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참아요. 가시안개 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통증도 가려움도 다 사라질 거예요.”
“너는 괜찮다, 이거지?”
“그런 말이 아니고. 나는 걱정이 돼서.”
“한가한 소리나 하고 있어. 진짜. 그래서 언제 밖으로 나갈 수 있는데?”
치어들이 많이도 부화했습니다.
죽겠네요. 진짜.
말벌 떼가 따로 없습니다. 게다가 나만 공격해요.
진짜 너무 가려워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듭니다.
가렵고 아프고 미치겠어서 바닥을 뒹굴고 있는 데 가시 안개가 걷혔습니다.
“가시안개가 지나갔어요.”
“걷힌 게 아니고 지나갔다고?”
가려운 게 거짓말처럼 말끔히 사라졌습니다.
뒤를 돌아보니 가시안개가 맵시 있게 빠진 꼬리지느러미를 신경질적으로 휘젓고 있네요. 똥구멍 밖으로 나와서 보니 요나를 삼킨 그 물고기 인 것 같습니다. 요나서 1장 17-2장10절에 나온 그 물고기요.
“너 저게 뭔지 알아?”
“물고기죠. 통로이기도 하고. 저 물고기 뱃속을 지나와야 공장에 도착 할 수 있어요.”
나는 괜히 감격에 젖습니다. 성경책에서 보던 그 물고기라니요.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가나 삼일 삼야를 물고기 배에 있으니라.”
“뭐해요?”
“응?”
“저거 그 물고기 아니에요.”
“그럼 뭔데?”
“이곳의 주인인 빅터가 키우는 물고기인데……재미있으라고 빅터가 물고기 뱃속에 길을 쑤셔 넣었죠.”
“그럼 나한테 달려들었던 물고기들은 뭔데?”
“자세한 건 빅터한테 물어보세요.”
“빅터?”
“빅터 프랑켄슈타인요.”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공장 굴뚝 아래에 살고 있습니다. 우뚝 솟은 굴뚝 위로 솟아난 큰 나무 줄기를 타고 내려가니 최신식 첨단기기들이 돌아가고 있는 실험실이 보입니다. 다르르르륵.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시체조각들이 줄줄이 내려옵니다. 각각 다른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내려온 팔과 다리, 몸통과 머리가 검은 천이 빠르게 오르내리는 바늘을 지나자 하나가 되면서 모양을 갖춰갑니다. 작업대에 앉아 있는 노인이 빅터 프랑켄슈타인인 것 같네요.
“안녕하세요? 빅터씨.”
“안녕하세요? 빅터 프랑켄슈타인씨.”
노인은 좀 많이 바빠 보입니다. 고개를 들어 슬쩍 한 번 쳐다보더니 모양을 갖춰서 계속 내려오는 생명체들의 엉덩이에 특수 풀을 바른 라벨을 붙입니다.
나는 1미터 가까이 되는 투명한 유리병에 뱃속의 태아처럼 몸을 돌돌 말고 자고 있는 생물들을 봐요. 잠든 모습이 편안해보이네요.
벼리는 목장갑 두 겹, 토시와 마스크, 앞치마를 하고는 컨베이어 벨트 앞에 섭니다.
“뭐해?”
“도와야줘. 그래야 빅터씨하고 이야기를 나누죠.”
“고마워.”
빅터 프랑켄슈타인씨의 끈끈하고 긴 혀가 벼리의 머리를 한 번 쓱 감더니 다시 입속으로 들어가네요.
“검은 늪 개구리인건가?”
“개구리가 아니라 빅터, 프랑켄슈타인, 씨에요.”
또박또박 말하던 벼리는 다시 컨베이어 벨트 앞에 서서 라벨을 붙인 유리병을 분리합니다. 유리병은 입이 아주 큰 물고기 뱃속에 차곡차곡 쌓여가는 데 일이 끝날 기미가 안보여요. 마냥 기다리기에는 따분하기도 해서 일손을 거들어봅니다. 시간이 정말 안 가네요.
“저 물고기들 말이야.”
“아. 그루퍼요?”
“다 어디로 가는 거지?”
“엄마들 뱃속으로 가요. 그리고 몇 개월 뒤 다시 태어나는 거죠.”
1미터나 되는 투명한 유리병이 어떻게 엄마 뱃속으로 들어가는지 궁금하긴 했지만 묻지 않기로 했습니다. 뭐 어떻게든 자궁 속을 비집고 헤집고 들어가고 나오겠죠. 마침내 그루퍼가 벌린 입을 다뭅니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하다는 생각은 안 들어?”
“글쎄요.”
빅터 프랑켄슈타인씨가 짓궂게 웃습니다. 그가 이어 붙인 생물들은 신체의 일부가 결합되어 있어요. 흉부가 붙어 있거나, 복부가 붙어 있거나, 골반이 붙어 있거나, 엉덩이가 붙어 있거나, 머리가 붙어 있거나 뭐 그렇습니다. 저 상태로 태어나면 사는 게 쉽지만은 않을 텐데 왜 굳이 저렇게 만든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그의 팔다리를 비례가 맞도록 구성했고 아름다운 외모의 특징들을 골라 짜 맞추었다. 아름답게 말이다! 신이시여! 누런 피부는 그 밑에서 움직이는 근육과 동맥을 간신히 가리고 있었다. 검은 머리칼은 윤기를 내며 흘러내렸고 이는 진주처럼 희었다. 그러나 이런 화려함은 그 축축한 눈, 그것이 들어앉은 희끄무레한 눈구멍과 거의 비슷한 색깔의 두 눈, 쭈글쭈글한 피부, 새까만 입술과 대조를 이루어 더욱 섬뜩하기만 했다.”
“메리셸리?”
“그는 과거에도 그랬듯이 본인이 생각하기에 가장 아름다운 사람을 만들고 있는 거예요. 마치 소설처럼.”
그루퍼가 모두 떠나자 컨베이어벨트가 멈춥니다. 많은 것들이 만들어지지만 그것들이 과연 우리에게 정말 모두 필요한 것인지는 알 수가 없어요. 빅터 프랑켄슈타인씨가 허리를 바로세우고 다리를 쭉 폅니다. 손과 발 모두 물갈퀴가 달려 있네요. 수분이 부족해서 그런지 피부가 꽤 거칠어져 있습니다.
“호수에 뛰어들고 싶은데 할 일이 너무 많아.”
“물 좀 드실래요?”
벼리가 유리컵에 따른 물을 건넵니다. 목이 엄청 말랐나보네요. 빅터 프랑켄슈타인씨가 유리컵으로는 부족했는지 정수기통을 통째로 들고 마십니다. 물을 다 마시고 나니 기분이 좋은가 봅니다. 안 그래도 툭 튀어나온 눈이 더 튀어나오네요.
“누구?”
“위에서 왔어요.”
“아!”
“그렇다면 신의 몇 째 아들이지?”
“막내요.”
“에이 설마 막내일 리가 있나. 그는 우리 종족만큼이나 번식력이 뛰어나다고.”
양서류 주제에.
나를 위아래로 스윽 훑어보는 게 기분이 좋지가 않네요. 입속에 말았다, 넣었다, 뺏다가 하는 빅터 프랑켄슈타인씨의 혀를 잘라버릴까, 싶은데 그가 내 어깨에 손을 올립니다.
“그거 알아? 당신 아버지도 여기서 만들어졌다는 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말문이 다 막힙니다.
조금이라도 믿을만한 소리를 해야 믿든가 하지. 이건 뭐.
“개구리가 신을 만들었다는 소리야?”
“무례하군요. 나는 개구리에 가깝지만 개구리는 아니죠. 당신이 신에 가깝지만 신이 아니듯이.”
뭔가 있어 보이는 말일수록 지어낸 말일 확률이 높은 법이죠.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은 상대에게 의문과 걱정과 불안감을 주기위해 약간의 사실을 곁들이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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