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혓바닥을 수시로 날름거릴 때마다 침이 바닥에 뚝뚝 떨어집니다. 그의 침은 콘크리트 바닥이 패일만큼 산성이 강합니다.
“창밖을 봐봐.”
베엘제불이 커튼을 걷고 창문을 엽니다. 시체들을 삼킨 검은 늪 개구리들이 우박처럼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습니다.
“요새는 좋은 재료를 구하기가 힘들어. 네 아버지 하나님과 네 형제들 그리고 네 아버지를 따르는 인간들이 갖은 고문을 다해서 사람들을 죽이는 바람에. 하나를 만드는 데도 수 만개의 재료를 들여다봐야 할 정도라니까.”
“안 만들면 되잖아.”
“정말 몰라서 물어?”
“물론, 왜 그렇게까지 하는지 짐작은 가지만 짐작만으로 전부를 안다고 말할 수는 없는 없으니까.”
“뭔 개소리야.”
베엘제불이 킥킥대며 웃습니다.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서로를 마주봅니다. 나는 뭘 죽이고 뭘 만들고 뭘 하는 것에 이유를 생각해 본적이 없어요. 모든 것은 내 아버지 하나님의 뜻일 뿐입니다. 이유 같은 건 몰라도 돼요. 사실.
“그는 결국 죽어.”
베엘제불은 맥락 없이 다짜고짜 결국 죽는다고 말하더니 유리병에 든 생명체를 밖으로 끄집어냅니다. 샴쌍둥이 기린입니다.
“너무 예쁘지 않아요?”
“글쎄”
어째 갈수록 벼리 머리가 좀 이상해지는 것 같습니다.
“너는 저게 뭐가 좋아 보이니?”
“살아 있잖아요.”
“응?”
“살아있는 건 뭐든 예쁜 거예요.
“살아있다고 다 예쁜 건 아니야. 죽는 게 더 나은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저 상태로 태어나면 얼마 살지도 못하고 버려져. 빨리 달리지 못하고 빨리 먹지 못하고 빨리 결정하지 못하고 뭐든 느리니 애초에 태어나지 말았어야해.”
“애초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건 신이에요.”
뭐,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다 맞는 말도 아니고요. 샴쌍둥이 기린이 몸을 일으킵니다. 머리가 두 개라서 그런지 서있는 것도 버거워 보이네요. 머리가 세 개나 달린 누렁이하고는 전혀 다른 케이스에요. 누렁이는 머리가 세 개여도 괜찮을 만큼 몸이 큽니다.
“사자나 하이에나가 잡아먹기 딱 좋군.”
“그럼 반으로 가를까?”
베엘제불이 내게 묻습니다.
“그럼 죽잖아요. 그러지 마요.”
벼리가 베엘제불을 가로막구요.
샴쌍둥이 기린은 간신히 두 발로 바닥을 딛고 서서 목을 앞으로 쭉 내밀어요. 걷기는 하는데 샴쌍둥이 기린의 오른쪽 머리와 왼쪽 머리는 생각이 좀 다른 것 같습니다. 쉽게 걷지 못하고 자꾸 몹시 머뭇거리는 꼴이 좀 우습네요.
“애초에 저런 걸 왜 만든 거야? 징그럽게.”
“그런 말 하지 말아요.”
“재밌잖아.”
베엘제불이 샴쌍둥이 기린의 몸을 전기톱으로 가릅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어요.
그렇다고 해서 샴쌍둥이 기린이 바로 죽는 것도 아닙니다. 자루에 담긴 짐승처럼 계속 발버둥 치다가
천천히 아주 천천히, 갑작스럽지 않게 숨을 더 이상 내쉬지 않습니다.
“신기하지 않아?”
“뭐가?”
“살아 있다가 죽는 다는 것 말이야.”
“살아 있긴 했었던 건가?”
이곳에서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는 건 자연스럽지 못한 일입니다. 그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것도 말이죠.
“아까 했던 말이나 계속해봐.”
“응? 아! 신이 결국 죽을 거라는 거?”
“그가 원하는 일이라며?”
“사실 이곳에 사는 모두가 원하는 일이지. 죽지 못하니까 죽이고 죽어가는 모습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것 아닌가?”
“네 말은 그렇게 해서라도 죽음을 곁에 두고 싶어 한다는 말인 거야?”
“그렇지.”
베엘제불의 말을 전부 믿을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그는 궤변가에요. 어쩌면 벼리의 그림자 속에 기생하는 검은 늪 개구리들 중 하나일지도 모르죠.
“너 내 말을 하나도 안 믿는구나.”
나는 그의 말을 귓등으로 흘려듣고, 이제 막, 도착한 거대물고기 그루퍼를 봅니다. 부풀어 오른 부레와 돌출된 눈알을 보니 꽤 힘든 여정이었던 것 같네요.
“우리는 공통점이 많아.”
그가 말을 잇습니다.
“어떤 점이?”
“우리는 창조자야. 신과 다를 바가 없어.”
글쎄요. 우리가 과연 창조자일까요.
초파리는 유전자 개수만 1만4천여 개고 생식계에서만 4천여 개의 파이RNA가 있어요. 복제 하고 결합하고 개조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창조는 그 누고도 해낼 수 없습니다.
“내 아버지 하나님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그가 한 건 자기 자신을 인간들에게 알린 것 말고 없지.”
“뭐 내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베엘제불은 내 말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 넘깁니다.
그는 그저 낯설어 보이는 생물들을 만드는 일에 다시 집중할 뿐이에요.
낯선 세계를 만들기 위해서 특정한 색채를 영화에 집어넣는 감독처럼 말입니다. 그가 만드는 것들은 매우 인위적이고 부자연스러워요.
현실과 유리된 언어를 사용하는 내 아버지 하나님과 다른 의미로 같다고 할까요.
“집에 가자.”
“벌써요?”
“뭐, 너는 더 있고 싶으면 더 있다가 오든지.”
나는 괜히 기분이 불쾌해져서 최대한 서둘러 걸음을 옮깁니다.
“돌아갈 길은 아세요?”
“왔던 길을 되돌아가다보면 나오겠지. 뭐.”
“돌아 갈 필요 없어요.”
조심스럽게 그녀가 바닥에 자신의 몸을 눕힙니다. 그 순간 그녀의 어두운 그림자는 몸을 일으키고 집은 마구잡이로 시커멓게 뒤집힙니다. 풍경은 주사위 속에 들어있기라도 한 듯이 어지러이 뒤섞입니다.
우리는 오리들이 홰를 치며 내는 소리를 내며 데굴데굴 굴러다녀요.
능선은 하늘로 비죽비죽 치솟고 우리는 여러 가지 장면들의 드로잉 연작처럼 다양한 표정을 짓습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오니 계속 토할 듯이 기침이 나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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