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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버랜드 '에는' 없어요 (1화)

프로젝트빅라이프/네버랜드'에는'없어요.

by 프로젝트빅라이프 2018. 10. 23.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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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버랜드, 에는, 없어요




 

 

 

 

등장인물

 

후크선장

피터팬

웬디

다링부인

팅커벨

앵무새

스미

네버랜드

악어

 

 

무대

 

 

문들은 오금이 저리게 높은 곳에서부터 시작된다. 문들은 도시가스 배관이 거미줄처럼 얽힌 벽면에 다닥다닥 붙어 있다. 문을 열면 추락한다. 문을 열면 아침이고 오후이고 저녁이고 새벽이다. 초인종 소리 들리면 부부싸움소리, 텔레비전 소리, 설거지 그릇들 부딪히는 소리 순간 조용해진다. 문들 슬며시 열렸다가 닫힌다. 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지는 각종삐라. 피터팬과 팅커벨 살사댄스를 추며 무대 위에 오른다. 각장은 월일이 크게 적힌 달력으로 표시한다. 각장이 넘어갈 때마다 달력 한 장 한 장 찢어져 무대 바닥에 나뒹군다. 아래는 전혀 다른 공간이다. 무대 아래로 내려오면 등장인물들,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뀐다.

 

*무대, 좌우 측 문은 관객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있고 정면에 보이는 문들은 3층에서부터 시작된다. 1, 2층은 사방이 꽉 막혀 있는 벽처럼 보여야한다. 앵무새는 건물 안에서는 노파, 건물 아래에서는 깃털을 달린 옷을 입는다. 악어는, 재개발건물을 상징하며 때때로 움직이는 것 마냥 비춰졌으면 한다. 각장은 건물이 흔들릴 때 1, 2 벽 중앙에 낙서된 월, 일들이 바뀌면서 가게 된다.

 

*팅커벨, 피터팬은 주로 건물 아래에 있다. 문이 없는 층과 문이 있는 층이 자연스럽게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되었으면 한다.

 

 

 

1231

 

 

 

피터팬

(말을 더듬는다, 중구난방) 잘 들어보세요. 첫 번째 아기가 처음으로 웃음을 터뜨렸을 때 그 웃음은 수천 개의 조각으로 나뉘어져서 흩어져 버렸습니다. 그때부터 아이가 한명 태어날 때마다 그 아이의 첫 번째 웃음이 요정이 됩니다. 그러니까 모든 아이들한테는 요정이 하나씩 있는 것이지요. , 아시다시피, 여기까지는 동화입니다. (말더듬이를 고치며) 기생을 두고 술과 요리를 파는 요정은 있어도, 고추나물과 서양가시풀을 무서워하고, 산사나무나 금방망이를 매우 아끼는 요정들은 없어요. 일찍이 아름답고 젊은 요정 같은 아가씨들은 춤과 음악을 배워야만 했습니다. 병에 걸려 위독한 왕들을 위해서요. 회춘하고 싶은 늙은 도둑들을 위해서요. 선포된 승리를 만끽하는 적군을 위해서요.

팅커벨

요정이 나오는 동화책의 작가는 대부분 남성입니다.

피터팬

여자들은 요정을 아름답게 그리지 않아요. 그녀들이 만들어낸 요정들은 하나같이 가냘픈 얼굴을 하고 여성해방을 부르짖습니다. 미안한 말이지만 그런 건 정신건강에 좋지 않아요. 요정의 본분은 그런 게 아닙니다.

팅커벨

요정의 본분은 주인님의 빈 잔에 주인님에 의한 주인님을 위한 술을 따르는 겁니다. 요정의 본분은 아이가 꿈을 가질 수 없게 아이의 눈꺼풀위에 아주 고약한 고약을 바르는 것입니다.

피터팬

(손을 놓으며) 아이를 위한 동화는 없어요. (팅커벨 바닥에 쓰러진다)

팅커벨

아이를 위한 해피엔딩은 없어요. 아이들의 부모를 위해 해피엔딩을 만들 뿐이죠.

피터팬

개구리소년들은 산에 가지 않았고 비오는 날은 꼭 우산이 없어요. 산타할아버지는 우는 아이들에게는 선물을 안주고 매 맞는 날은 꼭 웃음이 나와요. 도대체 어느 나라에 아이들이 선물을 받을까요?

팅커벨

이곳에는 비극만이 존재해요.

피터팬

팅커벨은 나의 나에 의한 나를 위한 동화를 쓰죠.

팅커벨

너에게는 아직 꿈을 이루기 위한 충분한 시간이 있어. 무엇이든 새로운 걸 발견하는 모험 같은 하루를 보내. 신뢰와 믿음 그거 하나면 돼. (실컷 비웃다가) , 아시다시피, 여기까지는 동화입니다. 햇빛이 잘 들지 않는 침침한 이 골목길에 시간은 죽음이 머지않았음을 깨닫는 일에만 쓰여요.

피터팬

비극으로 쓰여 진 이야기 속에서 죽음은 유일한 해피엔딩입니다.

팅커벨

미아 찾기 프로그램을 돌리세요. 아이들의 미래 얼굴을 예측해 봅시다. 아빠를 닮아서 코가 커졌을까요? 엄마를 닮아서 눈이 클까요? 오늘도 이 골목에 손자손녀들은 어느 골목 사창가에서 태어납니다.

피터팬

(관객석을 보며) 피임도구를 챙겨가세요.

팅커벨

(유혹하며) 얌전한척, 조용히, 가만있지 마시구요. 순진한척, 내숭떨지, 마시구요. 부르튼 입술로 고급 진 인생인 척, 하지 마시구요. 꼰대마냥, 맑은 고딕 11포인트로, 개요니, 줄거리니, 인물이니, 하며, 형식에 얽매이지 마시구요. 잘 나는 종이비행기 접는 방법이나 배우세요.

피터팬

(종이비행기를 접는다) 삼각형으로 접으세요. 네모난 부분은 칼로 잘라 줍니다. 네모난 건 가지고 계시지 말고 버리고요. 그리고 접선을 따라 바깥으로 종이를 접습니다. 윗부분은 둥글게 가위로 오리구요. 그 다음에는 아이스크림 마냥 둥근 윗부분을 밑으로 접어줍니다. 대각선으로 중심선에 맞춰서……(뒤돌아선다, 종이 접는 소리, 종이 구겨지는 소리 연이어 들린다)

팅커벨

(쓰레기통을 뒤적이다, 아이스크림을 꺼내 문다, 포르노 배우마냥 빤다) 끝까지 서야 잘 날죠. , 얼마, 못가, 흐물흐물 해지지만요.

피터팬

(아무렇게나 구겨버린 종이비행기를 관객석에 내던진다) 비행기를 멀리 던지려면 팔 힘이 가장 중요한 법입니다.

팅커벨

이 외로운 동네에서 자위는 가장 중요한 덕목이죠.

 

고양이 계속 운다. 301호 문 열린다.

 

후크선장

(고양이 사료를 뿌린다) 네버랜드, 또 새끼를 뱄구나.

피터팬

네버랜드는 고양이 이름입니다.

팅커벨

네버랜드는 지린내 나고 퀴퀴한 골목길을 돌아다니며, 음식이나 훔쳐 먹는 꼬질꼬질 꾀죄죄한 도둑고양이죠.

피터팬

네버랜드는 신선한 생선 살 속에 고소한 치즈블록이 듬뿍 든 천하장사 소시지를 좋아합니다. 입맛이 좀 까다롭죠.

팅커벨

(주변을 둘러보며) 요새 부쩍 새끼고양이 시체가 많네요. 죽어서 비쩍 마른 건지 비쩍 말라 죽은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후크선장

먹을 수 있을 때 많이 먹어라. 대한이가 소한이네 집에 놀러갔다가 얼어 죽었다더라.

피터팬

가난한 사람들은 괜한 걱정이 많죠. 유독 추웠던 올해 겨울도 그리 멀지 않아 물러갈 겁니다. 각계절마다 특색이 있고 그 계절을 즐기며 살아갈 수 있는 우리나라는 참으로 축복받은 나라가 아닐까, 싶네요.

팅커벨

이 골목에 살고 있는 가난한사람들은 봄이나 가을을 더 좋아하겠지만요.

 

눈이 내린다. 후크선장 담배에 불을 붙인다. 302호 문 열린다.

 

앵무새

여름에도 눈이 내리네.

후크선장

겨울이에요. 어르신.

앵무새

여름인데 으스스 춥다.

후크선장

추우면 들어가 계세요.

앵무새

추워죽겠는데 문은 누가 열었어?

후크선장

문 잘 닫아 드릴 테니까, 들어가 계세요.

앵무새

(역정을 내며) 내가 네 놈이 그럴 줄 알았다. 이런 육시랄 놈. 좆대감지뽑아불라. 쫙찢을년. 후리아덜놈. 곤죽을 만들어불라. 왜 남의 문을 씨알머리 없이 허락도 없이 열고 지랄이여, 지랄이. (갑자기 말투가 차분해진다) 지금 눈이 다 내리네.

후크선장

(담배연기를 길게 들이마셨다가 내뿜으며) 그러게요. 여름인데 눈이 다 내리네요.

앵무새

(문을 쾅 닫으며) 미친놈.

후크선장

(담배를 끝까지 다 핀 뒤 손가락으로 툭 튕겨내며) 안녕히 주무세요. 어르신.

앵무새

(목소리) 나는 네 놈이 꿈에 나올까, 잠도 못자.

후크선장

(큰소리로) 땡볕인데 방이 냉방이라 좋겠네요.

앵무새

(목소리) 여름인데 문은 또 누가 닫았어.

 

정적

 

피터팬

(바닥에 떨어진 담배꽁초를 집어 들고는) 이 골목 사람들은 몸에도 안 좋은 담배를 몇 번 피지도 못하게 죄다 끝까지 펴요.

팅커벨

(공손하게 두 손으로 담뱃불을 붙여준다) 한 번이라도 길게 오래 해보세요.

피터팬

(담배 연기를 길게 오래 머금다가 내뿜으며) 301호 아저씨는 밤도둑입니다. 그러나 이 밤도 다가고 새벽닭이 우네요.

팅커벨

오늘은 기분 좀 내려는 모양입니다.

 

뾰족구두 소리 들린다. 301호 문 열렸다가 닫힌다. 빨간 뾰족 구두 위에서 아래로 툭 떨어진다.

 

팅커벨

(빨간 뾰족 구두를 신는다, 발에 맞지 않다. 비틀비틀 거리며 무대를 빙 돌다가) 딱 맞네요.

피터팬

웬디는 티켓다방에서 일합니다. 나이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녀는 늘 손님들한테 스무 살이라고 말합니다만, 그 말을 진짜로 믿는 사람은……301호 아저씨밖에 없습니다.

팅커벨

웬디는 미혼모입니다. 병든 아버지와 아버지에게 맡겨진 7살 어린 자식을 키우기 위해 낯선 남자들에게 우쭈쭈쭈 젖을 물리죠.

 

신음소리 들린다.

 

피터팬

우쭈쭈쭈 우쭈쭈쭈

팅커벨

아가야 아프다. 살살 좀 물어라.

피터팬

엄마, 젖이 안 나와요.

팅커벨

아가야, 살살 좀 빨아라. 느리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법이다.

피터팬

거짓말. 엄마, 젖은 텅텅 비었어요.

팅커벨

아가야 이리 온. 달맞이 가자.

피터팬

달도 없어요.

팅커벨

달을 보려면 하늘을 봐야지. 엄마 가슴팍만 보면 달이 나오나, 해가 나오나.

피터팬

달을 본다고 젖이 나오나요. 해를 본다고 배가 부르나요?

 

신음소리 다 끝났다. 301302호 문 열린다.

 

웬디

달이 참 어마어마하네요.

앵무새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여름에도 눈이 내리네.

웬디

오늘만 열판을 뛰었더니 좀 덥네요.

앵무새

(추워서 몸을 벌벌 떤다, 금방이라도 아래로 추락할 것 같다) 여름인데 으스스 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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