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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위에 안테나들 -2화-

프로젝트빅라이프/지붕위에안테나들

by 프로젝트빅라이프 2018. 10. 29.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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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황색지붕남자: 어떻게 죽였나?

빨간색지붕남자: ?

초록색지붕남자: 살려달라고는 안 해요?

초록색지붕여자: 그럼 죽여 달라고 했을까봐?

장독대옥상여자: 부엌칼로 배때기 밑을 막 쑤셔버렸나? 아니면 뒤에서 전선줄로 목을 칭칭 감 아 있는 힘껏 당겨버렸나? 그것도 아니면 죽을 때까지 때린데 또 때리면서 욕지거리를 내뱉었나? 피 묻은 손은 씻고 밥을 먹었나? 아니면 밥을 먼저 먹 고 손을 씻었나? 죽기 전에 소처럼 울던가? 말처럼 울던가? 죽을 때는 개 처 럼 기던가? 개구리마냥 폴짝폴짝 뛰던가?

파란색지붕여자: 왜 죽였죠?

주황색지붕남자: 재미삼아 죽였겠지.

빨간색지붕남자: 실수였어요.

초록색지붕남자: 몇 번의 실수를 했지?

빨간색지붕남자: 어렸을 때부터 저는 실수투성이였어요.

초록색지붕여자: 도대체 몇 명이나 죽인 거죠?

파란색지붕여자: 살인마!

주황색지붕남자: 앞으로 몇 번의 실수를 더 할 예정인가?

초록색지붕남자: 역습을 허용했거나 한 적은 없소?

초록색지붕여자: 골키퍼는 없었어요?

빨간색지붕남자: ?

초록색지붕여자: 골대가 텅 비어 있었나봐.

초록색지붕남자: 비겁하군.

주황색지붕남자: 살인마들은 다 그래. 혼자 있는 노약자들을 주로 노리지.

장독대옥상여자: 저런!

주황색지붕남자: (범죄 심리 분석관 마냥) 저 자의 나이는 25-29. 영양실조 환자처럼 깡마 른 외모를 보아, 방은 극히 지저분하고, 정신병력 및 마약경험도 있을 거야. 여자는 단 한 번도 교제해 본적도 없을 테고. 어렸을 때는 여동생의 바비인형 을 몰래 훔쳐서 목을 댕강 잘랐겠지. 애정이 없는 어머니, 학대를 일삼는 아버 지나 형제들 밑에서 자랐을 테고, 사회는 언제나 그랬듯이 무관심했겠지.

파란색지붕여자: 다 좋은데 이 남자는 깡마르지 않았어요.

주황색지붕남자: (무시하며) 사랑이나 애정의 감정이 뭔지도 잘 모를 거야.

빨간색지붕남자: 그렇지 않아요.

주황색지붕남자: (무시하며) 그 대신 악명 높은 존재가 되고 싶었겠지. 밤마다 희생자를 물색 하면서 돌아 다녔을 거야. 만약, 결혼이라는 걸 했다면……소녀들 목을 댕강 자르면서도 아들과 통화를 할 때는 다정한 목소리로 밥은 먹었냐고 물었을 테지. 그렇지 않아?

빨간색지붕남자: 저는…….

주황색지붕남자: (무시하며) 최근에 희생자의 장례식장에 가본 적이 있나? 기분이 어땠어? 짜 릿짜릿 찌릿찌릿하던가?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아서 아랫도리가 불끈불끈 했어?

빨간색지붕남자: 이봐! 그런 게 아니라니까, 그러네.

주황색지붕남자: 이제야 슬슬 본색이 나오기 시작하는군.

빨간색지붕남자: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주황색지붕남자: 그럼 너는 어떤 사람인데?

빨간색지붕남자: 저는……

주황색지붕남자: (무시하며) 다른 사람과 원만한 관계를 맺거나 유지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을 거야.

빨간색지붕남자: 그건 누구나 그렇잖아요. 사람만큼 이해하기 어려운 게 이 세상에 어디 있겠 어요? 그리고 저는……

주황색지붕남자: 이해하기 어려워서 이해하기 쉽게 죽여 버렸군.

파란색지붕여자: 살인마!

장독대옥상여자: 이봐, , , 자극을 하고 그래. (장독 뚜껑을 방패 마냥 들고 서서) 나는 선 생님이 좋은 사람인거 다 알아요. 좋은 사람이 화가 나면 더 무서운 법이지 만……그럴 때는 집에 계신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참을 인자 세 개만 마음속 으로 그려봐요.

초록색지붕여자: 살인마!

초록색지붕남자: 왜 나를 보면서 말해.

초록색지붕여자: 무서워서요.

초록색지붕남자: (부둥켜안으며) 내가 옆에 있는데 뭐가, 무섭다고, 그래.

장독대옥상여자: 좋겠다. 썩을 년 놈들.

파란색지붕여자: 여긴 왜 온 거죠?

 

침묵

 

빨간색지붕남자: 바람이나 좀 쐴까, 했어요.

파란색지붕여자: 바람은 어디에나 있어요.

빨간색지붕남자: 나고 자란 곳의 바람은 달라요.

파란색지붕여자: 그래서 사람을 죽였나요?

빨간색지붕남자: 그럴 리가.

주황색지붕남자: 죽이고 나서 나고 자란 곳에 버렸나보군.

초록색지붕여자: 고향을 저런 용도로 쓰는 사람도 다 있네요.

주황색지붕남자: 살인마들은 다 그래. 비오는 날을 좋아하고, 스타킹과 구두를 선호하고, 고문 하고 살해하기 전에 성행위를 하려들지. 특히 긴 생머리는 치명적이야.

장독대옥상여자: 큰일이군.

초록색지붕남자: 뭐 이렇게나 보는 눈이 많은 데 별일이야 있겠습니까.

빨간색지붕남자: 보는 눈이 없어도 별일 없어요. 저 그런 사람 아닙니다. 사실 이곳에 오게 된 것도 하는 일마다 잘 안 풀리고 답답하고 그래서 온 거에요. 생각도 정리 하고 마음도 정리하고 할 겸 여차저차해서.

주황색지붕남자: 몸도 정리하고?

장독대옥상여자: 뼈도 발라내고?

파란색지붕여자: 그만 좀 해요. 뭐라고 하는지 말 좀 들어봅시다.

초록색지붕여자: 자살골인 모양이네요.

초록색지붕남자: 시시하군.

장독대옥상여자: 간만에 심장이 쫄깃쫄깃 하니 재미있었는데.

빨간색지붕남자: 도대체 무슨 소리들을 하는 건지?

파란색지붕여자: 혹시 걸을 때마다 발을 당기는 느낌이 들지 않던가요?

빨간색지붕남자: 유난히 발이 무겁기는 했어요.

파란색지붕여자: 혹시 비린내가 나지는 않았어요?

빨간색지붕남자: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그런지 그것이 내게서 나는 냄새인지 그 여자에게서 나는 냄새인건지 모르겠더군요.

파란색지붕여자: 갓난아기를 찾고 있다고 하지는 않던가요?

빨간색지붕남자: 젖을 물려야한다고는 했어요.

장독대옥상여자: 젖비린내.

빨간색지붕남자: ?

장독대옥상여자: 젖비린내 나는 여자라고, 고년이.

파란색지붕여자: 아가가 젖은 물지 않고 울기만 해서 걱정이라고는 안 해요?

빨간색지붕남자: 갑자기 제 앞에서 웃옷을 풀어헤치더니 젖을 물리려고 했어요.

장독대옥상여자: 좋았어?

주황색지붕남자: 달았겠다.

초록색지붕남자: 색은 노란색에 가깝고 맛은 어지간한 과일보다 달달하고 입에 쩍쩍 달라붙는 것이 조금 만 먹어도 배가 부르고, 기분이 마치 엄마 뱃속에 다시 들어간 것 마냥 포근한 것이……

초록색지붕여자: 좋기도 했겠네.

파란색지붕여자: (입맛을 다시다가) 그래서요?

빨간색지붕남자: 부끄럽네요.

장독대옥상여자: 물젖이었나보네.

빨간색지붕남자: ?

파란색지붕여자: 그래서요?

빨간색지붕남자: 모르겠어요. 내가 그 분을 밀친 건지 그 분을 끌어안은 건지.

장독대옥상여자: 밀치고 끌어안았겠지.

초록색지붕여자: 남자들이란.

초록색지붕남자: 여기 있는 분들도 다 그러지 않았어요?

주황색지붕남자: 끌어안고 밀치나 밀치고 끌어안나 똑같은 거 아닌가?

장독대옥상여자: 끌어안고 밀치는 건 놀란 거고, 밀치고 끌어안는 건 꼴린 거야.

초록색지붕여자: 짐승들! 늑대들! 본능에만 충실한……

초록색지붕남자: (꽉 끌어안으며) 그래서 싫어?

장독대옥상여자: 쯧쯧 사람들 다 보는데 남사스럽게 저게 뭐하는 짓거린지 몰라.

빨간색지붕남자: 도대체 무슨 말씀들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어요. 저는 그 분을 사랑했어요. 그냥 지나가는 바람도 아니고, 그냥 지나가는 물도 아니고, 그냥 지나가다 옷 깃 한 번 스치는 인연도 아니고, 그냥 저냥 이유 없이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 었어요.

주황색지붕남자: 나도 그랬었지.

장독대옥상여자: 나도 그랬어. 남정네도 아닌데 왜 그랬을까.

초록색지붕남자: 나는 안 그랬어.

초록색지붕여자: 정말?

파란색지붕여자: 나도 그랬어요.

 

날이 밝았다.

 

장독대옥상여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온몸에 젖비린내가 났겠지.

주황색지붕남자: 정신을 차리고 봤을 때는 목장갑을 끼고 무언가를 칼로 썰고 있었을 거야.

초록색지붕여자: 정신을 차렸을 때는 소용없죠.

장독대옥상여자: 그래서 어른들이 정신 줄을 단단히 붙잡고 살라고 그러는 거야.

파란색지붕여자: 요즘 세상이 어디 정신 줄 하나 단단히 붙잡는다고 살 수 있는 세상인가요?

초록색지붕남자: 그렇다고 정신 줄 놓고 다니겠어요?

빨간색지붕남자: 제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장독대옥상여자: 괜찮아, 괜찮아. 다 그러고 살아.

빨간색지붕남자: ?

장독대옥상여자: 죽고 죽이는 게 세상사야. 죽는 것보다는 죽이는 게 낫지 않겠어?

파란색지붕여자: 죽이는 쪽에만 서 있는 게 아니라면 괜찮아요.

초록색지붕남자: 죽여주는 세상이지.

초록색지붕여자: 끝내주는 세상이야.

주황색지붕남자: 죽여주게 끝내주는 세상사지.

빨간색지붕남자: 사람을 죽일 만큼 끝내주는 세상은 아니에요.

파란색지붕여자: 죽은 사람 또 죽인다고 누가 뭐라고 그러겠어요?

빨간색지붕남자: ?

파란색지붕여자: 그 여자는 몇 번을 죽여도 되살아나요. 그리고는 모두에게 젖을 먹이죠. 왜 그러는지는 모르겠어요. 이 동네에 살고 있긴 한 건지, 죽고 나서는 한 번도 본적이 없네요.

빨간색지붕남자: 그게 무슨 말인지?

장독대옥상여자: 쯧쯧 저리 눈치가 없어서 사회생활은 어찌했을까나.

초록색지붕남자: 너무 그러지 마세요. 처음인데 잘 하는 게 이상하죠.

초록색지붕여자: 자기는 처음부터 잘하던데?

초록색지붕남자: 사람이 다 똑같겠어? 날 때부터 타고 난 놈이 있고 아닌 놈이 있는 거지.

초록색지붕여자: 짐승!

장독대옥상여자: 저런 화상들. 밥만 먹고 그 짓만 하나.

주황색지붕남자: 내비 둬요. 보기 좋은데. 한 참 좋을 때 아닙니까!

빨간색지붕남자: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싸 쥔다)

장독대옥상여자: 부러워서 그래 부러워서. 집 잃고 돈 잃고 사람 잃고 다 잃어서 가진 거라고 는 힘밖에 없는 노친 네 하나 바람이나 쐬러 왔으면 참 좋겠다.

파란색지붕여자: 주책이세요.

장독대옥상여자: 어째 소리를 꽥꽥 지르더라니……너는 생겼다 이거지?

파란색지붕여자: (몸을 비비꼬며) 주책이셔요.

장독대옥상여자: 좋단다, 좋아. 좋아 죽네, 아주.

빨간색지붕남자: (넋이 나간 표정으로 지붕 위를 맴돌다가) 결국, 이렇게 된 거였어요.

파란색지붕여자: 사람은 누구나 죽어요. 죽음을 맞이하든 죽음을 선택하든 뭐가 다를까요?

빨간색지붕남자: 저는 지옥에 떨어질 거예요.

파란색지붕여자: 그렇지 않아요. 사는 게 지옥이었잖아요.

빨간색지붕남자: 그래서요?

파란색지붕여자: 죽다 살아나면 모를까, 여기서, 지옥으로 떨어질 일 없어요.

빨간색지붕남자: 여기가 어딘데요?

주황색지붕남자: 경상북도 봉화군 물야면 오전리 선달산 남류.

장독대옥상여자: 문경시 영순면 달지리 낙동강 하천.

초록색지붕남자: 내성천강이 합쳐지는 삼강마을 주막.

초록색지붕여자: 좁고 깊은 하곡. 중생대 쥐라기 대보화강암. 선캄브리아기 소백산 편마암. 중 생대 쥬라기 대보화강암. 선캠브리아기 소백산편마암복합체.

빨간색지붕남자: ?

파란색지붕여자: 든 자리라는 말이에요.

장독대옥상여자: 난 자리는 몰라도 든 자리는 안다고 했어.

빨간색지붕남자: 그 자리가 이 자리인건가요?

파란색지붕여자: 난 자리 든 자리가 따로 있나요. 하늘 아래 다 거기서 거기지.

주황색지붕남자: 하긴, 하늘아래는, , 난 자리고, 든 자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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