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불 꺼진 바타클랑 극장
(비명과 울음소리로 가득하다. 공연장 밖으로 계속 빠져나오는 사람들, 몇몇은 바닥에 주저앉아 있다. 사이렌소리 들린다. 구급차의 헤드라이트가 도망치듯 걷고 있는 매달린 남자를 훑고 지나간다. 매달린 남자, 들것에 실려 나오는 사람들, 사람들을 통제하고 있는 경찰들, 사건을 보도하는 기자들을 뒤로한 채 어디론가 향하는 매달린 남자, 긴장한 채 어두운 골목을 노려본다.)
47. 완전히 부서진 골목(환상)
(회색연기가 하늘을 덮고 있다. 완전히 부서진 집에서 어린 팔레스타인 소년이 혼자 빵을 먹고 있다. 뒤에 매달린 남자의 모습이 보인다.)
소년의 목소리: 거기서 뭐하고 있어?
매달린 남자의 목소리: 너는 뭘 하고 있는데?
소년: 널 따라왔잖아.
매달린 남자: 날 쫒아왔다면서 너는 어째서 아직도 그곳에 있지?
소년: (대답은 하지 않고 뒤돌아본다.) 응? 무슨 소리지?
매달린 남자: 응?
소년: 사이렌소리 말이야.
매달린 남자: (뒤돌아본다. 구급차가 지나간다.) 바타클랑 극장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죽었어. 내가 그런 건 아니고.
소년: (덤덤하게) 다친 데는 없어?
매달린 남자: 나? 나는 괜찮아. 내가 운이 좀 좋은 편이잖아. 지금까지는.
소년: 그래? 나는 오늘이 최악이었는데.
매달린 남자: 집을 잃었구나.
소년: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야. 사실은 오늘이 내 생일이거든. 그런데 보시다시피 이렇게 됐어.
매달린 남자: 안됐구나. 생일이야 뭐 또 돌아오니까, 너무 낙담하거나 하지는 마. 거기는 원래 그렇잖아?
소년: 원래 그런 게 어디 있어? (절반 정도 먹은 빵을 바지 앞주머니에 넣으며) 나대신 바타클랑 극장 앞에 추모 꽃과 쪽지를 놓아 줘. 내가 직접 하고 싶지만 여기에는 꽃이 없어.
매달린 남자: 뭐라고 쓸까?
소년: “우리는 모두 같다.”라고 써줘.
매달린 남자: 바타클랑 극장 소유주가 누군지나 알고 하는 소리야?
소년: 누군데? 유대인이라도 되나? 그런데 그러면 또 뭐 어때?
매달린 남자: 정말 그렇게 생각해?
소년: 가족을 잃었잖아.
매달린 남자: 아니 내 말은 정말 “우리는 모두 같다”고 생각 하냐고.
소년: (걸음을 멈추며) 뭐가 달라?
(다시 걷는 소년)
매달린 남자: (소년을 잡는다) 네가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건 ‘이스라엘 국경경비대 지원 모금 행사’에 대해서 모르기 때문이야. 바타클랑 극장에서는...
소년: (잰 걸음으로 다시 걸으며) 이스라엘 국경경비대가 바타클랑 극장에서 샹송을 부른 것도 아니잖아. 그들은 우리 일과 아무 관련이 없어. (폭격으로 부서진 폐허를 빙 둘러보며) 그들은 우리처럼 살아 있었을 뿐이야.
매달린 남자: (걸어가며) 네가 아는 게 전부가 아니야.
소년: 네가 아는 건 나도 알아.
(두 사람 길 한가운데에 우뚝 선다.)
매달린 남자: 나는 이 일과 관련이 없어.
소년: 우리는 다른 일과 관련을 맺게 될 거야.
매달린 남자: 나는 변했어. 더 이상 네가 아는 내가 아니야.
소년: 그래? 그럼 난 널 뭐라고 불러야 하는데? 테러리스트? (혼자 가버리는 소년)
(환상은 끝나고 매달린 남자, 말없이 혼자 서있다.)
48. 길거리
(남자황제, 창문을 연다. 매달린 남자가 창밖에 서있다.)
남자황제: (계속 창밖을 내려다보다 입을 연다.) 저 사람 말이야. 아까부터 저기 계속 서있는데, 좀 꺼림칙하군.
타로: 창문을 닫아. 그러면 다 해결 돼.
남자황제: 널 찾는 것 같은데?
타로: 보나마나 동네 애들이겠지. 신경 쓰지 마.
남자황제: 음. 아무래도 나가봐야겠어.
타로: 경고하는데 오늘은 밖에 나가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남자황제: (창문을 닫다 말고) 음.
타로: 나가봤자 ‘테러리스트’소리나 들을 걸? "알라후 아크바르(Allahu Akbar)"라고 외칠 게 아니라면 조용해 질 때까지 가만히-.
(매달린 남자, 사라지고 없다. 남자황제, 매달린 남자가 서있던 가로등 아래를 슬쩍 쳐다보다 문을 창문을 닫는다.)
남자황제: (정색하며) 알라는 살인을 좋아하지 않아.
타로: ‘이유 없는’이 빠졌군.
남자황제: 너는 네가 우리 고향에 장벽을 친 유대인처럼 말하고 있다는 거 모르지? (소파에 앉아 길게 심호흡을 내뱉는다.) 방금한 말은 취소할게. 미안해.
타로: 미안해 할 거 없어. 그렇게 생각하는 건 네 자유니까. 딱히 틀린 말도 아니고. 그런데 우리가 틀리지 않기 위해 살 수 있는 게 아니잖아.
(방으로 들어가서 불을 끈다.)
타로: 으음, 난 말이야. 이스라엘군의 폭격이 마을전체를 휩쓸었을 때 죽은 것처럼 꼼짝 않고 있었어. 그리고 놈들이 재장전을 위해 아니 또 다른 표적을 찾기 위해 폭격을 멈출 때마다 아주 조금씩 기어서 문을 향해 기어갔어. 손이 닿을 거리에 문이 있기를 바라면서. 그때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아?
남자황제: 문이 좀 멀다고 생각했나?
타로: 다리를 두고 몸만 질질 끌고 왔다는 생각이 들더군. 생각보다 몸이 가벼워서.
남자황제: 그렇군.
타로: 그래.
남자황제: 그래서?
타로: 내 이야기는 이게 끝이야.
(창밖에서는 사이렌소리가 들린다. 남자황제 복잡한 표정으로 텔레비전을 본다. 강렬한 헤비메탈 음악 도중에 폭죽이 터지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린다. 드럼 연주자가 그대로 쓰러진다. 왼쪽의 기타리스트는 도망을 가지만 무대 중앙의 기타리스트는 영문을 모른 채 서있다. 한 여성은 극장 뒤편 3층 높이 창문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다. 창문 안쪽에서 몸을 피하고 있던 한 남성이 여성의 팔을 잡아서 끌어 올린다.)
49. 뉴스 (며칠 뒤, 레퓌블리크 광장)
(타로가 텔레비전 뉴스를 보고 있다. 파리 레퓌블리크 광장에서 신원미상의 무슬림 남성이 스카프로 눈을 가린 채 “저는 무슬림입니다. 사람들은 제게 테러리스트라고 말해요. 저는 당신을 믿습니다. 당신도 저를 믿나요. 그렇다면 저를 안아 주세요.”라고 적은 종이를 발아래에 두고 시민들과 프리허그를 하고 있다. 채널을 돌린다. 길에서 10대 무슬림 여성청소년을 위협하는 남자를 프랑스 시민들이 쫒아낸다. 채널을 돌린다. 추모행사를 하고 있는 바타클랑 극장-채널을 돌린다. 길을 걷다가 폭죽소리에 놀라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가는 프랑스 시민들...)
타로 목소리: (울고 있는 카르멜을 보며) 마음이 아파서 우는 거니? 무서워서 우는 거니?
카르멜 목소리: 둘 다요.
타로 목소리: 나는 네가 저들을 위해서 울지 않았으면 좋겠다.
카르멜 목소리: 무슨 말이죠?
타로 목소리: 그 애 때문이니? 네가 프랑스인이라고 생각해?
카르멜 목소리: 사람이 죽었어요. 그런데 어째서 아버지는 그렇게 덤덤한 표정으로 내게 그런 말을 하죠?
타로 목소리: (텔레비전 볼륨을 줄인다.) 사랑했니?
카르멜 목소리: 사랑했어요.
타로 목소리: 안됐구나. (텔레비전을 끈다.) 혹시 둘이 잤니? 피임은 했어?
카르멜 목소리: 그 애는 죽었어요. 그런데 그런 질문을 하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타로 목소리: 나한테는 중요한 문제야.
(긴 침묵)
타로 목소리: 첫 남자였어? 그래서 잊을 수가 없는 거야? 세상에 남자들은 많아.
카르멜 목소리: 육체적으로 같이 한 건 아니지만 정신적으로 우리는 함께였어요.
타로 목소리: 다행이군.
(카르멜,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문을 쾅 닫고 나가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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