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프랑스테러 1주년 추모행사가 열리는 파리 시내 곳곳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과 안 이달고 파리시장이 바타클랑, 국립축구경기장 스타드 프랑스 카페 식당 등 파리테러 현장에서 희생자 이름이 적힌 추모 명판을 제막한다. 스팅의 추모공연이 있는 바타클랑 극장 앞에 줄을 선 매달린 남자와 연인, 맨 뒷줄에 꽃을 들고 서있는 카르멜을 본다.)
매달린 남자: 적을 향해 앞으로 뛰는 건 자살행위야. 자리를 양보해 주고 싶군.
연인: (한숨 쉬며) 무슨 소리야? 그게. (속삭이며) 약했어?
매달린 남자: 아니. 전혀. 앞으로 나는 잘해보고 싶거든.
연인: 아 그래? 고맙군. 그러니까 이제 제발 그만 좀 이상해질래?
매달린 남자: 칭찬인가?
연인: 칭찬받고 싶을 나이는 지났잖아.
매달린 남자: 내, 내 생각에 스팅은 첫 번째 곡으로 ‘프래자일(Fragile).’이나 ‘병 속의 메시지(Message in A Bottle)’를 열창할 거야. (속삭이며) 칭찬 없이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해. 내가 맞추면 칭찬 좀 해줄래?
연인: 맞추지 않아도 칭찬해 줄게.
매달린 남자: 그건 아니지. 그건 아니야. (핸드폰 벨이 울린다. 핸드폰을 드는 카르멜. 카르멜이 신경이 쓰이는지 계속 뒤돌아본다. 속삭이며) 아무 때나 하는 건 칭찬이 아니야. 아, 아, 응? 아냐. 근데- 무슨 일이지? 무슨 나쁜 일이 생긴 모양이야. 여기에 있을 이유가 없을 텐데. 스팅을 좋아하나? 뭐 하긴 여기서 나고 자랐으니까. 우리하고는 좀 다를 수 있지.
(핸드폰을 끊은 카르멜. 연인은 매달린 남자의 상태가 걱정 되는 듯 그를 계속 쳐다보고 있다.)
52. 바타클랑 극장, 객석
(뭔가 마음이 복잡해 보이는 매달린 남자. 연인에게 귓속말을 한다.)
매달린 남자: 우리를 불편해 하는 것 같지 않아?
연인: 끌세. 나는 잘 모르겠는데.
매달린 남자: 저기 좀 봐, 저기 저 남자가 우리를 자꾸 힐끔거리며 바라보잖아. (마주보는 두 사람. 연인, 한숨을 내쉰다.) 나,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거야?
연인: 글쎄.
매달린 남자: 사람들이 우리를 감시하고 있어.
연인: 뭐?
매달린 남자: 망루를 설치해놓고 조명등을 비추면서.
연인: (한숨을 내쉬며) 세상에.
매달린 남자: -이토록 아름다운 도시에서 테러리스트가 살고 있다니!
연인: 목소리 좀 낮춰! 왜 이래?
매달린 남자: (머리를 흔들며) 사람들은 거대한 장벽을 쌓고 있어. 선택은 하나야. 죽느냐, 죽이느냐.
(연인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다. 그때 스팅이 무대 위에 선다.)
스팅: 바타클랑 재개장 첫 공연을 하면서 우리에게는 조화시켜야 할 두 가지 중요한 과제가 있습니다. 하나는 1년 전 테러로 목숨을 잃은 이들을 기억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이 역사적인 공연장이 상징하는 삶과 음악을 기리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숨진 이들의 삶을 긍정하는 정신과 기억을 존중하기를 희망합니다. 그들을 잊지 않겠습니다.
(1분간의 추모. 어딘가 좀 불편해 보이는 매달린 남자.)
연인: 불편해?
매달린 남자: 머리가 좀 어지러워. 감기 기운이 좀 있나봐.
연인: (스팅, 노래를 부른다. 큰 소리로) 많이 안 좋아? 그냥 집에 갈래?
매달린 남자: 괜찮아. 잠깐이면 돼. 괜찮아질 거야. 약을 좀 줄래? (연인이 가방에서 약을 찾는 동안 매달린 남자는 주변을 둘러본다. 연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우리에게 돌아갈 집이 있었으면 좋겠어. 네 어깨는 잘게 부순 숯 같아. 그래서 이렇게 기대고 있으면 고향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고통스럽고 황망하지만 모른 척 덮고 지나갈 수가 없거든. 무슨 말인지 알아?
연인: 그래.
매달린 남자: 정말? 내가 전에 말했던가? 아, 아니면...
연인: 썩 마음에 들지 않은 표현이지만 사랑한다는 말이잖아. 결국. 집에 가자. 스팅의 노래는 훌륭하지만 다음에 듣는 게 좋겠어.
매달린 남자: 죽고 싶어. 그날 이후 단 하루도 편히 쉬어본적이 없어. 도와줄래?
연인: 약 먹을래?
(그에게 약을 건네준다.)
매달린 남자: (약을 입에 물며) 이게 뭐야? 엑스터시?
연인: 엑스터시는 무슨. 페니실린이니까. 안심하고 먹어. 물도 좀 줄까?
매달린 남자: 아니야. 됐어. 그냥 먹어도 알딸딸하니 좋네. 그런데 우리 이래도 되는 거야?
연인: (주변을 둘러보며, 다들, 음악에 술에 취해있다.) 안 될 건 또 뭐야?
매달린 남자: 뭐, 그렇긴 하지. 그런데 좀 어지럽군. 화장실이 어디있지?
연인: 화장실?
매달린 남자: (의자에서 일어나며, 쓰러질 듯이) 저기던가?
연인: (부축하며) 같이 가.
매달린 남자: (객석을 지나 복도로 나오며) 이거 좀 독한데?
연인: 괜찮아?
매달린 남자: 크, 큰일났네. 자, 잠깐만.
(매달린 남자 화장실을 찾다가 토를 한다. 연인이 그의 등을 두드린다.)
연인: 집에 가자.
매달린 남자: 그래, 이거 그런데 해열제 맞아?
연인: 그래.
매달린 남자: 그런데 왜 이렇게 어지럽지.
연인: 피곤해서 그런 거야. 좀 쉬어. 이번 달 내내 밖에 있을 때가 많았잖아. 어딜 그렇게 자주 갔다 온 거야?
매달린 남자: 아직 나는 죽지 못하겠으니까, 죽이러 다녔지. 그래서 그런 거야.
(벽을 짚고 걷는다.)
연인: (주변을 둘러보다) 취했어? 그러게 왜 그렇게 많이 마셔.
매달린 남자: 내 말 못 믿는 모양인데. 그거 알아? 있잖아. 사람들이 무서워하는 그거-
연인: 알아. 아니까, 그만 말해.
(화장실로 들어가는 매달린 남자, 지켜보는 연인)
53. 화장실 좌변기
(연인 좌변기에 토를 하고 있는 매달린 남자를 바라본다. 매달린 남자, 그녀의 팔을 끌어당기고 연인은 화가 난 표정이다.)
연인: 그만 좀 해. 너만 힘든 거 아니야. 지겨워. 이제.
매달린 남자: 시작도 안 했는데 지겨워지는 게임도 있나?
연인: 결과가 뻔한 게임은 지겹지.
매달린 남자: 모든 카드를 뒤집어보면 알 수 있겠지. 그, 그건 말이야. 내가 우리가 모두 함께 모여 있었을 때 내가 했던 것과 같아. (취했다.) 나는 카드를 섞고 순서대로 혹은 임의로 골라서. 앞면이나 뒷면을 보이게 하면서. 질문자의 참여를 유도하는 거야. 모두 펼쳐놓고 카드간의 관계를 고려하면서...한 장씩 펼치면서 앞으로 올 것을 모른 채 상황을 한정지으면서...현재 상황과 연계 지으면서...주어진 의미를, 책, 책자에 수록된 단어와 그림이 가진 상징들...이런 것들을 질문자의 태도와 처한 상황과 마음가짐 등도 고려해보면서...질문자가 도달해야할 결론을 말해주는 거야. 물론 일부러 다른 결론을 말해 줄 수도 있겠지. (좌변기 물을 내리려다 미끄러진다) 질문자를 위해서 혹은 약 올리기 위해서.
연인: (웃는다.) 취했어. 당신. 차라리 계속 이랬으면 좋겠네.
매달린 남자: (횡설수설) 그거 좋지. 하루 온종일 해롱해롱 거리면서 네가 술보다 더 좋아. 섹스가 술보다 더 좋아. 죽이는 것보다 죽는 게 더 좋아. 정상적인 시오니스트를 만날 확률 이야기를 하면서 술을 깨는 거야. 아이가 있으니 쏘지 말라고 하면서 말이야.
연인: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서 있다가) 좋아요. 좋아.
매달린 남자: 둘 보다는 셋이 재밌지 않아? 어때, 그렇지 않아?
연인: 그래, 뭐. 나쁘지 않지.
(키스하는 두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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