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사타나스
[ 〈신약성서〉에서는 그리스어 음역인 '사타나스'(Satanas)가 쓰여지며, 영어 번역에서는 '사탄'(Satan)으로 나온다. 그는 악한 영의 왕이며, 본래부터 하느님과 그리스도의 원수로 빛의 천사인 체 가장하는 자로 표현된다. 그는 사람에게 들어갈 수 있고 그를 통해 행동할 수 있으며, 따라서 사람은 그의 행동이나 태도 때문에 사탄이라 불릴 수도 있다. 복음서에서 주로 귀신들림과 관련해서 쓰이고 있는 베엘제불이라는 그의 이름은 에크론의 신 이름인 베엘제붑(Baalzebub)에서 유래한 것이다(Ⅱ열왕 1). 또한 사탄은 마귀(diabolos)와 동일시되기도 하는데, 마귀라는 용어는 〈신약성서〉에서 사탄보다 더 자주 나타난다. 〈코란〉에서는 '사탄'이란 뜻의 고유명사 '샤이탄'(Shaitan)이 쓰인다.]
“뭐 그렇다고 치고. 너는 여기서 도대체 뭘 만들고 있는 거야?”
“보면 몰라? 보면……”
빅터 프랑켄슈타인씨가 웃습니다. 입이 정말 커요. 입속에 얼굴이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베엘제불님.”
벼리가 벌떡 일어나 빅터 프랑켄슈인씨의 벌린 입속에 사는 악마에게 깍듯하게 인사를 하네요. 그는 사탄입니다. 요한의 묵시록에 따르면 그는 자기 밑에 있는 귀신을 부려 사람의 몸을 점유하고 괴롭히고 병들게 하다가 큰 쇠사슬에 묶여졌다고 전해져요. 그런데 여기서 그와 마주친 걸 보면 전부 사실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나는 모두의 반대자, 모두의 적. 모두를 유혹하는 자. 모두에게 악한 자. 모두의 원수. 모든 거짓의 아비이자 모든 거짓말쟁이들과 살인자들의 우두머리. 공중을 다스리는 지배자이며 온 세계를 속이던 자. 크고 붉은 용. 그 옛날의 뱀.”
크고 붉은 용과 그 옛날의 뱀은 베엘제불의 거대한 성기를 말하는 은어입니다.
그는 내 아버지 하나님의 아내이자 제 어머니를 범한 죄로 이 세상에서 쫓겨났었어요.
그리고 어쩌면 그가 내 친아버지 일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허무맹랑한 상상에 불과하지만 혹 모르죠.
어머니는 하나지만 아버지는 누구든 될 수 있으니까요.
“그러고 보니 두 사람이 좀 닮은 것 같네요.”
벼리가 불쑥 끼어듭니다.
“응? 어디가?”
나는 호주머니에 넣고 있는 손을 빼다가 가진 걸 다 떨어뜨렸어요. 금화 몇 닢과 은화 몇 개가 바닥에 떨어져 뒹굴 때 빅터 프랑켄슈타인씨가 쩍 벌린 입을 다뭅니다.
“놀랬나요?”
“……”
“내 정신 좀 봐. 손님이 왔는데 차도 안 내오고.”
빅터 프랑켄슈타인 씨가 차를 내옵니다. 얼핏 보면 개구리 풀을 우려내서 만든 것 같은데 제법 맛이 괜찮네요. 과일 향이 나는 걸 보니 발효도 잘 된 것 같습니다.
“생각보다 괜찮네. 뭐로 만들었지?”
“시체 꽃을 우려냈어.”
빅터 프랑켄슈타인씨가 찻잔에 차를 더 따르며 피식 웃습니다.
“시체 꽃은 검은 늪 개구리들의 뱃속에서 삼일 간 있다가 항문 밖으로 나와. 꽃잎은 조금 거무스름하고 속은 희끄무레하고. 차를 다 마시면 죽은 사람들의 기억을 엿볼 수도 있고.”
“그래? 그거 참 신통방통하네.”
벼리는 벌써 차를 다 마셨나 봅니다. 그녀는 느닷없이 울고 소리 지르고 웃다가 입술을 꽉 깨뭅니다. 눈도 좀 풀렸네요. 입에서는 게거품이 보글보글 올라옵니다.
갑자기 흥분하거나 격렬하게 싸울 일이라도 생긴 모양이네요.
거품 같은 침이 온몸을 뒤덮습니다.
단단해지는 연습을 하는 애벌레 같아요.
“다 마시면 나도 저렇게 되는 건가?”
나는 찻잔을 내려놓고 빅터 프랑켄슈타인씨에게 묻습니다. 그는 다리를 꼬고 여유롭게 앉아 있다가 딱딱해진 벼리의 침을 칼로 갈라요.
“죽은 사람의 기억을 엿본다고 해서 별 일 안 생기니까, 걱정 할 것 없어. 다만.”
“다만, 뭐?”
“아니야 아무것도.”
“싱겁긴.”
껍질이 벗겨지고 그 속에 든 벼리는 얌전히 평화롭게 누워있습니다.
“그녀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신들을 죽일 거야.”
“무슨 수로?”
“나도 너도 우리 모두 이 세상에 없었던 존재가 되는 거지.”
“뜬금없긴.”
“애초에 신은 죽기 위해 모든 일을 계획했으니까.”
개소리, 아니, 개구리 소리 좀 그만 냈으면 좋겠네요.
마침 벼리가 일어납니다. 그녀는 긴 잠에 빠졌다가 일어난 것 마냥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봅니다.
“아직까지 왜 그러고 있어요?”
“내가 뭘?”
“마셔요. 그래야 재밌어지니까.”
“인간은 너무 뻔해서 재미없어.”
빅터 프랑켄슈타인씨와 벼리가 나를 계속 쳐다봅니다.
미간을 잔뜩 찌푸리면서 말이죠.
“참나!”
결국 나는 시체꽃차를 다 마시고 별거 아닌 인간의 삶과 죽음을 반추합니다.
지친 삶에 허위허위 대는 하찮고 보잘 것 없는.
“뭐 별거 아니네.”
머리가 어지럽고 미식거리네요. 시야도 뿌옇게 흐려집니다. 모자이크 된 얼굴들이 많이도 보이네요. 웅성웅성 시끌벅적합니다. 짜증나게! 말끝을 놓고 친한 척을 해요. 다 죽여 버릴까, 싶은 데 자꾸 귀찮게 어깨에 손을 올립니다. 몇몇은 내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기까지 합니다. 기분 더럽게 시리. 내 생일도 아닌데 촛불을 끄기 무섭게 폭죽을 터뜨리고 깔깔거리며 웃고 있습니다. 뭐가 재미있는 건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저것들 좀 치워줘. 정신 사나워서 도저히 못 보겠어.”
“눈을 떠요.”
나는 입에 게거품을 물고 있다가 눈을 뜹니다.
눈을 떠보니 벗겨진 껍질 속이네요.
그때 집 천장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지진이라도 난 것 같네요.
“괜찮아. 별거 아니야.”
베엘제불이 빅터 프랑켄슈타인씨 입속에서 스물 스물 기어 나오네요. 마치 뱀이 허물을 벗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는 눈꺼풀이 없습니다. 그는 코가 낮습니다. 그는 윗입술이 둥글고 가운데가 갈라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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