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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버랜드 '에는' 없어요 (6화)

프로젝트빅라이프/네버랜드'에는'없어요.

by 프로젝트빅라이프 2018. 10. 23.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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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디

(귀를 기울여본다, 고요하다,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괜히 이상하게 기분이 좋다) 레솔, 파솔라, 솔라 시 도시미라라솔 솔솔 파 미 파솔 레레솔 파솔라 솔라 시시 도시미 라라솔 솔솔 파미 파솔 솔시레 시라솔 파솔 라솔……

후크선장

(귀를 기울여본다, 고요하다,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괜히 이상하게 기분이 좋다) 파미레 솔시레 시라솔 파솔라 레솔 라 시시 도시미 라라솔 솔솔 파.

 

점점 더 지루하고 따분하다

 

웬디

오늘은 어째 낯설고 이질적이네요.

후크선장

내일은 어째, 저 째.

웬디

내일은 한 뼘 정도 열려져 있고 내일은 밤늦게 문을 따고 내일은 내 방에 들어온 낯선 남자마냥 나를 내려다봐요. 나는 내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고개를 푹 숙이고 그 낯선 내일을 계속 며칠 째 올려다, 봤었는데요. 내일은 내 방안에서 나가는 소리도 없이 어느 순간 없어져 버려요. 내 방에 찾아온 내일은 매일 그렇게 사라져요. 오늘은 또 다른 오늘을 위해서만 존재하죠. 나에게 가장 가까운 내일 같은 건 없어요. 나와 다른 사람들의 내일을 위해 바짓가랑이를 벌릴 뿐이죠. (사이) 나를 먹어라, 나는 너의 살아있는 빵이다. 나를 먹어라, 나는 너의 움직임이 좋다. 나를 먹어라,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팅커벨

오늘은 어째, 저 째.

웬디

(두리번거리다, 후크선장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후크선장

(다리를 벌린다)

스미

오늘 만 내 엄마가 되어주세요.

웬디

(머리를 들이밀며) 오늘 만 내 아빠가 되어주세요.

후크선장

(머리를 쓰다듬으며) 우리 딸은 어찌 이리 예쁠까. 내가 너의 오늘을 어제 알았더라면 나의 내일을 너한테 기꺼이 전부 다 내어줬을 텐데, 오늘 나는 너에게 줄 내일을 전부 뺏겼다.

 

네버랜드, 앵무새 목을 문다. 앵무새 날개 몇 번 파닥여 보다 사라진다.

 

앵무새

(302호 방에서 벌떡 일어나 잠꼬대를 하듯 역정을 내며) 내가 네 놈이 그럴 줄 알았다. 이런 육시랄 놈. 좆대감지뽑아불라. 쫙찢을년. 후리아덜놈. 곤죽을 만들어불라. 왜 남의 문을 씨알머리 없이 허락도 없이 열고 지랄이여, 지랄이.

 

네버랜드, 앙칼지게 운다.

 

후크선장

열이 좀 있네.

웬디

지금 온 집이 다 냉골이에요.

후크선장

날이 좀 풀릴 거리고 해서 보일러를 껐는데, 괜히 그랬나봐

웬디

그래도 이렇게 둘이 붙어 있으니 조금 훈훈한 기운이 도네요. (하늘을 올려다본다)

후크선장

내일은 비구름눈구름 죄다 가져갔으면 좋겠다. (하늘을 올려다본다)

 

정적, 네버랜드 그간 열려 있지 않았던 문을 두더지 마냥 오가며 말을 잇는다.

 

네버랜드

봄이 온 줄 반가웠는데, 어째, 폭풍전야의 전운이 감돈다. 저 째, 살이 찢어질 듯 애린 눈발들 유리창을 때린다. 눈은 물기가 많고 무겁다. 하루 종일 강풍과 천둥번개를 동반한 눈이 내린다. 나무가 넘어지고 전봇대 전깃줄이 끊어진다. 눈은 언제 그치려나. 눈은 언제 녹나. 추위가 뼈에 사무친다. 공포감이 밀려온다. , 가난한, 동네에, 골목길은 구급대원들과 경찰관들의 구호와 수습 작업으로 이리저리 마구 뒤엉킨다. 사고현장에 갇힌 사람들의 발바닥은 얼얼하다. 오늘은 어째, 저 째 버텨도 이 눈이 올해 마지막 눈은 아닐 것이다. (사이) 한여름에도 뽀드득뽀드득 눈이 밟히는 소리가 난다. 점점 더 많은 눈의 요정들이 벼랑 끝으로 몰려간다. (뽀드득뽀드득 소리 계속 된다) 더 이상 물러 설 수 없는 망루에 올라 한 발,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걸음을 떼자. 빠드득빠드득.

 

조금 긴 정적 속 전화벨이 울린다. 웬디 전화를 받고 끊는다. 가방을 멘다. 무대 암전. 뽀드득뽀드득 소리 계속된다. 다시 조금 긴 정적 속 빠드득빠드득 이가는 소리 들린다.

 

피터팬

후크선장은 달 밝은 밤에 바람이 불면 하늘로 날아가는 돛단배를 타고 있습니다. 바람이 뒤에서 불지 않거나 역풍이 불면 닻을 내리고 빠드득빠드득 노를 저어요. 후크선장은 계속 질문해요. 우리가 그들을 공포에 떨게 할 수 있을까? 우리가 잔인한 숙청을 할 수 있을까? 우리가 질병과 과로와 추위를 견뎌낼 수 있을까? 우리가 이 도시를 건설하다 죽어 갈 수 있을까? 우리가 우리의 점령지역을 모두 본래의 주인에게 돌려줄 수 있을까? 우리가 권위주의와 부패의 온상이 되지 않을 수 있을까? 우리가 우리 스스로에게 엄중한 경고를 할 수 있을까? (사이) 그는 어렸을 때부터 불손했어요. 모두가 애국가를 부를 때 혼자 딴청을 부렸죠. 모두가 학교에 있을 때 교과서를 불태웠어요. 모두가 시간이 돈이라고 말할 때 시간이 돈이 되게 한 사람들을 저주했어요. 그는 모두가 장래희망을 말할 때 모두의 장래희망을 훔치겠다, 말했습니다. 그는 그런 사람이에요. 그는 남의 시간을 훔치기 위해 자신의 시간을 죽이기로 했어요. 그리고 결국 보시다시피 이 세상에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도둑놈이 됐습니다.

팅커벨

아무짝에도 쓸모없어진다는 건 정말이지 멋진 일인 것 같아요.

후크 선장, 꽤 재재하고 부스스한 몰골로 일어나 가래침을 아주 길고 더럽게도 뱉는다. 담배를 찾는다, 담배가 없다. 재떨이에 수북하게 쌓인 담배꽁초 중 하나를 입에 물고는 물을 끓인다. 물이 팔팔 끓으면 냄비 뚜껑을 열고 면을 넣은 다음 빨리 뚜껑을 닫는다. 파를 썰고 계란을 풀고 불 조절을 하는 모습들이 제법 근사해 보인다. 팅커벨 점점 더 후크선장의 매력에 빠져든다. 넋이 나갔다.

 

피터팬

그는 인간쓰레기에요.

팅커벨

그는 인간답게 살고 싶은 쓰레기죠.

피터팬

그의 몸에서는 온갖 쓰레기 냄새가 나요.

팅커벨

그를 깨끗하게 씻겨주고 싶어요.

피터팬

그는 금방 더러워 질 겁니다.

팅커벨

나는 그의 아기를 갖고 싶어요.

피터팬

(조금 긴 침묵, 팅커벨을 빤히 쳐다보다가) 그는 좋은 아버지, 좋은 남편이 될 수 없습니다.

팅커벨

내가 좋은 어머니, 좋은 아내가 되면 되잖아요.

피터팬

당신들의 아이를 불행하게 만들지 마세요. 뚜렷한 이유도 없이 비판여론을 고조시키지 맙시다. (무대 너머를 바라본다)

팅커벨

나는 당신의 아이를 갖고 싶은 게 아니에요. (무대 너머를 바라본다)

 

어디선가, 눈 밟는 소리 뽀드득뽀드득 들린다.

 

웬디

(유독 조심스럽게 걸음을 떼며) 발자국을 남기는 것은 재밌습니다만 (사이) 발자국 소리가 큰 아이들도 소복하게 눈 쌓인 길을 걸을 때면 저처럼 발바닥이 폭신폭신해지기 마련입니다. 발소리를 듣고 자라는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깨우지 않기 위해서지요.

 

어디선가, 눈 밟는 소리 푹푹 박힌다. 칠판위에 분필이 끌리거나 손톱으로 긁힐 때 나는 불쾌한소리, 끼이이익 오래된 문소리들, 연이어 들린다.

 

웬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무언가에 쫓기듯 발걸음이 빨라진다, 바닥 미끄럽다, 몸의 중심이 뒤로 기울어진다, 넘어지지 않으려 팔을 휘휘 내저어보지만, 소용없다)

 

후크선장

(라면을 한 젓가락 집어 들며) 물 조절에 실패했어요.

 

어디선가, 사이렌소리 들린다. 택시 한 대가 엄청난 속도로 달려와 차도와 인도사이 연석을 들이 받고 솟구치는 소리. 제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공중으로 치솟는 승용차가 신호를 기다리는 다른 차와 충돌하는 소리. 차량 파편이 튀거나 유리창이 깨지거나 찌그러지는 소리. 브레이크 페달을 밟는 소리, 계속되다, 순간 조용해진다.

 

후크선장

바싹 튀겨져서 날로 먹는 것 같습니다.

 

어디에서 왔는지 네버랜드, 후크선장 옆에 바싹 붙어 앉아있다.

 

웬디

(넘어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여기가 어디죠?

피터팬

여기는 네버랜드,입니다.

팅커벨

여기는 죽음과 위험이 뒤를 따르는 줄도 모르고 앞만 보고 걸어온 사람들이 오는 곳이죠.

다링부인

주님의 사랑으로 당신의 발걸음을 환영합니다.

스미

(웬디에게 와락 안기며) 내 착한 엄마가 되어주세요. 나쁜 엄마들은 내가 한, 조각, , 고양이가 쥐를 찢어 죽이듯이, 곤죽이 될 때까지 갈기갈기……

웬디

(스미를 밀어내고는 한동안 말이 없다) 집에 가는 길이었는데, 길을 잘 못 들었나, 봐요. (뒤돌아선다, 걷는다, 걸어봤자, 다시 제자리다, 다시 뒤돌아서고 뛴다, 뛰고 또 뛰다, 무대 뒤로 들어간다, 그리고 다시 나온다. 네버랜드에 어울리는 복장을 입고 서서 환희에 찬 표정으로) 나는 알을 깨고 나온 작은 새다. 나는 젊음이요. 기쁨이다. (사이, 관객석을 보며) 내가 지금 무슨 새소리를 내고 있는 거죠?

피터팬

네버랜드에게 초콜릿을 주지 마세요. 초콜릿은 심한 불안과, 불규칙한 심장박동과, 고열, 발작, 죽음까지 아우릅니다.

웬디

도대체 무슨 말씀들을 하시는 건지?

팅커벨

당신은 코코아지방에 값싼 오일과 유화제를 섞어 만든 초콜릿을 먹었어요. 당신은 불규칙한 심장박동으로 죽음에 이르렀습니다.

다링부인

그리고 그 결과 당신의 시간은 주님이 있는 날과 주님이 없는 날로 나뉘게 된 것이죠.

웬디

저는 신을 주님이라고 부르지 않아요.

다링부인

(두 손을 맞잡으며) 주님이 없는 날에 저는 두 번의 수술을 했고 제 아기는 두 개의 불치병을 가지고 있었어요.

웬디

?

다링부인

(두 눈을 질끈 감고 기도하며) 너의 어린 양은 흠이 없고 일 년 된 수컷으로 하되 양이나 염소 중에서 취하고 이 달 십사일까지 간직하였다가 해질 때에 이스라엘 회중이 그 양을 잡고 그 피로 양을 먹을 집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의 거하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 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스미

내 친엄마는 내게 내린 재앙이었죠.

피터팬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게 내린 재앙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우연히 알려졌거나 계속 알려지지 않을 일들 중에 하나입니다.

팅커벨

여기는 어처구니없는 상황들, 어처구니없는 말들이 만든 세상이죠. 세상에 어떻게 이럴 수 있나요, 라고 따져봤자 소용없습니다. 여기는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남의 일이라고 말하는 상상조차 못할 끔찍한 일들이 나의 이야기가 되는 곳입니다. 이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곳을 잊지 않고 기억해주기를 바라지 않아요. 그들은 이, 이야기에, 등장인물들이 물리적, 정신적, 성적 가혹행위를 당하다 사망하기를 원합니다. 죽은 이유를 설명하는 방식은 가해자의 살해 의도등과 연결되는 문제이므로 언급하지 않거나 문제를 지연하고 은폐하고 축소하면서 의문을 남게 합니다.

웬디

?

스미

(고개를 갸웃거리며) ?

피터팬

(똑같은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

다링부인

(관객석을 갸웃거리며) 왜요? ?

팅커벨

(후크선장을 다시 바라보며) 당신은 이제 집에 돌아갈 수 없어요.

웬디

여기가 어디고, 당신들은 누구죠?

피터팬

(놀리듯) 여기는 왜 왔고 당신은 누구죠?

웬디

나는 내 몸을 팔아 내 아이의 몸을 살찌우는 사람입니다. 지금은 어째서 몸에 한기가 들고 어째서 속이 울렁거리고 어째서 머리가 어지럽기만 하는지 알 수 없어서, 내가 왜 여기에 있고 내가 누구였는지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후크선장, 네버랜드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네버랜드, 그르렁그르렁 소리를 낸다. 앵무새 잠에서 깨어, 문을 활짝 열어젖힌다.

 

 

1235

 

 

 

앵무새

추워 죽겠는데 문은 누가 열었어?

 

네버랜드, 달아난다.

 

후크선장

문은 닫으라고 있는 게 아니고 열리라고 있는 거예요.

앵무새

문은 누가 닫았는데?

후크선장

문은 방이 닫아요.

앵무새

방은 누가 닫는데?

후크선장

방은 닫으라고 있는 게 아니고 들어가라고 있는 겁니다.

앵무새

이상하네. 열리라고 있는 문은 찬바람이 쌩쌩하고 들어가라고 있는 방은 어째서 몸이 들어가면 좁아질까? 어째서 봄여름가을겨울 내내 그럴까? 고거 참 희한하고 괴상하고 알쏭달쏭해서 하나도 모르겠다.

후크선장

(혼잣말) 엄마는 알쏭달쏭하게 고장이 나서 하나도 모르는, 거야.

앵무새

뭐라고 했어?

후크선장

(갑자기 목청을 높이며) 보일러가 고장이 났어요.

앵무새

고장이 났으면 고쳐야지, 왜 아무도 고칠 생각을 안 해?

후크선장

봄여름가을겨울을 어떻게 고쳐요.

앵무새

(전구를 머리위에 단 것처럼 얼굴 환해진다) 아들아, 계절이 들어올 문을 방에 달아라.

후크선장

?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앵무새

계절이 문 좀 열어보게, 문을 좀 방에 달아 달라고.

후크선장

아니, 그 말, 말구요.

앵무새

(수심 잠긴 낯빛으로) 계절은 애미애비가 없어.

후크선장

저는 계절이 아니에요, 엄마.

앵무새

(필라멘트가 끊긴 전구마냥, 눈을 연신 깜박이며) 여름인데 눈이 내리네.

 

사이

 

후크선장

덥네요, 어르신.

앵무새

(꾸벅꾸벅 존다, 지워지다 말다, 태엽 감는 소리, 태엽 풀리는 소리, 카운트, 시한폭탄, 시계 소리 낸다. 모두 기계음이다)

 

문 모두 열린다. 뻐꾸기들에 일제히 밖으로 나왔다.

 

피터팬

붉은 머리 오목눈이의 둥지에서 난 뻐꾸기입니다.

팅커벨

탁란, 이죠.

피터팬

붉은 머리 오목눈이는 크기가 아닌 색으로 알을 구분합니다.

팅커벨

알은척 아는 척 하는 것이죠.

피터팬

탁란의 시간은 그렇게 흘러가고 우리의 시간은 둥지 밖으로 떠밀립니다.

팅커벨

허구 헌 날 뻐꾸기 우는 소리 들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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