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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버랜드 '에는' 없어요 (7화)

프로젝트빅라이프/네버랜드'에는'없어요.

by 프로젝트빅라이프 2018. 10. 23.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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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팬

허구 헌 날 붉은 머리 오목눈이는 가랑이가 찢어집니다. 아침6시에 일어나봤자 소용없어요. 오전에 일을 하고 점심에 일을 하고 잔업을 해도 소용없어요. 볼멘소리를 내봤자 하나도 안 듣습니다.

 

문 모두 닫힌다. 뻐꾸기들 모두 들어간다. 앵무새, 갑자기 운다.

 

후크선장

이유 없이 저리 울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배를 슬쩍 만져보며) 배가 부른 것 같은데도 그냥 먹지 못한 애처럼 웁니다. 배꼽이 떨어진지 27010일이나 됐는데 아직도 딱지가 안 떨어진 모양입니다. (사이) 아직도 배앓이를 하는 걸까요?

 

앵무새 몸부림치며 소리를 낸다.

 

후크선장

기저귀를 갈아야할까요? 어르신들도 속싸개로 따뜻하게 감싸주는 것을 좋아합니다.

앵무새 몸부림치며 화를 낸다.

 

후크선장

(꼭 안으며) 어르신들은 아기의 얼굴을 보는 것을 좋아하고, 아기의 목소리와 심장 뛰는 소리 듣기를 좋아합니다. 많이 안아주지는 마세요. 버릇이 나빠집니다.

 

앵무새 몸부림치다가 죽은 듯 잠든다, 마치, 다른 세상으로 건너간 것 같다. 후크선장, 불편한 곳이 없는지 살핀다, 앵무새 잠결에 계속 운다. 후크선장, 열이 있거나 아픈 것은 아닌 지 살펴보다가 앵무새를 방에 눕힌다. 가능한 많이, 생전에 다시 못 볼 사람을 보는 것 마냥, 바라보다가 문을 닫는다. 301호 아래 등장인물들 숨소리도 들리지 않게 아주 조심스럽다. 앵무새, 등장한다.

 

앵무새

(새 우리 안에서 파닥거리며) 아들아 밤이 차다. 항상 건강조심하고, 밥 잘 챙겨먹고, 차 조심하고, 사람조심하고. (사이) 전화세 많이 나온다. 끊어라.

 

사이

 

후크선장

저 방에 사는 저 여자는 내 엄마가 아닙니다.

 

사이

 

피터팬

그는 애미애비가 없어요.

팅커벨

그래서 그는 엄마를 훔쳤죠. 그는 도둑놈이니까요.

 

정적

 

다링부인

(눈치를 살피다가) 난쟁이, 동화, 메르헨, 브라우니, 악귀, 엘프, 픽시.

 

정적

 

앵무새

(풀밭에서 풀을 뜯듯 제살을 뜯으며) 파미레 솔시레 시라솔 파솔라 레솔 라 시시 도시미 라라솔 솔솔 파.

 

정적

 

팅커벨

몸이 많이 아픈 어르신들은 아이들을 기억해내고 싶어 합니다. 그래야만 영원히 아이들의 엄마아빠로 남을 수 있으니까요. 후크선장은 그들이 영원히 엄마아빠로 남을 수 있게 아들행세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해가 가지 않는다. 어떻게 그런 일을 하느냐, 라고 물어봤자 소용없어요. 그는 아이로 태어나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니까요. 날 때부터 어른이었으니까요. 누구의 아이도 될 수 있는 겁니다.

피터팬

그는 이런 일을 전문적으로 하고 다니는 사람이에요.

팅커벨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의 죄질이 매우 불량하다,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고, 그의 어머니였었던 피해자들은 하나 같이 이렇게 말합니다. 내 아들은 착한 아이에요.

피터팬

치매환자들은 좋았던 일들만 기억하죠.

 

사이

 

후크선장

(발이 안 떨어지는 듯 머뭇거리다가) 저 방에 사는 저 여자는 누구의 엄마였을까요? (발을 무겁게 떼어낸다, 조명 순간 꺼지고 쿵, 하고 떨어지는 소리 들린다)

 

무대 조명 꺼진다. 테트리스BGM: L0GINSKA-BRADINSKY-KARINKA-TROIKA-LOGINSKA순으로 계속 반복된다. 테트리스 배경음악 깔린다. 네 개의 사각형으로 이루어진 테트로미노무작위로 나타나 바닥과 블록위로 떨어지는 소리, 빈틈을 모두 채우고 수평선을 지우는 소리 계속된다. Hard Drop, Soft Drop. 무대 조명 켜진다. 빨간, 흰색, 자홍색, 파랑, 녹색, 갈색, 하늘색 블록은 재개발 되고 있는 건물을 상징한다. 죽은 듯 흔들의자에 표정 없이 앉아 있는 앵무새 옆에는 네버랜드 앉아있다. 이따금 앵무새 네버랜드 머리를 쓰다듬는다. 아주 긴 어둠 속으로 모두 들어간다.

 

악어

(소리) 째깍, 째깍, 째깍.

팅커벨

(호롱불을 비추며) 두개골 길이만 1.8m나 되는 황제악어의 입속입니다. (계속 걸어간다, 등장인물들, 그 뒤를 천천히 따른다) 몸길이 약 12m에 몸무게는 8톤 정도로 추측되고 있는 잔인한 악어의 목구멍입니다.

악어

(소리) 째깍, 째깍, 째깍.

팅커벨

여기는 턱이 매우 약해 물고기를 씹지 못하고 먹이를 꿀꺽 삼켜 먹었었던 악어의 뱃속입니다. 여기는 커다란 개처럼 생긴 악어의 뱃속입니다. 습지에 사는 다른 악어와 달리 건조한 지역에서도 살 수 있었다고 하네요. 종류도 다양하고 사는 곳도 다 다르지만 사냥방법은 모두 동일합니다. 악어들은 무엇이든 멀리 떨어져서 보기를 좋아합니다. 악어들은 지속된 가뭄과 40도를 웃도는 고온을 좋아합니다. 목이 타는 임팔라들이 많아지기 때문이죠. 흙탕물 속에서 기다리고 또 기다립니다. 경험이 없거나 경험을 과신하는 임팔라들이 경계를 풀고 웅덩이의 깊은 곳까지 들어오기를요. 악어는 뒷다리를 낚아챕니다. 우는 소리를 내면서 어미를 찾아봤자 소용없습니다.

악어

(소리) 째깍, 째깍, 째깍. (알람시계, 닭울음소리, 파도, 갈매기,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

피터팬

(호롱불 아래에서, 그림자놀이) , 여우, 나비, 도깨비, 주전자……(사이) 악어는 반쯤 잠수한 상태에서 먹잇감이 수면에 파동을 일으키기를 기다립니다.

악어

(소리) 물 한 방울, 흙 한 줌, 빠알간 보리수 열매하나.

웬디

물속으로 사라지는 아가들의 옹알이.

스미

우리는 물속에서 숨 쉬는 법을 배우지 않았어요.

 

사이

 

앵무새

물속에서 뜨려면 가라앉게 두어라.

 

사이

 

후크선장

우리는 물속에서 눈을 뜨는 법을 배우지 않았어요.

피터팬

허파에 물이 찬다, 허파에 물이 빠져나간다.

악어

(소리) 물속에서 몇 번 씩, 물 바깥에서 몇 번씩, 흔들면서 드르륵드르륵, 째깍째깍째깍, 똑딱똑딱, 티톡티톡티톡.

 

모두 기어가고 모두 걸어가고 모두 뛰어가고 모두 머리를 조아리고 모두 슬퍼하거나 모두 웃어보다가……눈을 가린 채 난간에 둔 널빤지 위로 걸어가듯, 망연히.

 

앵무새

(거울을 들여다보며) 모두가 물속으로 잠겨버린 후에, 망연히, 물속을 들여다보니, 아주 맑은 물이 가득한 그곳이 마치 가장 무표정한 풍경이 된 것 같습니다. 아무것도 없는데 있는 것처럼 잘못 봤는지……시간은 속절없이, 깊은 속정도 내보이지 않고 흘러갑니다. (바지에 똥 싼 표정으로 불편하게 서서)

네버랜드

그녀는 비극적 상황을 초래하는 인간입니다.

앵무새

(점점 더 불편해진 표정으로) 흘러 내려 보내다 보면 흘러 보낸 곳은 다 마르겠죠.

네버랜드

그녀는 부정적 여론이 비등하게 합니다.

앵무새

(흔들의자에 앉는다, 축축한 느낌에 절로 굳어진 표정으로, 몸을 흔들며) 잘 가, 안녕, 또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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