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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위에 안테나들 -막-

프로젝트빅라이프/지붕위에안테나들

by 프로젝트빅라이프 2018. 10. 29.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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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색지붕남자: (주변을 둘러보다가) 오늘은, 고슬고슬, 꾸룩꾸룩.

주황색지붕남자: (연기 속에서 드문드문) 오늘은 좀 맵다.

장독대옥상여자: (목소리만) 눈물 콧물 다 쏟았네.

초록색지붕남자: (연기 속에서 드문드문) 길을 잘못 들였어요.

초록색지붕여자: (목소리만) 다 타네요.

파란색지붕여자: (연기 속에서 드문드문) 구름위에 올라 탄 것 같아요,

주황색지붕남자: (목소리만) 가마솥도 구름도 새까맣게 다 탔다.

장독대옥상여자: (구름 속에서 드문드문) 가마솥에 볶은 구름들은 살짝 까맣고 노릇노릇 한 것 이 그 맛도 참 구수하네.

초록색지붕남자: (목소리만) 팔팔 끓네요. 끓어.

초록색지붕여자: (구름 속에서 드문드문) 소낙비가 내려요. 소낙비가 내리고 천둥번개가 치던 날에 텔레비전은 모두 꺼졌습니다. 축구는 누가 이겼을까요?

파란색지붕여자: (목소리만) 아침나절 쨍한 햇살을 봤었는데요. 갑자기 세상이 까매집니다. 빨 랫줄에 빨래를 제가 걷었던 가요? 비가 내리던 날에 빨랫줄에 빨래집게에는 빗방울이 송송 맺혀요. 싱그럽습니다만, 비에 젖은 옷은 또 안 그래요. 젖은 옷은 세탁기에 바로 넣고 돌리시구요. 다른 옷에 색이 번지지 않게 진한 색 옷은 따로 빼 놓고요. 호주머니에 든 게 없나 확인하는 것도 잊지 말아요.

 

기나긴 정적. 빨간색지붕남자 주변을 둘러본다. 연기와 함께 모두 사라진다. 대형캐리어 가방 하나 무대 한 가운데 덩그러니 놓여있다. *가방 비밀번호를 맞출 때는 화면에 비밀번호가 뜬다.

 

빨간색지붕남자: 누구나 양쪽 호주머니에 돌을 채워 넣고 다닙니다. (양쪽 호주머니를 뒤적이 자, 돌멩이들 우수수 떨어진다) 이제 좀 가볍네요.

 

기나긴 정적. 빨간색지붕남자 주변을 둘러보다 자세를 비스듬히 기울이고 돌을 던진다.

 

빨간색지붕남자: 이렇게 던진 돌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기 전에 수면 위로 몇 번이고 튀어요.

기나긴 정적. 빨간색지붕남자 주변을 한참 동안 둘러보다 자세를 비스듬히 기울이고 돌을 던지려다, 던지려다 말고.

 

빨간색지붕남자: 물수제비 세계대회에서 밝혀진 바에 의하면 돌이 수면으로 날아갈 때 입사각 이 20° 안팎이 되어야 이상적이라네요. 이 사실은 속도와 회전을 다르게 준다 고 해도 바뀌지 않습니다. (사이) 우크라이나에서는 물수제비를 개구리를 나 오게 하기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정적) 여기서는 뭐가 나올까요?

 

0~10세 성장기 아이가 꼭 들어야 할 생태체험 자연의 소리.

 

저수지바닥여자: (대형캐리어 가방 속에서) 나 좀 꺼내줘요.

빨간색지붕남자: 누구신데 거기 들어가 계세요?

저수지바닥여자: 누군지 묻지 말고 꺼내주기나 하세요.

빨간색지붕남자: 지퍼가 잠겼네요.

저수지바닥여자: 비밀번호 몰라요?

빨간색지붕남자: 제 가방도 아닌 걸요.

저수지바닥여자: 그래서요?

빨간색지붕남자: 그리고 나는 이제 좀 무서운 생각이 드네요.

저수지바닥여자: 어째서요?

빨간색지붕남자: 아무도 없는 한적한 저수지에 대형캐리어 가방이라, 게다가, 그 안에 사람이 들었다고 생각해 보세요. 무섭지 않겠어요?

저수지바닥여자: , , , , , 무섭기도 하시겠네요.

빨간색지붕남자: 제 말이 틀려요?

저수지바닥여자: 입장 바꿔 생각해보세요. 아저씨. 누가 더 무섭겠어요?

빨간색지붕남자: 입장을 왜 바꿔요.

저수지바닥여자: (짧은 침묵) 이제는 어깨가 아프고 몸이 으슬으슬 춥고 기운이 빠져서 말할 힘도 없어요.

빨간색지붕남자: 알았어요. 알았어. 제가 어떻게든 해볼 테니 조금만 더 견뎌보세요.

 

가방을 요리조리 살펴보다가 조금 큰 돌멩이를 집어 들고 몇 번이고 내리친다.

 

저수지바닥여자: 날 새겠네요.

빨간색지붕남자: 노력하고 있다고요.

저수지바닥여자: 젖 빨던 힘까지 다 내본 다음에 그런 말씀 하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빨간색지붕남자: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힘쓰고 있다고요.

저수지바닥여자: 검은 머리 파뿌리는 결혼식장에서나 잠시 쓰다 버리는 말이고요.

 

빨간색지붕남자 말없이 돌로 가방을 계속 내려친다. 저수지바닥여자 등 뒤에 서있다.

 

저수지바닥여자: 수고하시네요.

빨간색지붕남자: 별 말씀을.

저수지바닥여자: 그만 하면 됐어요.

빨간색지붕남자: 숨은 쉴 만해요?

저수지바닥여자: 덕분에 구멍이 숭숭 뚫렸네요.

빨간색지붕남자: (대형캐리어 가방을 찬찬히 훑어보다가) 미안해요.

저수지바닥여자: 미안하지 않게 잘했어야죠.

빨간색지붕남자: 많이 아파요?

저수지바닥여자: 뭐 그럭저럭 버틸 만 해요.

빨간색지붕남자: 어쩌다가 그 안에 들어가게 된 거에요?

저수지바닥여자: 어쩌다가 들어갔을 것 같은데요?

빨간색지붕남자: (머뭇거리다가) 혹시 제가 그런 건 아니죠?

저수지바닥여자: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데요?

빨간색지붕남자: 꿈을 꿨어요.

저수지바닥여자: 무슨 꿈을 꿨는데요?

빨간색지붕남자: 누군가를 죽이는 꿈을 꿨어요.

저수지바닥여자: 왜 죽였는데요?

빨간색지붕남자: 모르겠어요.

저수지바닥여자: 기분은 어땠어요?

빨간색지붕남자: 일상적이지는 않았습니다.

저수지바닥여자: 누군가를 죽이는 일이 일상적인 일은 아니죠.

빨간색지붕남자: (관객석을 보면서) 꿈속에서 사람을 죽이면 소원성취 만사형통이라고 하지 않 던가요?

저수지바닥여자: 그래서, 지금, 행운을 기대하고 있나요?

빨간색지붕남자: 모르겠어요. 꿈인지 생시인지.

저수지바닥여자: 제가 꼬집어 드릴까요?

빨간색지붕남자: ! 아파요. (뒤를 계속해서 돌아본다, 저수지 바닥여자는 늘 뒤에 있다)

저수지바닥여자: 생시인 것 같나요?

빨간색지붕남자: 모르겠어요.

저수지바닥여자: 모르면 알게 될 때까지 아프게 해줄까요? (뺨을 몇 번이고 세게 때린다)

빨간색지붕남자: 모르고 지내는 게 더 좋을 것 같네요.

저수지바닥여자: (침묵) 가방이나 열어요.

빨간색지붕남자: (비밀번호를 몇 번이고 돌려보다가) 머리 아파서 골이 다 빠져 나가는 것 같 습니다.

저수지바닥여자: 차분히 하나, 하나 해보세요.

빨간색지붕남자: (비밀번호를 몇 번이고 돌려보다가) 괜찮으세요?

저수지바닥여자: 제가 이, 가방, 안에서, , , 있는, 것이, 없는데, 괜찮지 않으면 어쩌겠어 요.

 

빨간색지붕남자, 비밀번호를 열심히 맞춰본다. 지루할 만큼 계속된다.

 

저수지바닥여자: 결혼은 하셨어요?

빨간색지붕남자: 결혼은 했었죠.

저수지바닥여자: 그럼 지금은 혼자에요?

빨간색지붕남자: .

저수지바닥여자: 좀 길게 말씀해주실 수는 없어요?

빨간색지붕남자: 말시키지 마요. 다 까먹겠습니다.

저수지바닥여자: 자식은요?

빨간색지붕남자: 있었어요.

저수지바닥여자: 그럼 지금은 없다는 소리에요?

빨간색지붕남자: 있었는데, 없어졌어요.

저수지바닥여자: 전처가 키우나보죠?

빨간색지붕남자: 전처가 키운다고 아들딸이 없는 게 되나요?

저수지바닥여자: 하긴 핏줄이 어딜 가겠어요.

 

정적.

 

빨간색지붕남자: 어딜 가긴 가더라고요.

 

정적.

 

빨간색지붕남자: 어딜 간 건지는 왜 안 물어봐요?

 

정적.

 

저수지바닥여자: 시시해요. 여기에 오는 사람들은 다들 똑같아서.

 

정적.

 

빨간색지붕남자: 그러는 댁은 왜 여기에 있는 겁니까?

저수지바닥여자: 이유가 있었는데 너무 오래 돼서 다 까먹었어요.

빨간색지붕남자: 가방 안에 얼마나 오래 있었는데요?

저수지바닥여자: 글쎄요. 어림잡아서 십년은 족히 넘었을걸요. 그 사이에 수많은 사람들이 왔 다 가고는 했어요. 사람들이 참 웃긴 게 죽는 순간에도 아니 죽어서도 생전에 두고 온 것들 걱정을 해요. 가스 불은 껐는지, 빨래는 걷었는지, 문단속은 하 고 나왔는지, 유언장 맞춤법이 틀리지는 않았는지, 방이 더럽다고 책 잡히는 건 아닌지, 잘못 살았다고 욕먹는 건 아닌지, 남긴 게 쥐뿔도 없다고 자식들 이 원망하지는 않을지……. 심지어 자주 가던 미용실, 슈퍼 아줌마 아저씨들 외롭겠다고 걱정하는 사람들까지 있다니까요. 웃기지 않아요?

빨간색지붕남자: (관객석을 바라보며) 어느 부분에서 웃어야 할까요?

저수지바닥여자: 웃으면 복이 와요. 웃으면서 좀 삽시다, . (섬뜩하게 웃는다)

빨간색지붕남자: (섬뜩하게 따라 웃다 말고) 제가 몇 번까지 돌렸었죠?

저수지바닥여자: 뭘요?

빨간색지붕남자: 가방비밀번호요.

저수지바닥여자: 그걸 왜 나한테 물어봐요. 정 모르겠으면 처음부터 다시 합시다.

 

빨간색지붕남자, 가방비밀번호를 ‘0000’으로 맞춘다. 딸깍, 딸깍, 거리는 소리 들린다.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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