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명 : 파시파에 아티스트 :귀스타브 모로(Gustave Moreau)
6. 파시파에
[남편 미노스가 포세이돈을 괄시한 대가로 저주를 받게 되는데, 포세이돈이 크레타로 보낸 황소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눈처럼 하얀 황소를 사랑한 파시파에는 당시 크레타에 있던 명장(名匠) 다이달로스에게 자신의 욕망을 말한다. 다이달로스는 파시파에를 위해 나무로 된 정교한 암소를 만들어주고 파시파에는 그 안에 들어가 포세이돈의 황소와 교접했다. 이 비정상적인 교접으로 인해 파시파에는 황소의 얼굴과 인간의 몸을 한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낳았다.]
성적인 쾌감을 자극하는 아름다움에 대해서 생각합니다. 로버트 블라이의 사랑에 관한 시를 속으로 읊어보기도 해요. ‘사랑을 하게 되면 우리는 풀을 사랑하게 된다. 그리고 헛간도 가로등도 그리고 밤새 인적 끊긴 작은 중앙로들도’ 나는 내 아버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 한 명의 인간으로서, 수컷으로서, 나에 대해서도 상상합니다.
“이래도 되는 게 맞는 걸까?”
나는 내 가슴팍에 안긴 벼리를 끈적끈적한 눈빛으로 바라봅니다.
“뭐가요?”
“아니야. 아무것도.”
신이 인간과 관계를 맺어도 되는 걸까요? 그러면 안 되는데 그녀가 너무 사랑스럽습니다. 진짜 믿어지지 않아요. 이러려고 죽은 그녀의 세포를 복제한 게 아닌데 말이죠.
“저 소녀 말이에요.”
“응?”
“어쩌다가 저렇게 된 거죠?”
그녀가 박제해 둔 소녀의 머리를 보고는 묻습니다.
나는 좀 얼버무리면서 대답합니다.
“뭐, 저렇게 된 게 한 둘인가.”
“음.”
“주인님이 널 다시 살리고 싶어서 가지고 온 거야.”
내내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돌리가 불쑥 끼어듭니다.
“어째서 절 살리려고 했던 거죠?”
“그거야.”
딱히, 할 말이 없습니다.
나는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무엇을 선택해 본 적이 없어요.
사실 그녀를 살린 것도 아니죠.
“한 번 더 할래?”
괜히 할 말이 없어져서 나는 그녀를 다시 꼭 안습니다.
“아래가 찢어질 듯이 아파요. 좀 쉬었다가.”
“미안해. 아프게 해서.”
나풀나풀한 레이스가 달린 하얀 침대보에 빨간 피가 번져있습니다. 사람들은 이걸 보고 여자가 됐다고 말하던가요? 어쨌든 우리는 우리의 말과 다르게 또다시 격정적으로 사랑을 나누고 달콤한 말들을 속삭입니다. 그러다 이따금 부끄러움이 울컥 올라오지만 결국 그것도 잠시 뿐이죠.
“우리 왜 갑자기 이러고 있게 된 거죠?”
“모르겠어. 나도.”
“불 좀 꺼줘요.”
“뭐하려고 꺼? 어차피 볼 거 못 볼 거 다 봤으면서.
돌리가 또 끼어들다가 눈치를 살피더니 불을 끕니다. 캄캄한 방에 돌리 눈만 반짝이고 있습니다.
“신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해?”
“못 죽일 것도 없죠. 그는 다만 아주 오래 살고 있는 것뿐이에요.”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달리, 이유는 없어요. 그냥 그렇게 상상해보는 거죠.”
“그래?”
아무 논리도 없는 말이지만 그녀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내버려 두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힘이 좀 빠지네요.
“재밌겠네.”
“네?”
“한 번 해봐.”
“한 번 더 하자고요?”
“아니, 신을 죽이는 상상 말이야.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보고 내게 말 해줘. 그게 뭐든 이유를 따지지 않고 내가 도와줄게.”
우리는 장소를 옮겨 가며 몇 번 더 관계를 맺고, 함께 샤워를 하고 난 뒤에야 비로소 ‘싸이코 패스 신을 죽이는 여러 가지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황당하고 과격한 것들이 대부분입니다만 그래도 흥미롭기는 해요.
“잘린 목을 들고 다니는 사람을 찾아요.”
“그래. 그렇게 하자.”
서부 미드랜드 방언으로 쓰여 진 “가웨인 경과 녹색 기사”가 떠오릅니다. 옛 켈트 신화 속 잘린 목을 들고 다니는 기사를 지금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요?
“없으면 만들지 뭐.”
“네?”
“날이 밝으면 시작하자. 나는 그가 어디에 있는지 알거든.”
날이 밝습니다. 우리는 더 자고 싶었지만 그렇지 않은 것처럼 일어났어요.
그리고 노트르담 대성당으로 향합니다. 그곳에는 세 개의 문이 있습니다. 우리는 문 위에 만든 28개의 조각상을 올려다보다 성모마리아 대관식 장면이 부조된 왼쪽 현관문을 향해 걸어갑니다. 잘린 머리를 들고 있는 생드니 주교 상을 보며 벼리가 말해요.
“내가 원한 건 이런 게 아니에요.”
“알아, 나도.”
센강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유람선이 지나갑니다. 그녀는 앉아서 창밖을 구경하는 사람들이 신기하게 느껴지나 봐요. 하긴, 생전처음 보는 한가로운 풍경이 이상할 만도 하죠.
“타볼까?”
“뭐, 그래요. 시간은 많으니까.”
바토뮤수 선창장에는 유람선을 타려는 관광객들이 붐비고 있습니다. 낮게 깔린 구름이 비를 뿌리는데도 줄이 줄어들 줄 몰라요.
“저건 뭐죠?”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에펠탑을 벼리가 손가락으로 가리킵니다.
“에펠탑인데 막상 올라가보면 별 거 없어.”
“별거 아닌 게 아닌 것 같은데.”
“나중에 시간나면 저기도 올라가 보자.”
호기심에 눈이 초롱초롱 빛나는 그녀를 보니 내가 괜히 흐뭇해집니다.
어쨌든 줄은 곧 줄어들고 우리차례가 옵니다.
갑판의자에 물이 흥건하게 고였어요. 그녀는 의자에 엉덩이를 살짝 걸쳤다가 일어나고 나는 손수건으로 의자를 닦습니다.
“앉아.”
“고마워요.”
바람이 차네요. 나는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 그녀의 어깨에 걸쳐줍니다.
여객선은 앵발리드 다리를 지나 알렉상드르 3세 다리를 지나가고 있습니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엔딩처럼 비를 맞으며 저 다리를 함께 걸으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내내 말 한 마디 없이 무슨 생각을 그리하세요?”
“잘린 목을 들고 있는 사람이 있을 법한 곳이 어디인가, 생각하는 중이었어.”
나는 괜히 어색해져서 센강 노선지도를 펼칩니다.
“거꾸로 들었어요.”
“아.”
비가 많이 오는 건 아니지만 꾸준히 내리고 있습니다.
자물통들이 걸린 퐁데자흐의 다리 난간에 기댄 젊은 남녀가 키스를 하고 있습니다. 함께 쓰고 있던 파란우산이 다리 아래로 떨어져요.
“예쁘지 않아요?”
“그러게.”
“가로등 말이에요.”
“가로등이 켜진 파리의 밤거리는 확실히 예쁘긴 하지.”
“둘러대는 것 좀 봐. 입술에 침이나 좀 닦고 말해요.”
노랗고 둥근 조명들이 센강을 따라 황홀히 켜집니다.
“아니 나는 그냥.”
“이리 와 봐요.”
우리는 여느 연인들처럼 부둥켜안고 키스를 합니다.
신을 굳이 죽일 필요가 있을까, 싶어지죠.
그러나 불행은 느닷없이 찾아와요. 가까이서 폭탄 소리가 들립니다. 여객선은 멈추고 거리에 사람들은 있는 너무 아파서 비명부터 내질러요.
파란 우산은 유유히 흐르는 센강을 따라 흘러가고요. 노래가 흘러나오던 거리에는 총성이 가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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