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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위에 안테나들 -5화-

프로젝트빅라이프/지붕위에안테나들

by 프로젝트빅라이프 2018. 10. 29.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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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황색지붕남자: 어째 으스스하다.

초록색지붕남자: 어째 몸이 으슬으슬 춥네요.

주황색지붕남자: 그만 할까?

초록색지붕남자: 그만 하죠.

장독대옥상여자: (손맛을 즐기면서) ? 보기 좋던데 계속하지.

초록색지붕여자: (손맛을 즐기면서) 만득이도 있고 참새도 있고 사오정도 있고 최불암도 있는 데 어째 여기서 그만둔다고 할까나.

파란색지붕여자: (손맛을 즐기면서) 낚인 물고기가 자꾸 반대편으로 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요?

 

정적 뒤 수많은 물고기들의 숨소리. 물살에 떠밀려 내려오다 말다하는 목선.

 

주황색지붕남자: 대 끝을 세워.

초록색지붕남자: 원줄이 느슨해지면 당기고 원줄이 팽팽해지면 살짝 살짝 풀어주면서 기운을 빼야 해요.

주황색지붕남자: 때를 놓치면 바늘을 털고 가버린다니까, 그러네.

초록색지붕남자: 급할수록 살짝 채야하는 법입니다. 찌가 올라오거나 찌를 끌고 들어가거나 옆으로 이동하는 걸 유심히 살펴보다가 아주, 아주, 신중하게 살짝, , , .

주황색지붕남자: 그렇게 하다가는 입만 털고 가버린다니까, 그러네. 탈탈탈탈 거리면 바로 채 고, 깔딱깔딱 거리면 슬슬 감아보다가 입질이 있으면 바로 채고, 폭폭폭폭 푹 들어가면 잠시 기다렸다가 또 그러면 바로 채고, 톡톡톡톡 거리면 한 번 슬슬 감아주면서……

목선 순식간에 끌려온다.

 

파란색지붕여자: 월척이다.

초록색지붕여자: 월척이다.

장독대옥상여자: 고놈 참 실하네.

주황색지붕남자: , , 남자라면, , 이정도 하지 않나?

초록색지붕남자: 남자라고 다 똑같나요?

주황색지붕남자: 다를 건 또 뭐야?

초록색지붕여자: 펄떡펄떡 뛰는 활어하고 냉동고에 꽁꽁 얼린 살이 노란 생선하고 같겠어요?

주황색지붕남자: ……

장독대옥상여자: 젊은 놈들은 뭘 몰라. 활어회보다 선어회가 더 좋은 법인데.

초록색지붕여자: 선어 회는 죽은 생선으로 회 뜬 것 같아서 찜찜할 것 같은데.

주황색지붕남자: 아니, 그걸, 말이라고.

파란색지붕여자: 식중독에 걸릴 위험도 있고 기생충도 있다고 해서 저도 좀 그렇긴 그렇더라 고요.

주황색지붕남자: 아니 이 사람들이 진짜. 사람을 면전에 두고 어떻게 그런 심한 말을…….

장독대옥상여자: 말은 바로 해야지. 사람은 아니지 않아? (눈치를 살피다가) 요즘 사람들은 회 를 먹을 줄 몰라. 사람고기든 생선이든 간에 죽고 난 뒤부터 24시간. , 뭐 시냐. 그거. 쇠고기다시다 같은 거 있잖아?

주황색지붕남자: 이노신산입니다. 누님.

장독대옥상여자: 그렇지. 이노신산. 아무튼 그것이 많아지면 감칠맛이 배가 되고 육질은 부드 러운 것이 그 뭐시냐. 그거. 달콤한 것이 다양하게.

주황색지붕남자: 식감입니다. 누님.

장독대옥상여자: 그 뭐시냐, 그거, 처음에 하는 거 있잖아.

주황색지붕남자: 오로시입니다. 누님.

장독대옥상여자: (못마땅하게 쳐다보다가) 반으로 자른 머리, 어슷하게 갈린 볼 따귀. 확 뜯어 낸 배받이의 검은 것들과 아가미 안쪽 내장 그리고 한 쪽으로 밀어낸 창자. 핏기를 제거한 질기고 거칠거칠한 생선껍질. (사이) 뼈 속의 핏기까지 긁어낸 복어. 다시마에 싸서 냉장보관 한 소금구이들. (사이) 팍팍 비벼 씻기에는 시 간이 없다. (정신이 나간 듯 중얼중얼) 멍게는 살이 밝은 주황색이고 바다 메 기는 흐물흐물 거리면서 탱탱하다. 상어 살은 흰색이고 거칠고 푸석하다. 가 리비 키조개 뚜껑은 관자 살을 최대한 붙여 떼라. 낙지 먹물은 터지지 않으면 그냥 써라. 개뿔은 입을 잘라라.

주황색지붕남자: 개불입니다. 누님.

장독대옥상여자: , 아무튼, 거시기, 색깔이 검은 회색을 띠는 놈. 수분이 약간 부족해 퍽퍽 한 년. 그런 년, 놈들은 고춧가루만 조금 쳐도 살이 금방 고들고들해진다, 이 말이여. 내 말이. , 아무튼, 거시기 (목선 아래를 오래 내려다보다가 입맛을 다시며) 아침이 참 좋을 때다. 그지?

 

등장인물들 모두 목선 아래를 내려다본다. 그때, 목선에 누워있던 빨간색지붕남자 몸을 일으킨다. 모두 정지.

 

빨간색지붕남자: 어제와 똑같은 오늘인데, 오늘은 뭔가 다른 것도 같네요.

 

정적. 바람소리, 물소리 잔잔하다.

 

장독대옥상여자: 다르긴 다르네.

주황색지붕남자: 다르긴 뭐가 다르다고 그래요.

파란색지붕여자: 그럼 달라야지, 같으면 쓰겠어요?

초록색지붕여자: 누군 좋겠네요.

초록색지붕남자: 좋긴 무슨.

장독대옥상여자: 좋을 때지.

주황색지붕남자: 좋아봤자 한 때 아닙니까!

초록색지붕여자: 하긴, 저 맘 때는, 금방 지나가고, 이 맘 때는, , 길어지죠.

초록색지붕남자: 언제는 내가 잘한다고 좋다더니.

 

정적. 바람소리, 물소리 잔잔하다.

 

빨간색지붕남자: (주변을 둘러보며) 여기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파란색지붕여자: 우리가 안 보이는 모양이에요.

장독대옥상여자: 죽다 살아났으니 안 보일 수밖에.

주황색지붕남자: 다시 보이게 등을 확 밀어버릴까요?

초록색지붕남자: 뭐하려고 그래요. 저 맘 때는 금방 지나가고 이 맘 때는 길어지는데.

초록색지붕여자: (아랫도리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아침은 짧죠.

빨간색지붕남자: 전부 꿈이었을까요?

장독대옥상여자: 인생이란 일장춘몽이지.

빨간색지붕남자: 악몽이었어요.

파란색지붕여자: 아 꿈이다 다행이다, 한 모양입니다.

빨간색지붕남자: 그런데 어째서 기분이 불쾌하지만은 않았던 걸까요?

초록색지붕여자: 그거야 뭐 죽였다 생각했는데 죽인 게 아닌 게 되었으니까, 그런 것이겠죠.

초록색지붕남자: 그게 아니라 죽었다 생각했는데 죽은 게 아닌 것이라, 그런 것이겠죠.

빨간색지붕남자: (낚시터 좌대에 앉아서) 죽지도 죽이지도 않았어요. 다행입니다.

파란색지붕여자: 다행일까요?

빨간색지붕남자: 물속을 가만히, 오래, 들여다보니, 그간 누름돌로 잘 눌러 삭혀뒀던 것들이 떠오르네요. 다 옛 이야기고 다 잊은 줄 알았는데 말입니다. 그런 게 아니었 던 모양이에요. 괜히 눈물이 핑 돌고 코끝이 찡합니다.

장독대옥상여자: 청승맞게끔. 지난 이야기는 꺼내서 뭐하려고 저러는지.

빨간색지붕남자: 저 때는 뭐하고 놀까, 고민했었는데지금은 뭐하고 살지, 고민이 됩니다.

장독대옥상여자: 요새 것들은 이게 문제야. 사지가 멀쩡한데 뭔들 못할까?

주황색지붕남자: 천부당만부당 하신 말씀입니다, 누님. 요새 젊은 것들은 근성이 없어요. 근성 이. 우리 때는 안 그랬는데.

장독대옥상여자: 배가 불러서 그래. 아프리카에서 태어나봐야 정신을 차리지.

파란색지붕여자: 그렇게 근성이 좋으신 분들이 여기는 왜 오셨어요?

장독대옥상여자: 그거야.

주황색지붕남자: 그거야. .

빨간색지붕남자: (기침하듯 말한다) 꼰대들.

장독대옥상여자: 지금 뭐라고 한 거야?

주황색지붕남자: 꼰대라고 했어요.

초록색지붕여자: 기침했잖아요.

빨간색지붕남자: (기침하듯 말한다) 앞뒤가 꽉 막힌 꼰대들, , 오늘은 정말이지 보고 싶네요. (사이) 열심히 살면 다 잘 될 거라면서요. 이게 뭐에요. 아득바득 살다보면 쥐 구멍에 볕이 들 날이 온다면서요. 이게 뭐에요. 선량하게 살면 죄다 물고기 신 세에요. 죄다 팔려가요. 꼰대마냥 굴어봤자 소용없어요. 죄다 낚인 거라고요.

초록색지붕남자: 기침이 심하네요. 그렇죠?

파란색지붕여자: 몸을 부들부들 떠네요.

장독대옥상여자: 열은 안나나?

주황색지붕남자: 열 받는 거겠죠.

초록색지붕남자: 그런 게 아니라 볼일이 급했던 모양이에요.

초록색지붕여자: 여기 우리 말고 누가 있다고 뒤돌아서서 볼일을 보는지 모르겠어요.

빨간색지붕남자: (지퍼를 올리며) 시원하네요.

파란색지붕여자: 시원섭섭합니다.

 

한 여름 매미소리 계속 된다.

 

빨간색지붕남자: 시끄럽기만 했던 매미소리도 여기 와서 들으니 듣기 좋네요.

주황색지붕남자: 매미가 왜 맴맴 우는 줄 알아요?

장독대옥상여자: , 맴맴, 울고 싶은 가보지. 내가 알게 뭐람.

초록색지붕남자: 매미가 무슨 맴맴 울어요. 치르르르르, 치르르르, 울다가 말지.

초록색지붕여자: 매미가 무슨 치르르르르, 치르르르, 울어? 쓰름쓰름 쓰름쓰름, 지글지글, ~ ~ ~ 울다가 말지.

파란색지붕여자: 매미가 왜 우는데요?

주황색지붕남자: 곧 죽을 걸 알거든.

장독대옥상여자: 나는 안 울었는데.

초록색지붕남자: 그거야 죽으면 다 끝날 줄 알았으니까, 그런 거 아니에요?

초록색지붕여자: 살았을 때 너무 울어서 눈물이 다 말랐었나보죠.

파란색지붕여자: 그거야 다들 그렇지 않나요?

장독대옥상여자: 눈물이 마를 새가 어디 있어? 나는 눈물이 나게 웃으면서 갔어.

주황색지붕남자: 웃다 울다 했나보네요.

장독대옥상여자: 안 울었다니까, 그러네.

주황색지붕남자: 들장미 소녀 캔디도 아니고 왜 그러세요.

 

모두 웃는다. 귀신 울음소리 같기도 하고 매미 울음소리 같기도 하다.

 

빨간색지붕남자: 이제는 좀 시끄럽네요.

 

모두 웃음 뚝 그친다.

 

빨간색지붕남자: 매미들은 왜 저렇게 큰 소리를 내며 우는 것일까요?

장독대옥상여자: 맴맴.

주황색지붕남자: 쓰름쓰름 쓰름쓰름.

초록색지붕여자: 치르르르르, 치르르르.

초록색지붕남자: 지글지글.

파란색지붕여자: ~ ~ ~.

빨간색지붕남자: 울음소리도 다 달라요. (사이) 매미 소리를 귀 기울여 들어본 적 있나요?

장독대옥상여자: 서러워서 더는 못살겠다.

주황색지붕남자: 더러워서 더는 못살겠다.

파란색지붕여자: 외로워서 더는 못살겠다.

초록색지붕남자: 힘들어서 더는 못살겠다.

초록색지붕여자: 원통해서 더는 못살겠다.

파란색지붕여자: 왜 나한테 죽을힘으로만 살라고 하나.

장독대옥상여자: 죄송합니다. 마지막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초록색지붕남자: 잘 될 거야, 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잘 안 될 거라는 거 아시잖아요.

초록색지붕여자: 세상은 더 어렵고 조심스러워져서 내가 죽어야만 끝이나요.

초록색지붕남자: 이번 생은 망했어요.

빨간색지붕남자: (짧은, 침묵) 무료급식은 이제 좀 입에 물려요. 바닥도 차갑고요. 위쪽 어금니 는 썩어서 깨졌어요. 치과는 돈이 없어서 무섭고요. 입고 있는 옷을 벗어서 줄 필요는 없습니다. 제 스타일이 아니에요. 무능하고 생각 없고 하는 것 없 이 사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힘든 법입니다. 그러니 다들 행복하시구요, 쉬엄 쉬엄 좀 삽시다. 모르는 사람이랑 말하기 싫다고만 하지 마시구요. 꿈이 없다 고 뭐라고 좀 하지 마시구요. 날도 추운데 쌀쌀맞게 굴지 좀 말고 적선도 좀 합시다. 그거 좀 쓴다고 죽는 거 아니잖습니까. 착한 일도 하고 생색도 내보 고 좀 좋아요?

 

맴맴. 쓰름쓰름 쓰름쓰름. 치르르르르, 치르르르. 지글지글. ~ ~ ~.

 

빨간색지붕남자: 가만히 오래 들어보니 가마솥 장작불이 부글부글 끓어대는 소리 같기도 합니 다. 가마솥에 듬성듬성 썰어 넣은 돼지목살. 부글부글 끓던 대파, 고사리, 토 란줄기, 콩나물. 아버지 어머니 형 누나 동생 빙 둘러서서 막걸리 사발 들이 키던 그때 그 광경들이 오늘은 참 고픕니다.

 

맴맴. 쓰름쓰름 쓰름쓰름. 치르르르르, 치르르르. 지글지글. ~ ~ ~.

 

빨간색지붕남자: 어머니는 가마솥이 다 닳도록 떡을 찌고 술밥을 쪄요.

 

맴맴. 쓰름쓰름 쓰름쓰름. 치르르르르, 치르르르. 지글지글. ~ ~ ~. 타닥타닥. 매캐한 연기 자욱하게 깔린다. 콜록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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