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고속열차
(벨기에 탈리스 통과를 앞두고 화장실 앞에 오래 기다리고 있는 무너지는 탑, 문이 열린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 사내와 몇 초간 마주본다.)
사내: 아, 미안. 내가 정말 오랫동안 참았거든.
무너지는 탑: (검은색 가방을 슬쩍 보며) 물 내리는 소리는 안 나던데. 핸드폰이라도 보고 있었나? 내가 여기서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아?
사내: (웃으며) 나라면 기다리느니 다른 칸에 갔을 거야.
(무너지는 탑, 화장실 좌변기에 앉아있다. 괜히 좀 불안하다. 밖이 좀 많이 시끄럽다. 총소리가 들린다.)
무너지는 탑: 맙소사!
(나가야할지 말아야할지 한참 고민하다, 화장실 문을 슬며시 연다.)
무너지는 탑: 저는 테러리스트가 아닙니다.
(누구도 무너지는 탑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다. 미군2명 미국청년3명에게 제압당한 사내와 눈이 마주친다. 그는 제압당한 사내에게서 친구들의 미래를 본 듯 한동안 슬픈 표정이다. 잠시 멀리 던져진 AK 소총을 보다가 서둘러 열차 밖으로 도망치듯 나온다.
무너지는 탑: (벤치에 앉아서 담배를 꺼내 문다. 손이 바들바들 떨린다. 그때 핸드폰 울린다.) 여보세요.
아내: 하루 종일 연락도 안 받고 무슨 일 있어?
무너지는 탑: 잠깐 일이 좀 생겨서. 어디 좀 갔다 올게. 별 일 아니니까. 걱정 하지 마.
아내: 무슨 일인데 말도 없이 그래?
무너지는 탑: (잠시 생각하다가 할 말이 딱히 없는지) 미안해.
아내: 뭐가 미안한데? 요새 좀 이상하던데. 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지?
무너지는 탑: 뭘 생각했는데?
아내: 팔레스타인에서 왔다는 친구들하고 요새 자주 만나는 것 같던데, 만약 내가 생각하는 그런 게 맞다면...
무너지는 탑: (담배 불 붙이며) 뭘 생각한다는 건지 모르겠어. 나는 단지 (다시 한 참을 생각하다가) 사촌동생들이 그곳에서 탈출했다고 연락이 와서 보러 가는 것뿐이야.
아내: 진짜야?
무너지는 탑: 그럼, 진짜지 뭐겠어?
아내: 아, 여보, 당신은 거짓말을 너무 못해.
무너지는 탑: 거짓말?
아내: 조슈아가 당신이 며칠 전에 어느 팔레스타인 여자하고 노닥거리는 걸 봤다고 했어. 다른 여자를 사랑한다면...
무너지는 탑: 미안해.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어.
(아내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는 듯 핸드폰을 귀에서 멀리 떨어뜨리다 전화를 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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