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은 탈코르셋 담론과 실천이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고 있으며 외모와 관련된 모든 논의를 ‘페미들의 열등감’과 ‘피해의식’으로 대중이 몰아간다고 주장했다.
과연 그럴까?
탈코르셋 담론은 사실 좀 촌스러운 발상이다. 유교적인 가치관으로 비춰지기도 하며 성급한 의미부여로 느껴지기도 한다. 게다가 이슬람단체가 비키니를 입은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과 묘하게 비슷하다. (이슬람이 종교를 이유로 복장을 규제하는 것과 페미들이 자신들만의 신념을 이유로 복장을 규제하는 것은...)
미스코리아 나가도 되겠네, 라는 말이 불편하다고 하면서 여성의 성상품화를 비판하고 싶다면 남성의 성상품화도 이야기 해야 된다. 선택적인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칭찬의 의미로 하는 말을 곡해하거나 외모에 대한 칭찬이나 언급을 강제하듯 한쪽으로 몰아가는 방식은 이상하기 이를데 없다.
외모에 대한 언급자체가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경향신문의 주장은 신빙성이 떨어진다. 자신들이 주장하는 방식을 강조하기 위해 취사선택해서 특정인물의 말을 싣기 때문이다. 반론을 허용하지 않는 이러한 일방적인 주장은 극단주의자들의 '강요'로 보이게 만든다. 외모에 대한 칭찬이 고정된 성역할을 수행하게 한다는 이들의 주장에는 근거라고 할 만한 것이 없기에 왜 그렇게 결론이 나는지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칭찬을 형벌로 받아들이는 태도는 부정적인 사고를 강화시킬 뿐이다.
외모 검열과 대상화에 대한 비판에는 왜 여성만이 존재하고 있을까? 왜 이들은 페미니즘 이슈에 혈안이 된 나머지 외모에 대한 칭찬을 성상품화란 말로 밖에 설명하지 못할까? 여자아이에게 립스틱을 발라주는 엄마, 미스코리아 나가도 되겠다는 할머니에게 언제적 소리를 하냐고 하는 게 전부인 주장에 구구절절 한 이유를 만들어 봤자 그것을 성상품화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칭찬은 칭찬으로 알아 듣는 게 상식이기 때문이다. 미스코리아 대회를 획일적 미의 기준, 외모지상주의,. 여성상품화, 연예계 등용문으로의 전락 등의 많은 비판을 하려거든 특정 성별에 치우쳐 비판해서도 안 되며 우후죽순으로 생기는 각종 평가프로그램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시선을 가져야 된다. 적어도 일관성은 가지라는 소리다.
외모에 대한 욕망을 평가절하하고 구시대적 발상으로 노출은 상품화다, 라고 단정짓기 전에 경쟁이 공정할 수 있게 관련 제도를 보안하는 편이 유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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