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올바름(政治的 - )은 말의 표현이나 용어의 사용에서, 인종·민족·종족·종교·성차별등의 편견이 포함되지 않도록 하자는 주장을 나타낼 때 쓰는 말이다. 인물설정과 캐스팅에서 취하는 정치적 올바름은 이야기와 긴밀히 결합하지 못하고 있다. 영화는 한 두 줄의 메세지로 이루어진 장르가 아니기 때문이다. pc성향을 가진 평론가들은 예술과 창작물에 '건전함'을 결벽증적으로 강요하고 있다. 여성과 소수자를 모욕하고 무시할 수가 없으니, 힘들어 죽겠다는 창작자가 나타날 지경에 이르렀다. pc영화나 비평은 강요된 선택을 하게 만드는 프로파간다에 지나지 않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직접적인 책임이 없는데 죄인과 무고한 사람을 똑같이 질책하는 모습에서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윤리'라는 강박에 자신도 모르게 휩싸인채 '정치적으로 올바르니 영화도 좋다'라는 말을 하거나 질책이 두려워 침묵하거나 무시하거나 참여하고 있는 페미니즘 영화의 실패는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영화가 아닌 외부의 힘을 빌려 영화를 홍보하거나 사회적 연대를 꾸리려는 모습은 영화에 대한 신뢰감을 떨어뜨리린다. 뿐만 아니라 페미니스트 영화학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의 진정성에 의문을 가지게 만든다.
페미니즘 영화냐, 아니냐로 구분짓고 그것도 모자라 인물들의 관계가 아니라 '여성'의 이야기가 중심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일은 불필요하다. 영화를 여성주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건 선글라스를 끼고 날씨를 이야기하는 것과 같아서 '영화'전체를 보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습이 바뀌지 않는 한 한국사회에서 페미니즘은 혹은 여성주의 영화의 몰락은 예견되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좋은 영화는 '양면의 거울'같은 것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정치적 올바름으로 만드는 영화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은 '파괴적 갈등'만이 보이기 때문이 아니라 좋은 영화란 무엇인가, 하는 근원적인 질문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체성 정치에 의존하는 페미니즘 영화이론에는 '경험'이 빠져있다. 그래서 그들은 경험을 절충하기 위해 과거의 여성들이 받은 억압을 현대로 가져오고 있다. 그러나 과거의 것은 과거의 것일 뿐 현대의 것이 되기에는 부적합하다. 비판과 검토가 불가능한 한국 문화예술의 인권담론은 진부하다.
게다가 자신이 페미니스트이기에 '상식'에 부합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겪은 억압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타인이 받는 억압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거나 철저히 무시하거나 조롱하는 일을 멈추지 않고 있다. 더욱이 페미니스트를 자저하는특권층 여성들 혹은 남성들은 더 많은 특권을 누리면서 더 많은 책임을 지려하기 보다는 성별논리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플라스틱처럼 자성이 없는 영화는 절대로 사람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소수자에 의한 역차별을 다룬 영화.
호두까기 인형과 4개의 왕국 (The Nutcracker and the Four Realms) (0) | 2018.12.08 |
---|---|
스크린독과점, 한국영화의 몰락 (0) | 2018.12.08 |
모털 엔진 (Mortal Engines, 2018) 3차 예고편 (0) | 2018.12.06 |
빅쇼트 하위버전 -국가부도의날- (0) | 2018.12.04 |
보헤미안랩소디 메인예고편 /보헤미안랩소디한글가사 (0) | 2018.11.04 |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