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분리장벽
(카르멜이 쾅 닫고 나간 문이 스르륵 열린다. 타로 조금 열린 문을 닫는다.)
분리장벽에 구멍을 내서 밖으로 나오는 사람들. 세계, 한쪽 팔로 망치를 든 채 주변을 둘러본다. 태양, 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 넣고 카메라를 들이대는 기자를 본다.
타로의 목소리: 높이가 5-8미터에 이르고, 총연장이 730km나 되는 분리장벽이 도시전체를 감싸고 있어.
기자: 내 생각에 병원을 가려거든 체크포인트로 돌아가는 편이 낫지 싶은데?
세계: 몰라서 물어?
태양: 녹색카드를 가진 사람들은 서안지구를 벗어 날 수 없어. 병원도 가야하고 일도 해야 하고 먹을 것도 필요한데.
기자: (웃으며) 죽기에 딱 좋은 날씨군.
세계: (웃으며) 죽기에 좋은 날씨가 따로 있나?
태양: 우리가 죽었으면 좋겠어?
기자: (기침한다.) 내가? 아니. 음. 내 말은 불길한 기운이 감도니 조심하라는 거지. 나는 너희들처럼 객기를 부리다가-아니다. 아니야. 말이 씨가 되니 하지 말아야지.
태양: 그래?
세계: (망치를 손에 쥔 채 기자를 보면서)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는 법이야.
태양: (웃으며) 엄청나게 큰 열매를 먹게 되겠군.
기자: 내 혀는 세계인들의 것이지.
태양: 그러세요?
기자: 응.
태양: 내 혀는 내 몸에 붙어 있어서 ‘살고 싶다.’라는 말 빼고는 안 나오는데. 그런데 그거 알아? (장벽을 따라 걸어가며) 너나 나나 여기서 나갈 수 없다는 거.
기자: 몸은 그렇지.
세계: 마음도 그래. 네가 이곳에 있든 유럽에 있든 간에 ‘녹색카드’는 늘 네 목에 매달려 있을 걸?
기자: 난 지난달 30일 ‘위대한 귀환’ 시위 현장에 있었어. 'PRESS'(언론)라는 문구가 적힌 방탄조끼를 입고 이스라엘군 총에 맞은 아인미디어 소속 기자의 얼굴을 찍었어.
세계: 난 인디파다 때 전차에 돌을 던졌다가 팔이 부러졌지. 이스라엘 군이 팔을 부러뜨리기 전에 내게 말했어. 다음에는 목을 부러뜨리겠다고.
태양: 나는 문짝을 부수고 한밤중에 쳐들어오는 이스라엘 놈들에게 이렇게 소리쳤어. 잠 좀 자자.
기자: 진짜?
태양: 속으로 말이야.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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