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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계 관행이 자초한 위기

사건사고

by 프로젝트빅라이프 2018. 12. 2.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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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5월 연극인들은 다양한 연극이 활성화되지 못한 데는 연극계의 편파성이나 줄서기 문제, 지원금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연극제작 관행 때문이라고 말한 바 있다. 안타깝게도 연극계 관행을 바꾸겠다 말한 당시 연극인들은 여전히 '입'만 살아있을 뿐  결과적으로 바꾼 건 아무것도 없다. 함꼐 하는 작업이라는 이유로 그들은 공공연히 극단 선후배, 학교 사제지간 등을 밀어주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그들은 연극계 성추행 파문이 있기 전 극단체제를 강화해야한다는 말로 '변화'가 아닌 '정체'를 이야기 한 바 있다. 문예위에 따르면 지난 25년간 공연이 18.8배가 늘었으며 단순 수치만을 보면 연극이 성장했다고 본다, 고 말하고 있으나 현실적이지 못한 이야기다. 공연은 배우도 작가도 연출가도 멱어 살리지 못하고 있다. 극소수의 배우, 작가, 연출가들이 밥벌이를 하고 있으나 그들의 공연은 전체를 먹여 살릴 만한 파괴력도 화제성도 전무한  실정이다. 25년간 영화관에서 상영한 영화개수, 25년간 연재된 만화 개수, 25년간 출판된 출판물로 '성장'을 이야기하는 건 누가봐도 공감이 안되는 우스운 소리다. 




공연계 성폭행으로 한동안 시끄러웠던 연극계에는 아직도 추잡한 소문이 끊이지를 않는다.  그리고 그들이 과연이 잘못된 관행을 바로 잡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그들은 전혀 반성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가족같은 분위기를 여전히 강조하고 있으며 개인성향을 억압하는 데 집단의 힘을 십 분 활용하고 있다. 연극계에서 거장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수십 년 동안 '작품을 뽑는 위치'에서 내려오지 않았으며 극단 사제, 선후배 관계를 위계의 연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게다가 위계를 활용하고 권력을 사용한 자들이 각종 지원금을 몇 번이고 타먹는 행태도 여전하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문화예술계 성폭력 사태와 관련한 분야별 신고상담 지원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나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위계 폭력은 성별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소수작품 몰아주기는 여전히 가능하며 특정 작품 지원에 대한 권한도 여전히 연극계 위기를 자초한 사람들이 손에 쥐고 있다.  블랙리스트를 훈장처럼 떠벌리는 자들 중에도 위계를 십 분 활용해 '성폭력'의 도구로 활용하거나 극단에서 작품을 쓰지 않는 한 작품발표를 할 수 없는 상황을 이용해 이득을 취하고 있다. 과연 그들이 블랙리스트를 만든 자들과 완전히 다른 부류라고 확신할 수 있나. 




실제로 성폭력으로 구속된 이윤택은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 쇼'의 인터뷰에서 블랙리스트 작성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누가 이렇게 했느냐, 왜 이런 말을 했느냐, 심판 받게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게다가 그들의 학벌주의는 여전히 굳건하다, 공정함을 이야기하면서 공공연히 고졸 연출가를 무시하거나 차별하고 있다. 그런 그들이 문체부 셀프 면죄부에 충격, 경악이라는 표현을 쓰는 걸 보면 실소가 나온다. 



연극계 공모는 이력기재와 학력기재가 필수다. 이론가가 아닌 창작자에게 실력과 창의력을 증명하는 요소로 학력을 요구하는 것은 부조화, 지만 그들은 객관적 계량적 평가가 어렵다며 '학력'을 '간판''삼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갈수록 연극을 하겠다는 사람이 줄어들고 있다면서도 그들이 손에 쥔 한 줌 권력은 놓지 못하고 있다. 같은 작품으로 다른 연출에게 맡겨 국가기금을 중복수혜하거나 심사위원과 극단 선후배 관계이거나 학교 사제 지간이거나 하는 일이 빈번하다. 물론 그들은 사전에 학생 작품을 보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모 작가는 공모당선 소감을 말하면서 심사위원인 모 대학 교수에게 작품을 보여주고 몇 번이고 피드백 받았다는 말한 바 있다.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은 공모심사를 하지 않는 것이 공정함의 척도 일 수 있으나 스스로 권위를 내려놓겠다고 말하거나 이를 실행에 옮기는 일을 들은 바 없다.









대학중심의 연극, 극단 중심의 연극은 실패했다. 극단 중심의 공연이 실패한 배경에 관련된 논문이나 기사는 외부환경에 그 원인을 찾고 있지만 '면피책'일 뿐이다. 공연성을 강조하고 연극성을 강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텅빈 객석 뿐인 '대가'들의 작품을 보자. 그런 그들의 제자, 그런 그들의 후배, 혹은 선배가 수십 년 했던 결과물이 항상 위기뿐인 대학로다. 이해 할 수 없지만 이해 해 보기로 하자. 연극의 3요소는 무대, 배우, 관객이지만 관객은 원래 없었던 장르이기에 지원금이라도 받아야 하지 않겠나. 관객이 없는 공연을 하는 사람들이 '공연성'을 이야기하거나 '연극성'을 이야기하거나 하는 모습이 우스워보이겠지만 이 또한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보자. 권위를 스스로 높이는데 그만한 말도 없지 않나. 블랙코미디가 따로 없지만 어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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