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티컬 코렉트니스(Political Correctness), 줄여서 피씨(PC) 또는 번역해서 정치적 올바름이란, 모든 종류의 편견이 섞인 언어적 표현을 쓰지 말자는 신념, 또는 그러한 신념을 바탕으로 추진되는 사회적 운동이다.
관용은 내 생각과 다르더라도 그것을 말할 자유를 위해 죽기까지 싸우겠다,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pc주의자들은 관용의 뜻을 바꿔 사용하고 있다.
당신은 감히 우리의 생각에 반대할 수 없다.
내(우리) 생각에 반대한다면 혐오주의자다.
논리적으로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과도한 PC를 멈추라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는 pc주의자들에게 관용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동서양을 불문하고 이렇게 말한다. 정치적올바름을 반대하는 건 자신이 지배계급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지배계급의 이해를 대변하는 이데올로기를 자기 것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며 그래서 그게 마치 보편인 것처럼 생각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이다.
버니샌더스나 슬라보예 지젝이 pc가 기득권층을 옹호한다고 말하는 이유는 그들이 반대의 목소리를 기본적으로 들으려고 하지 않고 악의 축으로 규정하거나
부정적인 것으로 묶으려 들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관용은 나는 당신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지만, 당신이 그 의견을 주장할 권리를 박해 받는다면 함께 싸울 것이라 말하는 것이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사상의 자유를 부정하는 사상은 허용되지만 실제로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종교도 믿을 수는 있지만 실제로 남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금지된다. 마찬가지로 pc역시 자신들의 생각을 부정하는 것은 허용하되 그것을 억압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관용은 갈등상황에서 요청되는 덕목이다.
pc는 성폭력, 언어폭력, 성희롱부터 장애인과 성적 소수자들, 이주민들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그들을 보호해줄 불관용의 장치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범죄행위와 ~이 성폭력이다, ~이 언어폭력이다, ~는 성희롱이다, ~의 소수자들을 무조건적으로 보호해야 한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같지 않다. 사회가 금기시 하는 것과 금기시 하지 않던 것을 이야기 하는 건 다르다.
관용은 다른 사람의 가치체계를 받아들여 극한 분열을 막아보려는 취지에서 형성된 개념이다.
내가 곧 진리다, 라고 말할 수는 있으나 당신의 생각이 틀렸다고 말하는 사람을 향해 지우기 어려운 부정적 평가를 내려서는 안된다.
pc가 다양성을 배려한다고 말하면서도 또
다른 전체주의가 되고 있는 이유는 관용이 없기 때문이다.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비판을 이데올로기적 분노라고 말하면서 소통을 거부하는 건 도덕적 우월의식에 불과하다.
모든 종류의 편견이 섞인 표현을 쓰지 말자고 하면서 자신들의 의견에 반대한다는 것만으로 혐오주의자, 인종차별 주의자로 몰아가는 것은 유사한 상황에 대해 각자 다른 지침이 불공평하게 적용되는 것 아닌가. 정치적올바름만을 극도로 추구하는 자들은 경쟁과 비판을 거부하고 실패의 경험을 인정하려 들지 않기에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인간 사회는 너무나 많은 요소가 관계하는 복잡한 시스템이다. 슬라보예 지젝은 체제에 대한 반대가 현실적인 대안이 없고 일관된 유토피아적 기획의 형태조차 갖추지 못한 pc가 사회상황을 무시하고 있으며 pc가 하위계층의 본능이 아니라 헤게모니를 장악한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의 본능으로 움직인다고 말한바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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