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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위에 안테나들 -4화-

프로젝트빅라이프/지붕위에안테나들

by 프로젝트빅라이프 2018. 10. 29.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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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색지붕남자: 다들 그랬잖아요? 왜 저한테만 이러는 겁니까!

장독대옥상여자: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고 했어.

주황색지붕남자: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아닌가요?

장독대옥상여자: 엎어지나 뒤치나, 매한가지지 뭐.

파란색지붕여자: 우리는 죽음으로 갚았어요.

초록색지붕남자: 공평하게 죽이고 죽었지.

초록색지붕여자: 죽이지 않았다면 죽지 않았을까?

장독대옥상여자: 그랬어도 죽었겠지.

주황색지붕남자: 죽으려고 왔지, 살려고 온 건 아니니까! 다들 그렇지 않나?

빨간색지붕남자: 저는 바람이나 쐴까, 하고 왔어요.

장독대옥상여자: 다들 그래. 바람이나 쐬러 왔다고. 그러나 강바람은 차고 낙엽은 분분히, 사 람 마음을 들쑤셔.

초록색지붕여자: 그때 강물은 살던 집을 부수고 무덤 터를 다지고 있는 것 같아 보였었죠.

초록색지붕남자: 그때 숭어 떼들은 예쁘게도 수면위로 솟구쳐 올랐었어요. 그렇게나 많은 물 고기들이 잠겨 있었다니……그렇게나 많은 물고기들이 어떤 이유로 그렇게나 많은 숨을 한 번에 내 쉬는지, 신비하고 기이해서 한걸음 씩 뻐끔뻐끔 두 걸 음 씩 뻐금뻐금 세 걸음 씩 헉헉 콜록콜록.

주황색지붕남자: 그때 우리는 무덤을 만드는 무덤 새 같았을 거야.

장독대옥상여자: 알도 낳고?

주황색지붕남자: 여자도 아닌데 알을 어떻게 낳아요?

장독대옥상여자: 새도 아닌데 무덤은 어찌 만드나?

주황색지붕남자: 그거야.

장독대옥상여자: 내가 소시 적에 기르던 수탉은 알만 잘도 낳더라.

주황색지붕남자: 그건 노른자가 없는 무정란이에요.

장독대옥상여자: 진시황 때는 수탉의 알이 불로장생약이라 불렸다더라.

주황색지붕남자: (수탉이 횃대로 올라가 홰를 치며 큰소리로 울어대듯) 꼬꼬댁 꼬꼬. 꼬꼬댁 꼬꼬. 꼬꼬댁 꼬꼬…….

장독대옥상여자: 일 홰. 이 홰. 삼 홰. 사 홰…….

 

하늘에서 너무 예쁜 비눗방울이 송송 떨어진다. 등장인물들 입가에는 미소가 한가득. 저수지 바닥여자 혼자 심각하다. *저수지바닥 여자의 독백이 끝날 때까지 모두 정지한다.

 

저수지바닥여자: (독백) 무덤 새는 땅바닥에 구멍을 파고 알을 낳습니다. 그건 무덤이 아니라 둥지에요. 무덤 새는 암컷이 알을 낳으면 수컷은 알을 흙으로 덮습니다. 그것 은 묻히는 것이 아니라 따뜻하게 아랫목을 만들어주는 겁니다. 무덤 새가 바 라는 온도는 32도에서 33도 사이에요. 부패가 아니라 부화입니다. 무덤 새 수컷은 수시로 땅속에 자신의 부리를 찔러 넣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엄마아빠 가 우리를 목욕 시킬 때 하던 것과 같죠. 혹시나 우리 딸 우리 아들이 춥거나 뜨겁지는 않을지 온몸으로 몇 번이고 확인하던 그 모습 말이에요. 무덤 새는 다른 새들처럼 알을 품지 않습니다. 알을 부화시키는 건 어미의 체온이 아니 라 천천히 썩어 가고 있는 구멍 속에 잎이나 나뭇가지에요. 그렇게 7주가 지 나면 새끼들은 알을 깨고 흙을 뚫고 지상으로 올라옵니다. 그리고 알속에서 젖은 몸이 마르는 이틀 동안에 언덕은 활주로가 되요. 무덤은 그런 용도에요. 지붕도 마찬가지죠. 깃털은 새끼들이 사라진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만 수북 해요. (깃털 지붕위로 떨어진다, 지붕위를 올려다보며) 날개 없는 천사들이 참 많습니다. 그러나 나는 아니죠. 그래서 나는 좀 부끄럽습니다. 고작 물속에서 누군가의 발목이나 붙잡아야하는 신세니까요. (씩 웃으며) 제가 아귀힘이 좀 셉니다. 잘 잡고 잘 놓치지 않아요. 잘 잡히는 자리도 알고 있습니다. 잘 잡 히는 사람도 알고 있습니다. 잘 잡히는 계절도 알고 있습니다. (씩 웃으며) 나 는 물속으로 곧장 들어오지 않는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얕은 물에서 물을 첨 벙 거리며 노는 사람들에게는 늘 물 밖으로 나오라고 소리치는 사람이 꼭 있 는 법이거든요. 나는 말없이 물가에 서있거나 앉아있는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그네들은 하나같이 물속을 자세히 들여다보거든요. 점점 더 깊이 들여다보다 보면 주변은 쥐죽은 듯 고요해집니다. 그때가 되면 나는 은빛 철갑을 두르고 그네들 앞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제 자랑 같아서 이런 말은 안하려고 했지만 저를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성애와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따로 없다고 하 더군요. 아프로디테는 발목을 좋아해서 절름발이 헤파이스토스와 결혼을 했어 요. 아프로디테는 산모에요. 산 자를 위해 죽은 자들을 생산해내죠. 어떤 사 람들의 죽음은 어떤 사람들의 삶을 위해 활용됩니다. 물속으로 들어가지 말라 고 호루라기를 불고 고함을 쳐봤자 소용없어요. 죽을 사람은 다 죽게 되어 있 습니다. 살 사람은 무슨 짓을 해도 잘만 사는 것처럼 말이에요.

 

등장인물들 모두 느리게 계속 입을 벌렸다 닫는다. 빨간색지붕남자 혼자 괴로워한다.

 

파란색지붕여자: 여기는 사고다발지역입니다.

주황색지붕남자: 올해는 사망발생지역 스물다섯 곳을 집중 관리하여, 올해 사망자 수를 전년 대비 20%까지 감축할 계획입니다.

초록색지붕남자: 계획이었습니다.

초록색지붕여자: 계획이었습니다만, 짙은 안개와 거센 비바람 때문에 수많은 사상자를 내고 말았습니다.

주황색지붕남자: 시신은 찾지 못했습니다.

장독대옥상여자: 푸닥거리를 해야, 합니다.

초록색지붕남자: 닭은 동나고 없습니다.

장독대옥상여자: 잡귀를 쫓아야합니다.

초록색지붕여자: 되도록 원한을 버리고 근접하지 말고 멀리 가야합니다.

장독대옥상여자: 제물을 바가지에 담으십시오.

주황색지붕남자: (바가지를 들고 관객석을 돌며) 제물의 용도는 묻지 마시고 달고질 노래나 부 르십시오.

장독대옥상여자: 길가에 핀 이름 없는 꽃도 고개를 숙여 눈물짓네.

 

긴 상여소리. 잦은 상여소리. 구슬픈 가락 흩날리는. 북망산 가는 길. 비 주룩주룩 내린다. 등장인물 모두 우산을 펼친다.

 

저수지바닥여자: (노래) 비오는 날이면 날마다 달뜨는 밤이면 밤마다 한 시름 속에 살며. 평생 새겨온 한() 홀로 가슴에 묻고 가서 달구꾼 회다지 소리 빌어 무도 풀어 놓 고 훨훨 나비 날 듯 빠져나와 뜬구름 타며 실바람 타며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 리. 다시는 태어나지 않으리.

 

천둥번개가 친다. 우산들 모두 빨간색 지붕 아래 모인다. 비가 그친다. 모두 우산을 접는다.

 

빨간색지붕남자: (녹색 홍색 칠을 한 얼굴을 하고) 뭡니까? 도대체?

파란색지붕여자: 광중의 악귀를 쫓아라.

빨간색지붕남자: 도대체, 저한테 왜 이러십니까!

초록색지붕여자: 광중의 악귀를 쫓아라.

빨간색지붕남자: 도대체, 무슨 말들을 하고 있는 건지?

초록색지붕남자: 광중의 악귀를 쫓아라.

빨간색지붕남자: 제발 그만들 좀 해요.

장독대옥상여자: 광중 속에 들어가 칼춤을 춰라.

주황색지붕남자: 오던 길 말고 다른 길로 달아나라. 뒤도 돌아보지 말고 가던 길이나 마저 가 라.

빨간색지붕남자: (몸부림치며, 악다구니를 쓴다)

 

정적.

 

장독대옥상여자: 장독을 처음 쓸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저수지바닥여자: 장독은 엄마의 젖무덤과 같죠.

장독대옥상여자: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숨 쉬는 항아리들.

저수지바닥여자: 좋은 독에서 빛깔 좋은 장이 나온다.

장독대옥상여자: 항아리로 만든 콩나물시루, 항아리 화분, 항아리 그릇, 항아리 어항. 통통 맑 은 소리가 난다.

 

정적, 빨간색지붕남자 몸부림을 치다 잠잠해진다.

 

저수지바닥여자: 젖을 떼라. 트림을 해라.

주황색지붕남자: 젖을 물어라.

초록색지붕여자: 젖을 떼고 단단한 음식을 씹어라.

초록색지붕남자: 그 젖을 떼고 다른 젖을 물어라.

파란색지붕여자: (웃옷을 살짝 풀어헤치고) 그 젖은 떼고 내 젖을 물어라.

 

정적, 뽀얀 안개 속에 군데군데 섬처럼 떠 있는 지붕들. 왁자지껄한 웃음소리.

 

 

3

 

날이 밝았다. 물속에 가라앉은 지붕들. 부들, 육초 등이 어우러진 낚시터 좌대들. 바람도 없고 날씨도 따뜻하다. 낚시터 좌대에 받침틀로 고정한 낚싯대들. 짧은 낚싯대 찌가 천천히 올라온다.

 

 

초록색지붕남자: 안방에 물고기들은 누가 풀어 놓았을까?

초록색지붕여자: 주방에 물고기들은 누가 풀어 놓았을까?

주황색지붕남자: 잣나무 솔방울 술병은 아직 멀쩡할까나?

장독대옥상여자: 집나간 사람들은 잘 살고 있을까? 다 떠났는데 무슨 이유로 마을에 개 짖는 소리가 끊이지 않을까?

파란색지붕여자: 감쪽같아.

주황색지붕남자: 감쪽같아.

초록색지붕여자: 감쪽같아.

장독대옥상여자: 감쪽같아.

초록색지붕남자: 감쪽같아.

 

정적

 

파란색지붕여자: (동시에) 연꽃으로 모두 뒤덮인 이 지붕 저 지붕이.

주황색지붕남자: (동시에) 연꽃으로 모두 뒤덮인 이 골목 저 골목이.

초록색지붕여자: (동시에) 연꽃으로 모두 뒤덮인 이 나무 저 나무가.

초록색지붕남자: (동시에) 연꽃으로 모두 뒤덮인 이 사람 저 사람이.

장독대옥상여자: (동시에) 연꽃으로 모두 뒤덮인 이 하늘 저 하늘이.

 

모두, 낚시터 좌대에 오래 앉는다. 입질이 없다.

 

주황색지붕남자: 입질 좀 있어?

초록색지붕남자: 통 입질이 없네요. (사이) 혹시 내기 좋아하십니까?

주황색지붕남자: 내기 싫어하는 사람도 있나?

초록색지붕남자: 심심한데 우리 내기나 한 번 하죠.

주황색지붕남자: 그러지 뭐.

초록색지붕남자: 뭘 걸 까요?

주황색지붕남자: 발목.

초록색지붕남자: 죽은 놈 발목 가져다가 뭐에다 써요?

주황색지붕남자: 그거야 이긴 놈 맘이지 뭐.

초록색지붕남자: 좋아요, 좋습니다. 져놓고 울고불고 딴 말하기 없깁니다.

주황색지붕남자: 내가 내 오른 쪽 다리로 내 머리를 긁을 수 있게? 없게?

초록색지붕남자: 혹시 체조 하셨어요?

주황색지붕남자: 아니.

초록색지붕남자: 좋아요. 좋습니다. 분명히 다리로 머리를 긁으셔야합니다.

주황색지붕남자: (가발을 벗어 바닥에 내려놓고 오른 쪽 다리로 벅벅 긁는다)

초록색지붕남자: 대머리셨네요.

주황색지붕남자: 몇 해 전에 끌려들어가는 낚싯대를 챘는데 물고기가 얼마나 힘이 좋던지, 물 살에 머리가 그만.

 

장독대옥상여자, 파란색지붕여자, 초록색지붕여자 낚싯대를 낚아챈다. 저수지에 버려진 물건들 차례로 올라온다.

 

초록색지붕남자: 이번에는 제가 하죠.

주황색지붕남자: 그러든지.

초록색지붕남자: 제가 제 입으로 제 오른쪽 눈을 깨물 수 있을까요?

주황색지붕남자: 해보든지.

초록색지붕남자: (오른쪽 눈을 빼서 이빨로 깨문다)

주황색지붕남자: 아니, 어쩌다가.

초록색지붕남자: 몇 해 전에 2미터짜리 잉어와 이틀 동안 씨름을 했는데, 하도 힘이 들다보니, 눈알이 그만.

 

장독대옥상여자, 파란색지붕여자, 초록색지붕여자 낚싯대를 낚아챈다. 물귀신들, 차례로 물 밖으로 걸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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