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베들레헴 서쪽 어느 집
(태양은 부서진 집 잔해 위에 앉아있고 태양 옆에 시계, 뒤에는 기자가 앉아있다. 기자는 카메라렌즈에 눈을 갖다 대고 부서진 건물 잔해 뒤편에 멀리 떨어져 있는 유대인정착촌을 찍는다.)
기자: 야경이 참 아름답군. 안 그런가?
태양: 오랜만에 와봤는데 여전히 아름답군.
세계: 음, 뭐. 나쁘지 않네.
태양: 그런데 여기 계속 있어도 될지, 모르겠어.
기자: (웃으며) 그런데 너희들 일하러 온 거 맞아? 여기는 일하기에 썩 좋은 곳은 아닌 것 같은데.
세계: 안 그래도 몸이 좀 근질근질 하군.
태양: 좀 쉬었다 하고 싶은데 어쩔 수 없지. 너도 가만히 있지만 말고 일 좀 할래?
기자: 응?
세계: 우리 사진 쫌 찍어달라고.
기자: 음, 그래. (두 사람 뻣뻣하게 서있다.) 좀 웃을래?
태양: (어색하게 웃으며) 됐어?
세계: (어색하게 웃으며) 나비넥타이라도 매고 올 걸 그랬나?
기자: 삐뚤어진 고개나 좀 어떻게 해봐. (손짓을 하며) 고개를 왼쪽으로 살짝만 돌려봐. 그래, 그렇지. 아, 아니, 너무 돌렸잖아. (직접 포즈를 잡아주며) 이대로 가만히 좀 있어. (렌즈에서 눈을 떼며) 좀 웃지 그래?
태양: (동시에) 웃으면 바보 같지 않을까? (세계 입을 다문다) 아, 아니, 너 말고 나 말이야. 어때 보여?
세계: (동시에) 나는 좀 어때 보여? 사실 요 며칠 제대로 씻지도 못했거든.
기자: 둘 다 괜찮으니까. 가만히 좀 있어줄래? 하나, 둘...
55. 유대인정착촌
(태양, 세계, 기자가 유대인정착촌을 향해 걸어간다. 주변에는 올리브나무들이 자라있고, 나뭇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만 들려온다.)
기자: 이, 이봐. 저기, 저기... 어디까지 걸어갈 생각이야?
태양: (웃으며) 집에 가는 중이야. 저기 보이지? 저 집이 내가 살던 집이었어. 집을 너무 오래 비워뒀더니, 문제가 좀 생겼지만 가서 어떻게든 고쳐서 살아야지. 어쩌겠어? (세계, 웃는다)
기자: 죽을 생각이야?
태양: 죽일 생각이야. 내 집에 허락도 안 받고 사는 사람들을...
세계: 우리는 아주 좋은 계획을 갖고 있어.
기자: 어떤 아주 좋은 계획? 저기 집에서 자고 있는 사람들을 다 죽이고 너도 죽는 계획?
태양: (웃으며) 말로 끝낼 수 있으면 좋겠어. 종일 밖에 있었더니 피곤하거든.
세계: (기자를 보며) 너는 여기까지야. 여기서 우리가 집에 돌아가는 걸 찍어줘.
56. 타로의 집
(타로가 노트북을 보고 있고 여자교황은 창문 밖을 보고 있다. 하릴없이 거리를 서성이고 있는 카르멜이 핸드폰을 꺼낸다.)
타로: 유대인 정착촌에 살던 유대인들이 한 밤 중에 칼에 찔려 죽었다는군.
여자교황: (여전히 창밖을 보며) 강도라도 든 건가?
타로: 팔레스타인 사람 두 명이서 그랬데.
여자교황: (돌아보며) 왜 그런 거래?
타로: 알 수 없지. 그 둘도 이스라엘 군 총에 맞아 죽었으니까.
여자교황: 유대인들은 몇 명이나 죽었는데?
타로: 여섯? 여섯 반?
여자교황: 여섯이면 여섯이지. 여섯 반은 또 뭐래.
타로: 한 명은 위급하다던데...죽을지 살지 아직은 모르니까.
여자교황: 바보 같아.
타로: 더 많이 죽이지 못해서?
여자교황: 그보다 몇 배 더 많은 팔레스타인들이 죽을 거야.
타로: 지난주에 이스라엘 의회가 우리 땅에 불법적으로 세워진 정착촌을 합법화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데.
여자교황: 그래서? 그게 우리하고 무슨 상관인데?
타로: (노트북을 덮으며) 진심이야?
여자교황: 나도 마음이 안 좋아.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뭘 할 수 있겠어? 나는 한 명을 죽이면 백 명이 죽임을 당하는 게임 같은 거 하고 싶지가 않아! 그러니 당신도 그런 뉴스 좀 그만 봤으면 좋겠어. 우리가 그게 아니라고 해봤자,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저들은 테러리스트일 뿐이야. 한 밤 중에 집에 들어가 일가족을 죽인... 당신이 미국인이라면 저들을 뭐라고 부르겠어?
타로: (소리친다) 만약이라는 말은 그럴 때 쓰는 게 아니야! 남들이 뭐라고 부르든 신경 쓰지도 않고!
여자교황: 신경 좀 썼으면 좋겠어. 여보.
타로: 아니 진짜 당신까지 이러면 안 되잖아. 내 말이 틀려?
(핸드폰이 울린다. 여자교황 전화를 받지 않고 끊는다. 타로 무슨 말을 하려다 말고 노트북을 계속 쳐다본다. 가끔 프랑스 테러 추모 노래가 들린다.)
여자교황: (핸드폰을 손에 쥔 채 안방으로 걸어가며) 위험한 생각하지 마. 그들은 그들의 (막내가 문을 열고 나와 눈을 비비고 서있다.) 방식대로 했을 뿐이야. 그것도 결코 현명하지 않은 방식으로. 어렸을 때 우리를 괴롭히던 유대인들처럼.
타로: 이봐. 당신. (웃는다.) 당신은 당신이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어. 알고 있다고 믿겠지만 전혀 모르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게들 생각하니까.
(여자교황, 막내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뭔가 꺼림칙한 표정으로 타로를 슬쩍 쳐다보다 방으로 들어간다.)
타로: (닫힌 문을 보며) 날 가장 못살게 굴었던 사람은 당신이었지. 날 가장 행복하게 하는 사람도 당신이지만...
(창밖에 추모 노래가 점점 더 커지자, 웃기 시작하는 타로)
타로: 당신도 잘 알잖아. 불나방이 불을 끄려고 불에 뛰어들어 타죽는 건 아니라는 거. 우리는 의심할 바 없는 테러리스트야. 좋지는 않지만 어쩌겠어?
57. 길거리
(슬픈 표정의 카르멜, 초인종을 누르려다 말고 남자2와 인사를 나눈다.)
카르멜: 정말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마. 화가 난 사람들은 자신이 옳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많은 부정적인 논리를 개발해야 하는 법이고. (심호흡을 하며) 그리고 이런 시기에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판단한다는 건 사실 힘든 일이잖아.
남자2: 미안해. 내가 대신 사과할게. 테러리스트는 모두 무슬림이라니. 이게 대체 말이나 되는 소리겠어? 그것도 네 앞에서. 저들의 말대로라면 서독의 바더 마인호프와 이탈리아의 붉은 여단도무슬림이게?
카르멜: 괜찮다고 해도 그러네.
남자2: 사람들은 주로 눈에 잘 띄는 한 가지 요인에만 집중하고 나머지 하나는 무시하고……
카르멜: (말을 자르며) 없는 말을 하는 것도 아닌데 뭐.
남자2: 그렇게 생각하지 마.
카르멜: 잠재적 테러리스트는 이만 집에 들어가서 핵폭탄을 좀 만들어 볼 게. (초인종을 누르며) 오늘은 좀 쉬고 싶어. 다음에 봐.
남자2: (웃으며) 이만 가볼 게. 카날 플뤼스(지상파유료채널)에서 봐.
카르멜: (웃으며) 유료는 좀 싫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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