그런데 그러면 또 뭐 어때?
매달린 남자: 정말 그렇게 생각해?
소년: 가족을 잃었잖아.
매달린 남자: 아니 내 말은 정말 “우리는 모두 같다”고 생각 하냐고.
소년: (걸음을 멈추며) 뭐가 달라?
(다시 걷는 소년)
매달린 남자: (소년을 잡는다) 네가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건 ‘이스라엘 국경경비대 지원 모금 행사’에 대해서 모르기 때문이야. 바타클랑 극장에서는...
소년: (잰 걸음으로 다시 걸으며) 이스라엘 국경경비대가 바타클랑 극장에서 샹송을 부른 것도 아니잖아. 그들은 우리 일과 아무 관련이 없어. (폭격으로 부서진 폐허를 빙 둘러보며) 그들은 우리처럼 살아 있었을 뿐이야.
매달린 남자: (걸어가며) 네가 아는 게 전부가 아니야.
소년: 네가 아는 건 나도 알아.
(두 사람 길 한가운데에 우뚝 선다.)
매달린 남자: 나는 이 일과 관련이 없어.
소년: 우리는 다른 일과 관련을 맺게 될 거야.
매달린 남자: 나는 변했어. 더 이상 네가 아는 내가 아니야.
소년: 그래? 그럼 난 널 뭐라고 불러야 하는데? 테러리스트? (혼자 가버리는 소년)
(환상은 끝나고 매달린 남자, 말없이 혼자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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